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뭐냐구?

세상은 외로움의 향연이다

by 하늘아래

외로움이 뭐냐구?

서구사회에서 17세기만 해도 외로움이라는 단어에 오늘날과 같은 관념적이고 심리적인 뜻이 없었다고 한다. 외로움은 그저 ‘홀로 있음’이라는 의미로 심리적이거나 정서적인 경험과는 거리가 멀었다. 외로움과 소외에 대한 개념은 인간이 기계에게 종속당하기 시작한 19세기 산업사회의 산물이다. 오늘날 외로움은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거나 대화의 공감대를 찾지 못하는 다양한 인간관계의 부수적 감정을 묘사하는 단어가 되었다. 외로움은 홀로 있지 못하는 존재의 불안감에서 시작한다. ‘홀로 있음’은 존재의 본질이다. 그것은 자기를 파괴하는 고통이 아니라 존재라면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감정이다.

백석시인은 「흰 바람벽이 있어」라는 시에서


“하늘이 이 세상에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라고 했다. 시인은 세상 어느 누구도 외로움을 피할 수 없다는 진실을 말하고 있다. 외로움을 견뎌내기 위해 꼭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런 목적이라면 무엇이든 하면 할수록 외로워질 것이다. 나는 외로음을 극복하고 싶어 많은 것을 해봤다. 청소도 학고, 여행도 하고, 운동도 하고, 멍하니 구름만 보기도 하고. 그런데 방법이 없었다. 외로움은 고민해서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외로움은 이길 수가 없었다. 외로운 걸 참 싫어하면서도 본능적으로 외로움을 탐하다니....정호승 시인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했다. 외로움을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깨달음의 대상으로 본 것이다.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하느님마저 외로워 눈물을 흘린다고 했으니 피조물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란 뻔하다. 외로우면 외로워할 뿐이고, 나뿐 아니라 모두가 외롭다는 것을 깊이 공감하면 되는 것이다. 외로움은 주위를 돌아보라는 권면이다. 모든 존재가 일정 부분 외로움을 살아간다는 생각, 그것 만한 위로가 없다. 태양은 외로워 빛을 내고, 바람은 외로워 소리를 낸다. 백석이 시에서 말한 초승달과 바구지 꽃도 짝새도 그러하고 윤동주가 「별헤는 밤」에서 노래한 '프랑시쓰 쨈'이나 '도연명', '라이너 마리아 릴케'도 그러했다. 문학과 예술이 모두 외로움에서 싹텄다.


세상은 외로움의 향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