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 년을 이어온 '우리' 그리고 '정'
단기 4358년 서기 이천이십오 년인 올해는 참으로 특이한 해였던 듯하다. 원치 않게 유튜브 중독에 걸려 한동안 헤맸고 그 후유증으로 말 그대로 개판처럼 흐트러졌던 감정을 정리하느라 좀 힘들었다. 단군시대를 비롯 삼국유사와 아주 많은 한국 역사책과 소설을 읽었던 해이기도 하다. 지금은 김진명 작가의 ‘고구려’라는 역사 소설을 4편째 읽고 있는 중인데 진심으로 고구려 미천왕에게 감동이다. 내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찾기 위한 의미 있는 여정을 했던 해였다. 유튜브 중독이 됐던 건 전적으로 윤석열 아니 김건희 정권이라고 해야 하나. 게임 채널 유튜브를 좋아하는 편인데 유튜브나 SNS 중독이 우리 뇌에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고려해 가능한 한 시간을 정해놓고 브런치를 포함 SNS를 하고 유튜브를 본다. 어쨌건 전 정권으로 인한 게엄 때문이었는데 한국에 살지 않으니 내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참 힘들었다.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누굴 닮았는지 한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로서의 의와 애국심은 눈씻고 찾아볼래야 없고 두 부부가 아주 쌍으로 보여주는 x스럽고 x박하며 찌질한 탐욕스런 행동이 참 참담했다.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정치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아니 어떤 면에서는 혐오 하면서 도대체 뭣 때문에 평온했던 내 개인의 일상이 이렇게까지 흔들리며 한국의 정치상황에 안절부절하나 하는 생각을 아주 많이 했다. 결론은 늘 같았다. 한국이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너무 간절해서였다. 수구지심이라고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내 자신에 대한 근본적인 정체성은 늘 한국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팔구십 년대 나와 같은 청년 시대를 살았던 베이비 붐 세대 대통령에 의한 게엄이었기에 더 분노했고 더 이해할 수 없었다. 5.18 민주화 운동을 이끌며 군사 독재정권에 치열하게 항거했던 선배들의 정의와 가치를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수 있는 지적이고 이성적인 세대라고 생각했던 베이비 붐 세대에 대한 믿음이 깨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어쨌건 유튜브 중독에 걸려 잠시 일상이 흐트러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번 사건을 통해 한국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있는지 얼마나 많은 세대차이와 경제적 정신적 차이를 겪고 있는지 그 간극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아직도 게엄의 여파가 끝나지 않아 염려되고 슬프지만 그래도 촛불혁명을 통해 민주주의를 지킨 한국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다. 많이 퇴색하긴 했지만 그래도 서구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나 혼자만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라는 보편적이고 도덕적인 공동체적 연대감과 ‘정’이라는 한국인 고유의 인본적 감성이 우리 문화의 근간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민을 와서 가장 힘들었던 건 사실 먹고사는 문제도 언어의 문제도 아니었다. 그런 건 단지 익숙하지 않아 조금 불편했던 표면적 장애였을 뿐 나만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철저한 개인주의, 사실 말이 좋아 개인주의지 저만 제일 잘나서 최고라는 이기주의 문화를 이해할 수 없었고 그걸 받아들이고 익숙해지기까지는 많은 인내와 노력 그리고 나의 정체성을 포기해야 하는 희생과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은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들 처럼 내가 제일 잘났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조금 재수 없게 되받아 치기도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게 정말 맞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내가 나를 칭찬하고 치켜 세워야 하는 미국 문화 정체성이 여전히 이질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쩔수 없는 구세대는 구세대인가 보다. 어쨋거나 지난 일 년 유튜브를 통해 경험한 한국은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나만 옳다는 식의 이기적 논리가 너무 만연해 있다. '우리'라는 공동체 연대감으로 '정'이라는 따뜻한 문화감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한국이 왜 이렇게 변해버린 것일까. 돈이면 무엇이든 다 된다는 그 뻔한 ‘돈 신’을 떠받드는 서구 자본주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처럼 서구 문화가 더 세련되고 우수해서 개인주의를 가장한 이기주의가 멋진거라는 그릇된 믿음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일까. 한국뿐만이 아니라 또 미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방향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물질만능으로 인한 정신적 가치의 부재와 서구에서 시작된 내가 제일 잘나고 나만 옳다는 허울 좋은 개인주의의 확산이 만들어 낸 결과다. 이젠 조금 따분하게 느껴질지언정 ‘우리’라는 연대의식과 ‘정’이라는 한국 고유의 정신적 문화가치가 인간의 삶을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있게 만드는지 진지하게 되새겨 보아야 할 시간은 아닐까. 또 한 해가 무심히 저물어간다. 저물어가는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나라는 한 영혼이 지닌 문화적 정체성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다보니 여기까지 사고의 흐름이 이어졌다. 2025년 12월 어느 날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