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의 독서 노트

팔로워 팔로잉? 왜 좋은 우리말을 두고 영어로 씨부렁 거리는데

by 틈새의 땅

잠시 브런치에 들어와 보니 독서 노트라는 기능이 생겼다. 한글학자가 아닌 나같이 평범한 사람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노트가 아닌 ‘독서 기록’이라 하면 어디 덧나나. 어쨌든 단순히 그날그날 읽은 책들에 간단한 메모를 해두는 기능이라 생각해 오!- 친절하네-- 하는 생각에 라이브? 브런치뿐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어디든 한글로 표현해야 될 걸 굳이 영어를 쓰는 것도 사실 잘 이해가 안 간다. 어쨌든 '라이브 독서 시작하기'를 눌렀더니 ‘라이브 독서는 브런치 앱에서만 이용 가능합니다’. 라는 정보가 떴다. 바로 탐색 시작…. 앱을 깔아야만 되고 바코드 찍고 그날그날의 독서 페이지를 찍고 어쩌구 저쩌구….. 인증샷을 위해서 전화기 종류에 따라 카카오 앱 깔고, 바코드 찍어서 올리고 어쩌구 저쩌구…. 흑! … 결국은 AI용 데이터 스캔으로 가는구만. 나 카카오 톡 별로라 안 쓰고 앱도 싫어서 피시로만 브런치에 접속하거든요. 글구 웹이건 앱으로건 AI에게 데이터 추출당하는 거 별루임. 왜 바코드를 찍어 인증샷 해야 하나요. 책 많이 읽는다고 실시간으로 자랑하라고 아님 출판사 매출 확인 그것도 아님 사람들이 어느 기기에서 언제 뭘하며 얼마나 붙어있는지 추적하는 차원에서. 관두자…

어쨌든 나만의 궁시렁 껑시렁, 아날로그적 사고방식 구식 인간인 건 어쩔 수가 없다. 어떤 책을 읽었던 그날그날 독서했던 내용 중에 인상에 남았던 내용을 기기나 플랫폼 조건 없이 내 손으로 기록할 수 있게 하는 브런치 작가들을 위한 사심없는 서비스라 생각했다. 아직도 브런치를 나름 순수한(?) 플랫폼이라 착각해 넘 높게 평가해 주는 것 같다. 결국 카카오 톡이던 서비스를 이전받은 AXZ 회사든, 다음 서비스 권리가 AXZ 회사로 권리 이전 된다는 개인정보 이용약관에 관한 이 메일을 얼마전에 받았다. 아무튼 회사간의 연동 서비스의 최종 목적은 돈벌이라는 역학 구조가 깔려 있다는 걸 늘 잊는다, 아니 잊고 싶어 한다. 또 하나 변한 거, '구독자' 글구 '이 작가가 관심 있는 작가' 라는 좋은 우리말을 팽개치고 팔로잉, 팔로워라는 영어를 썼다. 아름다운 우리말이 있는데 왜 굳이 이렇게 x 같은 영어로 대체해야 하나요? 내 말 내 언어로 글을 쓰는 사이트도 영어를 쓰면 더 멋져 보여서?


틈새의 땅 쓴소리 한마디;
언어는 내 자신의 정체성, 크게는 한 나라를 대표하고 보존해주는 국가와 국민의 정체성이다. 시답잖은 영어로 한국어 망가트리지 말고 한국어로 표기할 수 있는 건 영어 쓰지 말고 한국어로 표기하라. 영어에 트라마 있는 인간이라 영어숭배 사상에 젖어있는 한국 사회 분위기가 좀 숨 막힐 때가 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오랜 시간을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영어라는 어색한 옷을 입고 겉돌아야 했기 때문인지 바른 한국어로 잘 말하고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부럽고 그게 이내 삶의 목표가 되었다. 어쨌건 툴툴거림은 이쯤에서 접고 김진명 작가의 고구려 6편을 다 읽고 마음에 와닿았던 미천왕의 손자 고구부(고구려 17대 소수림 왕)가 백제 왕 부여구와 나눈 대화를 통해 한국인의 진정한 정체성이 어떤 건가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기에 아래 내용을 필사해 보았다.


김진명의 ‘고구려 6권’에서 발췌


모래알만큼 많았던 제왕들의 이름. 구부의 입에 묘한 비웃움이 스쳤고 부여구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진실한 비웃움이었다. 구부는 진실로 옛 제왕들의 업적을 하잖게만 여기고 있었고 부여구는 쓴웃음을 떠올렸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역사상 수없는 제왕들이 천하를 두고 각축을 벌였지만 결국 한때의 성쇠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평생을 다 바쳐 이룩한 지금 백제의 성대함 또한 몇 대나 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거대했다. 구부가 지금 그리는 그림은 그로서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거대한 그림이었다.

“혼란스럽군. 그대가 그리는 그림이 다 보이질 않아. 대체 그대의 적은 누구인가? 한족? 동진인가? 아니면 저 족의 전진인가? 한족의 유학을 부수려 한다면서 어째서 저 족 전진과 전쟁을 벌이려 드는가? 그 둘은 서로 앙숙이 아닌가”

“대왕, 진짜 선은 국경 같은 것이 아니오. 진이든 진이든 상관없소(한자 키보드 몰라 그냥 둘 다 진 이라고 표기했는데 이 문장의 두 진은 한자를 보건대 서로 다른 나라 동진과 전진을 말한다). 장래 한의 문물에 집어삼켜질 그 모두가 한이며 그 모두가 나의 적이요. 다만 지금 동진은 붓을, 전진은 칼을 들고 상대해야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오”

“그 구분은 무엇인가? 전진이 더 강대한 나라이기 때문인가?”

“아니, 전진에 칼을 겨눠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오. 요하가 전진의 손에 있으니까.”

“요하가 그리 중요한 것인가? 그 땅에 대체 무엇이 있기에 그리 요하를 고집하는가.”

“말 그대로 요하가 있소”

“요하? 단지 큰 강이라면 이 땅에는 욱리하(한강)가 있지 않은가.”

“본래 나라는 물에 근거해서 일어나는 법이요. 저들 한인이 황하에서 일어났듯이 우리는 요하에서 일어났지. 요하는 우리의 근간이었소. 요하를 두고 다툰 것이 우리 투쟁의 역사요. 헌데 당신이 요서를 버렸소. 고구려는 당시 요동의 지배권마저 상실했었으니 요서는 주인 없는 땅이 되었다가 전진의 것이 되어 버렸지. 욱리하(한강)? 그래, 그 덕에 대륙의 패권에서는 멀찍이 물러 선 채 이 작은 반도 안의 욱리하 유역을 두고 다투는 꼴이 된 것이요. 우리는 요하의 후예가 아닌 욱리하의 후예가 되어버린 것이요.”

“…”

“탓하는 것이 아니요. 늦지 않았소.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르지. 그 덕에 백제는 어느 때보다 강대한 나라가 되었으니까. 이제 다시 두 나라가 힘을 합해 요하로 나아가면 과거보다 몇 배는 위대한 제국이 탄생할 것이요.”

“….”

어떻소 나는 한족 유학 따위 먼지 한 톨 남김없이 지워버릴 자신이 있소. 당신은 어떻소? 짐승 풀이나 뜯기는 것을 제일로 아는 저 족이나 토막 난 채 남쪽으로 쫓겨난 한족의 서술한 군사를 깨트릴 자신이 없소?”

“……”

“애초에 당신이 있었기에 꿀 수 있었기엔 꿀 수 있었던 꿈이오. 칼 없이 붓 만으로도, 붓없이 칼만으로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니까. 기적이오. 그대와 내가 한 시대에, 두 나라의 왕으로, 그것도 벗으로 살아가고 있소. 아니오? 나는 기뻐서 눈물이 날 것 같은데. 그대는 아니오?”

구부의 얼굴이 부여구에 가까이 다가갔다. 천진한 눈망울이 마치 장난이라도 치듯 조르기라도 하는 듯 부여구를 응시했다. 그러고도 한참 대답이 없자 구부는 손가락을 펴서 팔짱 낀 부여구의 팔꿈치를 쿡 찔렀다.

“당장 서어산에다 백제의 전 병력을 보내요. 고구려도 군사란 군사는 모조리 쥐어짜서 보낼 테니. 상상해 보시요. 두 나라 군사가 맞닥뜨려 아예 같이 죽자로 으르렁대다가, 그러다 갑자기, 갑자기 화해하고 웃으며 어깨동무를 하고 북쪽으로 올라가는 거요. 나란히 고구려 영토를 지나 서쪽으로! 하, 누가 짐작할까. 세상에 그런 기습이 또 어디 있겠소. 상상만 해도 재미있고 즐겁지 않소? 그렇게 한 싸움에 전진을 때려 부수고 요하를 넘어 요서까지 점령하고, 그리고 앞으로는 천하를 꿈꾸는 거요.”

“…..”

“갑시다. 요하로.”

부여구는 눈을 감아버렸다.

역사상 이만한 거래가 있었을까. 이토록 쉽게 두 나라가 화해하고, 동맹을 넘어서 하나의 왕조로 통하고. 그리고 그 왕조는 단순한 권력의 힘에 의해서가 아닌 하나의 사상과 이념으로써 합쳐질 것이었다. 반도의 작은 땅덩이에 국경을 그어 일진일퇴하는 소모적인 전쟁이 아닌, 힘을 합쳐 대륙의 패권을 두고 다투는 거대한 전쟁. 천하 문명의 주인이 누구인지, 천 년을 두고 천하 만민의 머릿속에 새겨질 이름을 다투는 전쟁. 말도 되지 않았다. 고구려의 터무니없는 태왕은 터무니없는 거래를 걸어왔고 터무니없는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터무니없었다. 그러나 위대한 업적의 달콤함이란!

부여구는 다시 눈을 뜬 것은 해가 저물어갈 즈음이었다.

“장차 누가 있어 또 이만한 꿈을 꾸어볼까. 설령 꿈으로 그친 들 어찌 마다 할까. 내 그대의 말을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네.”

“그러실 줄 알았소.”

구부는 씩 웃었고 그것으로 그들의 자리는 파했다. 굳은 악수를 나눈 둘은 깨끗하게 작별을 고하며 낙랑벌을 떠났다. 구부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었지만 부여는 그렇지만은 못했다. 그 누가 이만한 이야기 앞에서 태평할 수 있을까. 고목과도 같이 굳었던 부여구의 가슴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고 느슨해졌던 온몸의 근육은 끊어질 듯 긴장하여 떠질 듯 떨리고 있었다. 멀직이서 기다리던 부여수가 다가왔을 때 부여구는 온 힘을 다하여 제 아들을 굳세게 부둥켜안았다.

“수야. 요하로, 대륙으로 가자!”

‘예?”

밑도 끝도 없는 영문 모를 소리였다. 그러나 부여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 늙어 버린 아비의 손아귀가 너무나 굳세게 그의 등짝을 안은 채 전율에 떨고 있건만 그런 감동의 순간을 방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부여수는 등이 뜨겁게 젖어옴을 느꼈다. 부여구는 한도 끝도 없이 굵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배너 이미지는 고구려라는 검색어를 통해 인터넷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