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나는 저런 상황이라면 다르게 행동했을 텐데 왜 주인공은 저런 행동을 할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실 의문에서 그치지 않고 답답함까지 느끼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공포영화에서 굳이 위험한 장소로 들어가는 주인공이나 로맨스 영화에서 이별을 초래하는 여러 행동들. 그런 설정들이 감독의 의도 하에 이루어져 결과적으로 보면 성공적인 경우도 많지만 때로는 시청자들이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거나 개연성을 찾지 못해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인공들의 행동을 직접 선택하고 그걸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어떨까? 이번에 공개된 넷플릭스의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는 그런 시청자들의 욕구를 어느 정도 채워준 것처럼 보인다.
이야기는 1984년, 지금까지 나왔던 게임과는 다르게 플레이어가 게임 속 인물들의 행동을 직접 선택하며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한 청년으로부터 시작된다. 영화는 스토리 중간중간 시청자들에게 주인공의 다음 행동을 선택하도록 선택지를 주고 그 선택을 중심으로 하여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전개되는 형식이다. 선택지는 사소하게는 주인공이 먹는 시리얼이나 듣는 음악부터 중요하게는 금고의 암호나 살인을 할지의 여부까지 다양하다.
우리가 주인공의 행동을 선택한다는 점이 영화의 독특한 지점이기도 하지만 더욱 이 영화가 차별화하고 있는 것은 주인공이 그 행동의 주체가 누구인지 직접 묻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의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주인공은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의해 조종당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고 결국 그 의심은 영상을 보고 있는 바로 우리에게로 옮겨간다. 그렇게 주인공은 영화 속에서만 머물지 않고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처럼 자신의 삶 너머를 보기 시작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트루먼은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가 아닌 자신을 통제하는 ‘영화 속’ 사람들을 의식한다). 여기서부터 주인공과 우리 사이의 연결고리는 암묵적인 것이 아닌 명시적인 것이 되고 우리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빅 브라더의 모습을 한 채 영상에 나오는 주인공의 절대자로, 주인공 스테판이 만든 게임의 플레이어로 군림한다.
조지 오웰 <1984>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욕구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소 찝찝한 느낌까지 든다. 왜? 선택이 비록 우리의 의지였다고 해도 영화에 나오는 대사처럼 그것이 진정한 우리의 선택인 것일까? 자유의지로 충만했던 선택이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때로 선택지들은 우리에게 다시 선택하도록 인물들의 입을 빌려 거듭 질문하기도 하고 아예 상황을 처음으로 돌려보내기도 한다. 어떤 선택지의 경우 내 마음에 드는 선택지가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선택지가 하나이다. 결국 우리는 영화의 스토리를 지켜보며 선택하는 사람임과 동시에 그 선택을 강요받는 또 하나의 영화 속 인물-게임을 하며 선택을 하는 플레이어(또는 제작자) 임과 동시에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 의해 통제되는 스테판-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위에 존재하는 이는 누구인가? 그건 바로 영화에 나온 것처럼 NETFLIX와 같이 새로운 포맷을 열어젖힌 플랫폼으로 대변되는 이들이다. 그들이 넷플릭스라는 이름 자체를 스토리라인에 끼워 넣은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1984년에 사는 주인공에게 21세기를 언급하며 자신이 또 하나의 빅 브라더임을 인정하고, 우리에게 “너도 스테판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웃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게임의 승자는 스테판도, 우리도 아닌 넷플릭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이 게임의 승자가 아니라고 해서 크게 실망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우리에게는 스테판과 달리 넷플릭스 이외의 현실이 따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들이 주최한 게임에 참여할지 말지는 온전히 우리 손에 달려있고 그 주도권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있는 한 앞으로 참여하게 될 게임에서 우리가 이길 확률은 더욱더 높아질 것이다.
이 영화는 넷플릭스가 향후 내놓을 컨텐츠들의 방향성을 선포하는 선언서이자 초대장이다. 그 시작이 엄청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새로운 곳을 향한 첫 발걸음인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그들이 보내는 초대장도 기쁜 마음으로 받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