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실
거꾸로 오르는 연어처럼 아이들은 서식을 찾아 떠났고, 처음처럼 마주 앉은 우리는 따뜻한 공기도 애틋함도 없었다.
식탁 위에 겹겹이 놓인 남편의 약은 척추에서 내려오는 통증의 깊이만큼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때때로 허리에서 이어지는 신경이 끊어질 듯한 통증으로 주저앉거나, 누워있어야 했다. 남편이 내뱉는 통증의 소리는 산고의 여인처럼 절절했다.
허리협착이 다리로 내려가는 신경이 압착되어 통증이 생긴다는 진단을 받았다.
후방 척추의 요추 부분을 열어 신경을 누르는 공간을 확보하는 나사 연결과, 척추를 이루는 뼈와 척수의 흐름을 잡는 보완과 기타의 제거물이 필요한 수술이라 했다.
허리수술로 끝내 고생한 사람이 더 많다는 소문은 쉽게 듣고 알고 있던 터라,
남편은 수술하지 않고 시술로 완쾌된다는 지방에 있는 병원을 먼 지인의 소개로 다니기 시작했다.
지프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남편의 다짐은 대단했다.
새벽부터 3시간을 달려 1일 입원해 시술 치료를 받고 다음날 퇴원 후 경과를 살피는 과정으로 시작되었다.
담당의사는 역경을 이겨내고 신의술을 개발한 의료인이라며 티브이에도 자주 등장하곤 했었다.
친절한 의사의 말솜씨인지, 의술인지에 끌려 희망을 안고 온 환자는 병원을 더욱 유명하게 했다.
ㄱ자 커튼 안에 침대와 의자 하 나, 작은 냉장고. 커튼이 벽이 된 한 칸이 우리의 1인실이었다.
커튼을 사이에 두고 또 다른 환자의 1인실은 장롱 안에 숨어 있던 어린 시절 숨바꼭질처럼 나를 숨죽이게 했다.
입원과 동시에 마취, 시술실로 옮겨졌다. 회복실에서 돌아온 남편은 활어장에 누워있는 다급한 생선처럼 꿈틀대며 깨어나기 시작했다.
코와 입에서 내뿜는 마취제 냄새는 1인실 작은 공간에 퍼져 내 코와 입을 통해 뇌까지 나를 힘들게 했다.
피곤한 새벽잠을 뒤로하고 남편과 동행한 병원, 난 작은 1인실 보호자 의자에서 누워있는 남편의 불편함을 덜어내야 했고 밤에는 시술 후 맞는 수액이 계속 연결되어 수액 떨어지는 방울에 눈을 맞추며 아침을 맞이했다.
나는 진통제가 섞인 링거를 맞고 있는 남편의 침대 끝자락에 몸을 기대어 밤을 보냈다.
남편도 완쾌라는 거대한 목표아래 굳은 의지를 갖고 병원치료에 전념했다.
남편은 병원장을 믿었고 강박증 환자처럼 정해진 시술 날짜와 시술시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따랐다.
통증은 더욱 심해졌고 주치의는 더욱 친절했다.
시술은 늘 같은 시술로 반복되었고 비싼 시술비도 주치의 친절로 실비청구까지 도와주는 병원의 모든 행위가 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생각보다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고 날이 갈수록 다리의 통증은 남편도 나도 몸과 마음을 바쁘게 했다.
난 처음부터 병원을 옮기자 이야기했지만
남편의 생각을 바꾸기 어려웠고 남편의 굳은 신념이 나에 말문을 점점 닫게 만들었다.
더구나 새벽에 나서다 보니 내가 먹을 점심 도시락 준비가 쉽지 않았다.
병원은 보호자 식사 금지에 내부에도 편의점이 없었다.
식사시간은 시술을 마친 남편의 식사를 챙겨야 하기에 외부에 나가서 먹기는 쉽지 않아, 때때로 거르기도, 주먹밥을 , 빵을 허둥지둥 먹어야 했다.
약물 냄새가 입안에서 진동하는 남편의 점심식사에 내 끼니 이야기는 사치였다.
하지만 난 섭섭했다.
아마도 얄팍해진 내 존재감을 서서히 녹여 나가기 시작한 것은 그 한마디를 듣지 못했던 이유였다.
당신 점심은?
나 때문에 힘들지?
그 한마디도 듣지 못한 나는 왠지 매달려 끌려 다니는 종이인형 같았다.
나는 이 남자에게 어떤 존재일까?
나도 허리춤 앞치마에 묻힌 뜨거운 감자를 덜어 먹였던 나의 엄마테는 소중한 사람이었고, 나의 숨소리에 생사를 확인하는 아이들에게도 난 소중한 사람인데...
차라리 혼자였다면..
나에게 관심조차 없는 남편에게 난...
아프니까, 아파서,.. 때문에 그에게 맞추어진 내 시계는 시계가 아니었다.
다음 시술 날짜를 잡고 악수를 청하는 의사의 손에 충성을 외치는 남편을 올려보며
눈 안에 눈물이 서려있어 눈꺼풀을 내리지 못했다.
그 눈물은 재혼한 여자의 자존심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