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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un 20. 2020

화천 조경철 천문대를 추억하며

별을 찾아 훌쩍 떠난 여행

지난 겨울 남자친구와 화천에 다녀왔다.

벌써 시간이 꽤 흘렀지만 문득 그 때의 소중한 기억을 여기에 기록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경상남도 사천에서 자랐다. 

사천은 '사천'이라는 이름보다 '삼천포랑 합쳐진 곳'으로 더 잘 알려져있다. 

사천은 서울에서 버스로 약 4시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작은 도시이다. 

고등학생 때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고개를 들어 바라본 하늘의 모습은 새까만 도화지에 다이아몬드 수 백개가 박힌 듯 했다. 정말로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입시스트레스 때문일 수도 있다) 그때부터 내 마음 한켠에는 언젠가 별을 찾아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그 후 오랜 시간이 흘렀다. 

서울에서 홀로서기를 한지 6년차, 별을 보는게 쉽지 않다. 

나는 일상에 권태를 느낄 때 즉흥적으로 여행길에 오른다. (물론 지금은 그러지 못하지만..)

작년 여름에는 혼자 강릉에 다녀오기도 했다. 

지난 겨울에는 별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꿈의 첫 발자국을 내딛기 위해 강원도 화천으로 향했다. 


2박 3일 간 머물었던 숙소


숙소는 화천의 한 작은 마을에 있는 산장으로 잡았다. 나는 한옥의 냄새와 정취를 좋아해서 여행할 때 한옥 숙소에 머무르는 걸 선호한다. 이곳은 인상 좋은 한 노부부께서 운영하고 계셨는데, 주인 아저씨께서 직접 지으셨다고 한다. 실제로 본채 뒷편에 있는 작은 천막에서 주인아저씨가 뚝딱뚝딱 무언가를 만들고 계셨다. 그 모습이 너무 멋져 사진으로 담아봤다. 


장인의 손길이 느껴진다


숙소 구경을 마친 뒤에는 잠깐 낮잠을 청했다. 저녁에 별을 보러가기 위한 체력 충전시간이다. 2시간 쯤 흘렀을까. 해가 저물고 계획했던 것보다 조금 늦게 조경철 천문대로 향했다. 천문대는 우리 숙소로부터 차로 약 5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천문대 근처 풀밭에 앉아 쏟아지는 별들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는 낭만에 젖어있었다. 풀밭에서 마시기 위한 뜨끈한 차를 챙겨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에는 오디오북과 음악을 들었다. 당연히 볼빨간 사춘기의 '별보러 갈래'도 플레이리스트에 있었다. 두근두근 설레는 기분이 온몸을 감쌌다. 천문대는 광덕산 정상 인근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험한 산길은 필수 코스였다. 면허가 있지만 없는 것과 같은 나와는 다르게 운전병 출신인 남자친구는 침착하게 산길을 운전했다. 


천문대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내리는데 주변에서 '얼른 라이트 좀 꺼주세요!'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남자친구는 서둘러 라이트를 껐고, 우리는 주변을 둘러봤다. 엄청난 크기의 망원경으로 별을 관측하는 일행과 대포카메라로 별을 찍고 있는 일행이 있었다. 아주 작은 빛이라도 별을 관측하고 촬영하는데 방해가 되는데, 우리 자동차의 라이트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당황해하고 있는 우리에게 닥친 것은 매서운 칼바람. 우리의 낭만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서둘러 스마트폰과 DSLR을 꺼내 밤하늘을 찍기 시작했다. 야간촬영 모드로 설정한 후 몇 번을 찍어봤지만 별의 모습은 카메라에 담기지 않았다. 그 때 끙끙 앓고 있는 우리에게 한 아저씨가 다가왔다. 딱 봐도 전문 사진작가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분이었다. 아저씨는 카메라를 어떻게 세팅해야 별을 찍을 수 있는지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그러는 사이 아저씨 일행 분들이 우리 쪽으로 다가와 설명을 보탰다. 결과는? 분명히 우리가 찍었을 때는 난리도 아니었는데... 천문대의 경치와 별을 담을 수 있게 됐다. 좋은 카메라가 아니여서 아저씨의 기대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 것 같지만 그래도 우리 기준에서는 정말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또 추억 하나가 우리에게로 왔다. 


사진작가 아저씨를 만나기 전..


사진작가 아저씨의 도움으로 탄생한 사진


조경철 천문대에서 별을 볼 때는 정말 너무 추워서(발이 떨어질 뻔 했다) 5분 정도 '별 너무 예쁘다'라고 생각한 뒤에는 거의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최근에 우연히 별에 관한 영상 하나를 본 후 별에 대해 더 특별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과학자들은 '인간은 별의 자손이다'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이 세상 만물을 이루는 원자가 바로 별으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원자는 초고온, 초고압 상태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데, 자연계에서 이러한 조건을 만족하는 것은 별밖에 없다. 무거운 원자들은 거대한 별에서 만들어지는데, 이 별들은 수명이 다하면 블랙홀이 되거나 초신성이 되어 폭발한다. 이 때 어마어마한 양의 원자들이 우주 공간 속으로 분출되고, 이들은 다음 세대의 항성과 행성의 재료가 된다. 우리 지구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난 후 조경철 천문대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전과는 느낌이 다르다. 이제 나에게 별이란 그저 예쁘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주 튼튼한 실로 이어진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별을 다 보고 돌아오는 길, 갓길에 차를 세워두고 뜨끈한 차와 함께 초코칩쿠키를 먹었다. 예상했던 그림은 아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좋았다. '지금 이 순간이 미치도록 행복하다'는 느낌은 오랜만이었다. 고요한 차안, 아늑한 분위기. 더 바랄 것이 없었다. 30분 넘게 강추위에 벌벌 떨었지만, 덕분에 따뜻한 차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맛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여서 더 즐거운 여행이었다. 얼른 또 별보러 가고 싶다. 




최근 본 별에 관한 영상 


hhttps://www.youtube.com/watch?v=OuVWGfRvX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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