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다
결손가정이란 딱지를 감추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사느라 바쁜 나를 기다리며 어린둥이는 베란다 난간에 기대 많이도 울었다.
학교 앞 문구점 게임기 앞에 늦게까지 쪼그리고 앉아 있던 둥이.
웃음끼 없던 초등학생 둥이.
"결손가정이라 그런가?" 말이라도 들을까 조마조마했다
중학교 입학은 또 다른 시작이었다.
아이들은 점점 커가고 가장의 신발끈은
뺨에 화살을 맞고 뛰는 전쟁터 병사처럼 단단하게 묶여야 했다. 사회는 빈틈없이 급하고 처절했다.
둥이의 사춘기는 혼자라 외로웠다.
결손가정이라 사춘기 때는 버릇을...
선생님 말씀이 그랬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했는데 아이를 어떻게 때려 다스리냐며 소리쳤었다. 선생님과 엇박자가 나면서 등교는 더욱더 살얼음판이었다.
엄마를 기다리며 울던 초 6년,
잦은 지각과 무기력으로 뭉친 사춘기
중 3년, 고3년.
몸은 일터에 마음은 둥이에게, 풍선처럼 점점 부풀어 오르는 둥이의 침묵과 분노가 나에게는 절망이었다 ㆍ
사춘기 끝무렵쯤 대학입학과 함께 영장이 나왔다.
다행이다.
왜 그렇게 세월에 쫓겼는지 면회라고는 딱 한 번... 자주 갈 걸 , 난 후회만 남았다.
둥이는 군복 차림으로 아무도 없는 아파트 현관에서 손을 들어 나에게 쓸쓸한 전역신고를 했다.
어느새 둥이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처럼 느껴졌다.
가방만 들고 다녔던 6.3.3 세월, 둥이도, 나도 감추고 싶은 과거였다.
둥이는 제대 후 불성실했던 학창 시절 과거를 씻으려 공부에 전념했다.
다행이다.
새아빠의 등장으로 드디어 결손가정에서 벗어났지만
'엄아는 새아빠를 더 좋아하겠지!'
'나보다 자식이 더 좋겠지!'
그들이 느낄 것 같은 생각에 스스로
소심해졌고 누구의 편에 서지 못했다.
입맛이 다른 남편과 자식의 밥상에 오해로 서로에게 눈칫밥이 되지 않으려 했다.
양날의 검처럼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에 재혼이란 유리그릇을 던지고 싶을 만큼 힘들고 위험했다.
그렇게 서로를 알려주고 이해하는 시간이 지나고, 새아빠의 또 다른 사랑과 관심으로 둥이는 학점 높은 장학생으로 졸업했다.
아빠란 이름이 그렇게도 부르고 싶었는지.
. 하루에도 셀 수 없이 아빠에게 질문을 했다
모든 물음과 대답 끝에 붙이는 그 이름
네, 아빠. 알겠어요. 아빠... 아빠, 아빠, 단정하고 명확한 그 이름 아빠.
7살 철부지 아이처럼 졸졸 따르며 부르던 아빠. 아마도 둥이의 무의식에 깊게 새겨진 이름이었나 보다.
대학 4년, 새아빠, 누나결혼. 학점...
둥이는 껑충껑충 스무 살 징검다리를 아슬아슬 하나하나 건넜다.
청년실업으로 둥이가 무너질까 노심초사 마음 졸였다.
하지만, 둥이의 독학 영어가 이력서에 가장 큰 장점이 되어 작지도 크지도 않은 회사 해외부서로 첫 취업이 되었다.
다행이었다.
둥이의 사회생활은 처음부터 부딪히며 고달파 보였다.
남편과 나는 둥이가 늦지 않게 출근하도록 사소한 행동도 조심했다.
둥이 퇴근시간에 맞추어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둥이의 수면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티브이도, 자유로운 거실 이동조차도 하지 않았다.
결손가정으로 힘들었던 어린 시절 둥이에게
사과대신 이렇게라도, 울며 기다렸던 어린 시절, 있어야 했던 엄마의 자리를 채우고 싶었다. 이제라도...
둥이의 뒷모습은 내 눈에 늘 서글픈 그림자 같았다.
중년의 나이에 재혼한 엄마의 마음은 그랬다.
둥이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아빠. 엄마로 있게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둥이는 잦은 출장과 업무로 서글픈 뒷모습을 남기며 서울 어느 골목 원룸으로 분가하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둥이를 기다리며 늙어가는 엄마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