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한가
남편은 49세, 나는 39세 즈음
일터에서 만났다.
남편은 호주에서 살다
새로운 아이템으로 회사를 창립하였고
부산에서 살던 나는 아이들과 다른 세상을 꿈꾸며 그가 있는 회사에 취업하였다.
혼자 아이 둘을 키우고 있던 나는 많은 시간을 직장에 소비했다.
금요일까지 동분서주 일을 하다
주말이면 체력소진으로 침대에 누워 피곤함을 덜어내는 나를 보며
아이들은 그저 엄마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란 마음을 갖고 있었다.
내 새끼들 동심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와 나는 업무가 달라 크게 볼 일은 없었지만 회사는 점점 번창했고
대리점장과 나는
본사 교육에 필요한 지침을 전달받기 위해
그를 만나는 일이 점점 잦아졌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는 내가 있는 대리점 업무에 특혜를 주었고,
나와 마주칠 일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을
훗날 알게 되었다.
업무에 관계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바쁜 걸음을 향하고 있을 때
그는 어느새 돌아가는 길목에 서성거렸다.
나에게 격려차 식사자리를 만들어 준다며 때때로 나를 기다리곤 했다.
그렇게 어색한 만남은 시작되었다.
알고 보니 내가 홀로 서느라 최선을 다할 때
그는 강남 아파트에 혼자 거주하며
기러기 아빠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는 초기 자본을 절약하기 위해
혼자 거주하는 아파트에 물건을 적재하고 사무실로 사용했다.
대리점장들 회의도 카페나 지점사무실 또는 그의 집에서 하기도 했다.
약간의 살림살이와 호주에서 생산된 제품이 쌓여있었다.
어느 날 전화가 왔다.
교육 설명 자료를 추가해야 된다며
집에 들르라는 호출 아닌 호출이 왔다.
그는 커다란 거실 책상에 앉아
들어오는 나를 보고 있었다.
왠지 둘이만 있는 공기는 따뜻했다.
멋쩍은 듯 책상 위에 두껍게 펼쳐진 서류를 보며, 일에 대한 딱딱한 이야기로 시간이 흘렀다.
혼밥을 즐기던 그는 카레를 만들다
그윽한 눈빛으로 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어쩐지 그와 나는 삶의 고단함을 보듬는 시간이었다.
그는 한국에 처음 시도하는 제품을 다지는데 인생을 걸어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고,
나는 꺾어진 인생을 잡으려 힘겨운 시간에 잡혀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주 앉아 식사를 했고
심플한 유리잔에 카렌듀라 차를 마주할 때는 그와 나는 나란히 앉아 마셨다.
잔뜩 묻은 흙탕물이 씻겨지는 빨래 같은 시간들을 뒤로하고
아이들 저녁이 내 발길을 바쁘게 했다.
동그랗게 말아 놓은, 머리 위에 리본 핀을, 옷은 밝게, 구두는 반짝이게 ,
그렇게 무거운 한발 가벼운 한 발의 종종 걸음마가 내 걸음이 되어버렸다.
그는 새로운 제품 출시와 기러기 아빠답게 호주와 한국을 오가는 분주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경제적 독립이 필요한 나는 작은 우물에서 벗어나려 미끄러지는 발을 발톱으로 세우며 나오고 있었다.
처음엔 테이프를 붙여 부러진 안경테를 쓰고 피곤에 처진 어깨로 앉아 새로운 사업을 일으키기 위해 생사 갈림길에 서 있는 사람 같았다.
그 모습이 돌에 걸려 넘어진 사람 같아 손을 잡아 일으켜주고 싶었다.
사업은 노력만큼 잘 되었고 나도 노력의 대가로 살림살이가 조금씩 펴졌다.
내업무는 대상자를 교육하면 제품이 판매되고 판매는 매출이고 매출은 인센티브인 급여였다.
함께 일하는 교육팀장들보다 나는 매출이 높았고 높은 매출은 그의 회사 성장에 도움이 되었다.
회사 기여도가 높아지며 그와 나는 공식적 미팅이 늘었고 그는 회사 성장에 몰두했고 난 나의 인센티브에 몰두하며 공식적 미팅도 잦아졌다.
우리는 각자의 일에 몰두하였다.
일과 사랑은 조금씩 발전되고 나는 방황했다.
이러려고.. 후회와 다짐이 번갈아 마음을 난도질했다.
난 좋은 엄마가 되어야 돼
나는 돛을 달고 떠다니는 작은 배가 되어 황망하고 쓸쓸하고 위험했다.
아이들이 짐처럼 느껴지는 어느 날
정신이 들었다.
아버지의 진단
신부전 말기 입원, 신부전 투석..
나는 아버지를 돌보는 일이 필연처럼 다가왔고 회사는 다닐 수 없었다.
그와 나의 희미한 사랑은 끝이 난 것 같았다.
간혹 제품이 남거나 반품 들어온 제품을 들고 와 집 앞 제과점에서 팥빙수를 먹으며 나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회사 이야기를 하면 아련한 기억이 소환된 우리의 애환과 웃음이 끌러 나왔었다.
그렇게 그는 그의 삶을,
나는 나의 삶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아이들은 잘 성장했고
그도 기러기 아빠가 끝이 났고
우리는 다른 세상과 다른 이야기로 그와 나는 다시 만났다.
그러다 드디어 운명의 신이 왔는지 우리는 재혼이란 새로운 인생 명함을 파고 있었다.
그의 명함에는 젊은 날 나와 함께 걸었던 이력과 붉은색 경력이 두 줄 더 쓰여있었다.
파킨슨입니다. 회사는 폐업합니다.
나는 우왕좌왕하지 않았다.
달리던 자동차가 멈추어지는
그 차를 달리게 해주고 싶었다.
멋진 경기를 펼쳤던 그였는데
이젠 멈출 것을 알고 달리는 바퀴가 빠져있는 차를 운전해야 된다니
연민의 정은 서서히 깊어갔다.
그 후 10년
그는 남편이 되어 내 옆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