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작품번호에 대하여

오퍼스, 도이치, 쾨헬 등

by 하늘아래

클래식 작품번호에 대하여

작품번호는 모든 예술 작품 가운데 특별히 클래식 음악 작품에 널리 사용하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음악이 다른 예술 장르처럼 구체적인 제목이나 표제를 갖지 않는 추상적이 면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클래식 음악에서는 특정 작곡가의 작품을 지칭할 때나 장르 명칭이나 조성 다음에 반드시 작품번호를 붙이도록 되어있다.


1. 악보 출판업으로 관습화된 작품번호 Op.

어원과 역사적으로 볼 때 ‘작품번호’로 번역되는 오푸스(Opus, 줄여서 Op.)는 라틴어에서 유래하였다. 이는 본래 ‘일’이나 ‘노동’을 의미하는 단수형으로 이탈리아어나 독일어로 사용되다가 우리나라에는 ‘작품’이라고 번역되었다. 라틴어 오푸스의 복수형은 오페라(opera)인데 이것은 극음악 장르인 ‘오페라’와 철자가 같아 혼돈을 일으키기도 한다.

음악 용어로 ‘오푸스’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1477년 출판된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음악이론가 팅토리스의 대위법 이론서 『리베르 디 아르테 콘트라풍크티(Liber de Arte Contrapuncti)』, 즉 대위법 기술서의 서문에서였다. 이후 오푸스는 특정 작곡가의 작품에 번호를 매기는 기호가 되었는데 그 최초의 예는 르네상스 말 바로크 초기를 이어주는 대가 중 한 사람이었던 비아다나(Viadana)의 작품에서였다. 1597년 베네치아에서 출판된 비아다나의 『축제 모테트(Motecta festorum)』에는 ‘Op.10’이라고 붙여있다. 작품 번호 오푸스는 악보 출판업이 활성화되고 대중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관습임을 알 수 있다.

비아다나 이후 이탈리아의 바로크 초기 작곡가 비아지오 마리니(Biaggio Marini)는 30년 동안 베네치아를 비롯한 각 도시의 출판사에서 무려 22개의 오푸스 기호를 붙인 작품들을 출판하여 눈길을 끌었다. 이후 오푸스 번호는 악보 출판에서 관행이 되는데, 특히 앞서 얘기한 것처럼 구체적인 제목을 알 수 있는 성악 작품보다는 기악 작품에서 보다 널리 적용되었다. 물론 이것이 강제적인 구속력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무수하게 쏟아져 나오는 동일 작곡가의 곡들을 구별하게 해주는 하나의 표시나 기호로서의 역할을 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오푸스 번호는 작곡가가 스스로 붙이는 것이 아니라 출판 당시 출판사에서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곡과 연관된 특별한 사실이나 정보가 없는 한 작품번호의 순서가 작곡가가 작곡한 작품이 나온 순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즉 연대나 날짜순에 따라 작품번호가 일정하게 매겨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같은 곡을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출판한 경우 각각 다른 작품번호가 붙여지는 경우도 있었다. 때로는 여러 개의 작품들을 한 다발로 묶어 하나의 작품번호로 출판하는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면 18세기 초 바로크 후기에는 일률적인 것은 아니지만 작품의 길이가 비교적 짧았기 때문에 12곡이나 되는 많은 곡을 하나의 작품번호로 묶기도 했으며, 세월이 흐를수록 작품의 길이가 길어지는 경향에 따라 1800년 전후에는 두세 곡을 모아 하나의 작품번호로 출판하게 되었다.


①바흐 'BWV',②리스트 'S',③모짜르트 'K',④비발디 'Rv',⑤슈베르트 'D',⑥하이든 'Hob',⑦헨델 'HWV',⑧스카를라티 'K'. 삽화출처 전북일보


베토벤의 경우를 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즉 베토벤의 작품번호 1은 피아노 3중주곡을 세 곡 묶어서 출판한 것이다. 따라서 베토벤의 첫 피아노 3중주곡 세 개는 각기 Op.1-1, 1-2, 1-3으로 매겨진다. 긴 대작일 경우 독립적으로 하나의 번호로 표기하였다.


2. 쾨헬, 도이치, 킨스키 - 할름

한 작곡가에 대한 모든 작품에 작품번호가 매겨지는 것은 아니다. 유명 대가의 작품일지라도 출판되지 않은 무수한 곡들이 존재한다. 소품이나 어떤 특정 목적을 위해 작곡한 성악곡이나 노래, 아니면 작품의 수준이나 질적으로 미숙한 습작기의 작품, 혹은 작곡가 자신이 의도적으로 출판되기를 꺼려했지만 명곡이라 할 수 있는 작품 등이 존재한다.

이 지점에서 기존의 작품번호, 오푸스 번호와는 다른 번호 체계를 만나게 된다. 모차르트의 ‘쾨헬 번호’가 대표적이다. 대작곡가들인 경우 위의 작품들을 비롯하여 사후 잊혔거나 유실되었다가 다시 발견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마련이다. 이들에게는 당연히 작품번호가 없다. 그래서 이것을 정리하여 통일된 일련번호를 붙여 알기 쉽게 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분류 작업에 다른 작품번호를 매기는 것은 보통 음악학자나 서지학자, 혹은 전기 연구가들이 개인적으로 행하거나 특정 작곡가 협회와 같은 단체가 한다. 이 방면에서 유명한 작업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인물들로는 모차르트의 쾨헬(Kochel)이나 슈베르트의 도이치(Deutsch), 베토벤의 킨스키-할름(Kinsky-Halm)을 가장 먼저 들 수 있다. 혹은 작업 자체가 방대한 경우 객관성이나 혼동을 피하기 위해 특정 작곡가 연구 협회가 작품 목록을 만들고 번호를 붙여 새로 발견된 사실에 입각하여 진위 여부를 가리고 오류를 정정하는 작업을 하여 작품번호를 갱신하기도 한다.

한 작곡가의 작품을 놓고 여러 사람에 의해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진 경우 여러 개의 분류 번호가 존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바흐의 경우 19세기 중엽에 나온 바흐 협회의 바흐 전집판 번호, 혹은 1954년 카셀에서 출판된 바흐 연구소의 신 바흐 전집의 번호, 혹은 BWV로 잘 알려진 슈미더(Schmieder)에 의한 번호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작품번호와 연관된 사실이나 인물들에 대해 대표적인 경우를 골라 살펴보도록 하자.



3. 학문적 치밀함, 모차르트 작품 분류한 쾨헬 K.

먼저 모차르트 작품번호의 기본으로 쓰이는 쾨헬 번호를 빼놓을 수 없다. 루트비히 알로이스 페르디난트 쾨헬은 1800년 북 오스트리아 슈타인에서 태어나 1877년 빈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827년 빈 대학에서 법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다방면에 학문적, 지적 관심을 지녔던 학자였다. 그는 교사나 관리, 혹은 자유로운 연구가로 평생 끊임없이 지적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식물학이나 광물학과 같은 자연과학 연구에 관심을 가져 각지를 돌아다니며 연구를 수행했다. 이런 그가 1856년 이후이므로, 무려 56세라는 나이에 처음으로 모차르트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 불충분한 모차르트의 원전 상태와 자료, 목록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가게 된다. 물론 얀(John)과 같은 모차르트 연구가도 그 이전에 모차르트 작품 목록 작업을 하기는 했지만 불완전한 상태였다. 쾨헬은 그의 학문적 치밀함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서지학적으로 모차르트 작품을 장르별로 모아 분류하고 작품이 나온 연대를 추정하고 그에 따라 일련번호를 매겼다.

모차르트는 1784년 이후, 즉 세상을 떠나기 전 약 8년 동안에 나온 176개 작품들에 대해 스스로 번호를 붙인 바 있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나온 450곡에 이르는 작품들은 분류, 편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무엇보다 자필 원전 악보도 없는 것이 많았고 있다 해도 판독하기가 어려웠으나 객관적 자료와 사실에 입각하여 끈기 있게 작업을 완성한다. 1862년에 나온 것이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연대-주제에 따른 전체 작품 목록(Chronologisch-Thematisches Verzeichnis samtlicher Tonwerke Wolfgang Amadeus Mozarts)』이다. 이 색인은 곧 모차르트의 작품번호 목록 중 최고로 인정받게 되었고 1877년부터 1925년까지 브라이트코프운트 헤프텔 사에 채택되어 최초의 모차르트 전집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그 후 모차르트 작품이나 악보에는 쾨헬의 번호를 기본으로 사용하게 되었고 후배 학자들, 예를 들면 알프레드 아인슈타인 같은 이들에 의해 개정판이 나왔다. 1964년에는 기클링, 바인만 같은 이들이 편집, 개정자로 참여하여 앞서 언급한 브라이트코프 사의 것을 개정한 새로운 모차르트 전집이 출판되었다. 여기서도 작품번호는 쾨헬의 것을 근간으로 하였다.



4. 철저한 고증과 자료에 의한 도이치 번호 D.

또 하나의 중요한 작품번호 목록으로는 슈베르트의 도이치 번호를 들 수 있다. 오토 에리히 도이치는 1883년 빈에서 태어나 1967년 빈에서 세상을 떠난다. 그는 빈과 그라츠에서 문학사와 미술사를 전공하여 한때 미술 평론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19세기 초 빈의 비더마이어 시대의 예술에 관심을 가지면서 슈베르트와 인연을 맺게 되었고, 1905년 『슈베르트 경본』을 펴내 슈베르트 전기로 학계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는다. 1939년~51년까지 영국에 머무르면서 영국 시민이 된 그는 1951년 런던에서 『슈베르트 전 작품 주제에 의한 목록(Schubert : Thematic Catalogue of All His Works)』으로 슈베르트 연구를 총 결산 하였다.

슈베르트는 생전에 많은 작품이 미출판된 채 남아있었고 그것을 정리, 색인화한 도이치의 노작은 놀라운 것이었다. 이후 그의 이름의 이니셜을 딴 기호 D.(도이치 번호)는 슈베르트 작품의 표지로 권위를 인정받게 되었다. 한편 도이치는 슈베르트 연구로만 머무른 것이 아니라 모차르트와 헨델, 베토벤에 이르는 넓은 관심 영역을 지니고 있었고 각 작곡가마다 중요한 학문적 업적을 성취하였다. 특히 60년대 초에 나온 모차르트 편지들과 서한, 자료집 그리고 그에 바탕한 전기는 도이치를 모차르트 연구사에서도 지울 수 없는 자리를 차지하게 하였다.


5. 바흐 연구의 기본이 되는 BWV

앞서 언급한 바흐의 BWV 번호의 경우 볼프강 슈미더에 의한 바흐 작품 분류 체계에 의한 번호이다. 슈미더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철학과 음악학을 전공했고 각지에서 음악 도서관 사서 및 책임자로 일하면서 작곡가, 특히 바흐의 작품을 정리했던 음악 서지학자겸 음악학자였다. 그는 1933년부터 10년간 오랜 전통을 지닌 음악 출판사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 사의 문서 및 자료 보관소장 직을 역임했고 1930년대 중반부터 바흐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1950년 라이프치히에서 출판된 『바흐 전 작품의 주제에 의한 체계적인 색인
(Thematisch - Systematischer Verzeichnis der Musikalishcen Werke von J. S. Bach : Bach - Werke - Verzeichnis)』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지금은 바흐 연구의 기본이자 모든 바흐 작품번호로 BWV라는 약자로 통용하고 있다.


6. 스카를라티의 작품번호

건반 연주자들이 많이 연주하는 곡의 작곡자 중에 도메니코 스카를라티가 있다. 그의 작품은 건반악기인 하프시코드를 위한 작품이 거의 대부분으로 스카를라티의 나이 67세에서 72세 사이에 작곡되었으며, 대개는 그의 인생 말년에 스페인의 여왕이었던 마리아 바바라를 위하여 집대성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작품을 보면 다음과 같은 번호들이 동시에 쓰였음을 발견할 수 있다.

* K.44 - 랄프 커크패트릭(Ralph Kirkpatrick)의 분류 기준에 의한 번호

* Venice XIV 2. Parma II 20. Worgan 14 - 사본(Manuscript)이 현재 보관되어 있는 곳의 지명과 번호

* Longo 432 - 알레산드로 롱고(Allesandro Longo)의 분류 기준에 의한 번호 위의 번호들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① L


스카를라티의 작품은 그가 1757년 세상을 떠난 이후 잊혔다가 1839년 체르니에 의해 그의 필사본들 중 일부가 출판되면서부터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 후 1906년 알레산드로 롱고(Longo)에 의해 완결에 가까운 전집이 출판되었다. 롱고는 1864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다. 어려서 아버지에게 피아노와 작곡을 배운 후 네이플 콘서바토리(Napdl Conservatory)에서 베냐미노 체시(Beniamino Cesi)에게 피아노를, 파올로 세라오(Paolo serrao)에게 작곡과 오르간을 사사하여 1885년에는 이 세 분야 모두에서 학위를 얻었다. 그 후 네이플 콘서바토리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다 1934년 퇴임하였다. 롱고는 스카를라티 음악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1892년에 스카를라티 연구 단체(Domenico Scarlatti Society at Napels)를 설립, 11권으로 된 스카를라티의 전집『Domenico Scarlatti Opere Complete per Clavicembalo, Milan(1906-1910)』을 출판하였다. 이 전집은 스카를라티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았으며 타 음악인들로 하여금 스카를라티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한편으로는 스카를라티의 소나타 작품들을 조성에 의거하여 임의로 묶어놓았고, 어떤 곳에서는 작품 안에서 나타나는 화성적 암시를 자신의 개인적 주관으로 고치기까지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완성한 스카를라티 에디션은 오랜동안 가장 정확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② K


스카를라티의 작품 분류 중에 널리 쓰이는 또 하나는 커크패트릭의 분류에 의한 번호다. 이 분류는 1953년에 이루어진 것인데 롱고번호가 분류의 기준을 조성에 두었다면 커크패트릭의 번호는 작품이 쓰인 연대를 기준으로 했다는 데 그 차이가 있다. 커크패트릭은 1911년 미국에서 태어나 어려서는 클라비코드를 배웠으며 하버드 대학에서는 하프시코드를 배웠다. 졸업 후에는 파리에 있는 국립도서관에서 연구하는 등 그는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음악인이었다. 미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바흐의 작품과 더불어 스카를라티의 작품을 많이 연주했는데, 작품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를 병행하여 17~18세기 실내악 작품과 스카를라티 작품 연주의 권위자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1953년에는 『Domenico Scarlatti(Princeton and London, 1953)』를 출판했다.


7. 하이든의 작품번호

① Op

하이든의 작품은 호보켄 분류에 의한 번호와 함께 오푸스 번호가 함께 쓰이고 있다. 대부분의 작품이 호보켄 분류 번호인데 오푸스 번호는 주로 기악 작품, 그것도 현악 앙상블 곡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② Hob

하이든 작품번호의 표식으로 쓰이는 호보켄은 독일의 유명한 서지학자인 호보켄이 완성한 주제별 분류 목록에서 유래했다. 1887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호보켄은 어려서부터 작곡과 음악 이론을 체계적으로 공부했고 1925년부터 1934년까지는 당대 유명한 음악이론가인 하인리히 쇤커의 제자이기도 했다. 그 후 쇤커의 소개로 빈에 있는 국립도서관 음악부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그는 30년이 넘는 시간을 투자하여 하이든의 작품 목록과 주제별 목록을 만들었다. 하이든의 작품은 워낙 종류도 많고 또한 그가 당대에 매우 유명한 작곡가였던 이유로 그의 이름을 도용한 작품들이 무척 많았기 때문에 하이든 작품 분류는 지고한 인내력과 철저하고도 치밀한 고찰이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호보켄의 깊은 음악적 이해와 이론가적인 객관성, 박식함 그리고 30여 년에 걸친 노력의 결과로 근 150년이 넘게 미루어져 온 하이든 작품의 문제, 즉 작품의 진위 여부, 악기 편성에 대한 혼란 등이 많이 해결되었다. 최근에는 그의 전집에 들어있는 작품들의 진위 여부가 계속 논쟁의 초점이 되고 있지만 항상 호보켄의 연구를 근거로 하고 있다.


8. 드보르작의 작품번호

드보르작의 작품들은 오푸스 번호가 사용되지만 그 밖의 다른 번호들이 동시에 사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을 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들이 보인다. B.178, S.117, Op.95, No.9, Symphony5, ‘신세계로부터’

일반적으로 드보르작의 교향곡 ‘신세계로부터’가 그의 교향곡 중 다섯 번째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드보르작은 모두 아홉 개의 교향곡을 썼고 이 곡은 그중 마지막으로 쓰인 작품이다. 드보르작은 그가 쓴 교향곡 중 일부에만 번호를 붙인 것이다.

‘신세계로부터’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고 그의 생애 후반기에 쓰였기 때문에 혼동이 적었지만 제3번 교향곡은 오케스트라를 위해 쓰인 것으로는 다섯 번째 작품이며, 이전에는 Op.24로 알려졌다가 현재는 Op.76으로 분류된다. 오푸스 번호는 작품이 쓰인 순서가 아니며 같은 곡을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출판한 경우 각각 다른 오푸스 번호가 매겨질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분류 번호를 동시에 사용함으로써 곡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① B

B는 버그하우저가 만든 주제별 색인(Burghauser Thematic Catalogue)의 약자이다. 버그하우저는 1921년 체코에서 태어난 작곡가이자 음악학자다. 그는 특별히 체코의 민속음악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드보르작과 노박의 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1960년 그가 출간한 안톤 드보르작의 주제별 색인은 드보르작의 작품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② S

S는 오타카 소우렉이 만든 주제별 색인(Sourek Thematic Catalogue)의 약자로 작품이 쓰인 순서를 기준으로 분류한 것이다. 오타카 소우렉은 1883년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직업은 본래 엔지니어였지만 그는 해박한 음악 지식을 갖추었으며 주로 지휘나 음악 비평을 했다. 또한 드보르작의 작품에 관심을 기울여 그의 전기를 쓰고 작품을 분석하여 출판하기도 했으며 그에 관한 연대별 색인을 완성하였다.


9. 베토벤의 작품번호

베토벤의 작품은 대개 오푸스 번호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출판되지 않았거나 그의 사후에 발견돼서 오푸스 번호가 없는 경우 베토벤의 작품들은 'WoO'를 그들의 작품번호 기호로 사용한다. 킨스키와 할름에 의해 만들어진 베토벤 작품의 주제별 분류 목록에 의한 번호 WoO(Werk ohne Opuszahl, 영문으로는 Work without Opus number)에 의한 번호가 주어진다.

킨스키는 1882년 프러시아에서 태어난 독일 음악학자이다.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음악 도서관에서 서적을 분류하거나 연구, 장서를 확충하며 고전악기를 연주하는 음악회와 강의를 준비하였다. 1944년 나치 정권하에서 강제 노역에 끌려갔다가 1945년에 풀려난 후 1951년 숨을 거둘 때까지 베토벤 작품의 주제별 분류 목록을 만드는 데 헌신하였다. 그의 연구는 당대와 후대에 베토벤 작품의 심도 깊은 연구를 가능케 했다.

1951년 킨스키의 사망으로 완성되지 못한 이 작업은 1898년에 태어난 독일의 할름에 의해 다시 이어졌다. 사서이자 서지학자였던 그는 1926년부터 바바리안 도서관에서 음악 파트의 책임자로 일했는데, 킨스키가 시작했던 베토벤 작품의 주제별 분류 목록을 완성시켜 1955년에 출판하였다.


10. 클레멘티의 작품번호

클레멘티의 작품도 오푸스 번호를 사용하는데 출판되지 않았거나 그의 사후에 발견된 작품에 한하여 베토벤의 WoO와 비슷한 WO(Work without Opus numbr)를 분류 기호로 사용하고 알란 타이슨(Alan Tyson)에 의해 완성된 분류 목록 번호를 사용하였다.

1926년 영국 태생의 음악학자인 알란 타이슨은 옥스퍼드에서 공부하였으며 미국의 콜럼비아와 버클리 대학교에 재직한 바 있다. 그는 음악 외에 정신분석과 의학을 공부하고 프로이트의 저서를 번역하면서 동시에 베토벤, 하이든, 클레멘티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도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1967년에는 클레멘티의 주제별 작품 분류 목록을 완성하였다.

그 밖에도 헨델은 ‘HWV’, 비발디는 ‘Rv’', 리스트는 ‘S’를 사용한다. 또 쇼팽이나 멘델스존, 파가니니 등 유명한 작곡가들일지라도 그냥 ‘Op’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작품번호가 없는 작품을 나타낼 때에는 ‘WoO.(Werke ohne Opuszahl의 약자)’를 쓴다.

* 아주 오래전에 발간된 월간 <피아노음악>이란 잡지의 내용을 발췌 정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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