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송경동 시인에게 부끄럽다
사소한 물음에 답함
송경동
어느 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하지 않았다.
십수년이 지난 요즈음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 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 어느 시인이라고 별을 노래하고 꽃을 노래하고 사랑을 노래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그러나 누구는 현실을 노래하고 억울함을 노래하고 힘없는 사람들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 그런 사람에게 이념이니, 조직이니 하는 말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천박한 언어유희다. 시인을 움직이는 힘은 자유이고 들판이고 물결이고 바람이다. 소속된 조직이란 무너진 담벼락, 걷어 차인 좌판,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이다.
나는 송경동 시인에게 부끄럽다. 내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막이 여러 겹일까 두렵기 때문이다. 송경동 시인이 있던 곳은 문단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장기 농성장, 세월호 유가족 등 억울하고 가난한 이들이 오체를 던지는 길바닥, 분노한 시민들이 연대하는 광장이었다. 그는 시를 위해 살지 않는다. 시를 살기 전에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무엇보다 시를 사랑하지만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서는 시를 버릴 수 있다고 말한다. 시는 그의 또 다른 고백이고 외침이다. 그는 생각과 실천이 하나로 이어진 삶을 살고 있고 그가 쓴 시는 그런 그의 삶을 증언한다. 그러니 그의 시를 읽기도 전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서울 강남에 문학교실이 있었는데 저는 벌어먹고 살아야 하니까 야간을 신청했어요. 낮에는 건축 현장 등에서 이른바 노가다 일을 하고, 저녁 수업에 참가했어요. 일주일에 두 번 수업에 갈 때는 나름대로 깨끗이 씻는다고 씻었는데 손톱 밑에 기름때와 흙이 새까맣게 끼어 있는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때는 얼마나 창피하던지 수업 시간 내내 손을 동그랗게 말아 쥐고 있었어요. 잠이요? 처음에는 돈이 없으니까 신축 중이던 건물 지하 콘크리트 바닥에 스티로폼 깔고 잤어요. 일용노동자들이 묵는 잡부 숙소에도 있었고, 나중에는 지하철 공사장 함바 숙소에서 오래 있었어요. 지하철 공사장에서는 보통 20m 높이의 철골(H빔) 위에서 지지대 등을 용접하는 일을 주로 했어요. 폭 30㎝의 좁은 철골 위를 걸으면서 하는 작업이 위험하다면 여러 명이 자는 숙소에서 책 펴놓고 공부하는 것은 고역이었어요. 창피하기도 하고 이상한 놈으로 비칠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잘 때 촛불을 켜놓고 주로 공부했죠. 일하다가 쓰고 싶은 글감이 떠오르면 작업 현장의 화장실에 달려가서 쭈그리고 앉아 아무 종이에나 끄적거리곤 했어요. 그게 저의 시 공부였어요.” (한겨레신문 송경동 시인 인터뷰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