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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스카 Dec 03. 2018

안녕(마침표)

그저 점 하나.

소년, 아니 소녀는. 아니. 성별을 이야기 할 필요 없는, 작품속의 그저 '누군가'로 묘사될 뿐인 아이가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새벽은 반쯤 감긴 눈과 같았다. 덜 감겼고 덜 뜨였다. 휴대전화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떨어뜨린 흔적이 많은, 곳곳에 금이 가 있는 휴대전화다. 이름이 세 글자인, 뒤엔 사과가 그려져 있는. 하지만 아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누군가 길바닥에 버려둔 망가진 걸 주워 잘 닦아 쓰고 있는 거니까. 알람시계로 쓰려고 주운 거니까. 아이는 지금, 이 시간대에 일어나고 싶었기 때문에 알람을 맞춰두었었다. 어쩌면 알람을 들을 수 있다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어둠이 깊다. 파란색의 공기가 특유의 내음을 내게 데리고 오려한다. 아직 밖이 파란 색이었다. 텔레비전은 그 어릴 때의 한 장면처럼 노이즈 가득한 채로 멈춰있었다. 아니, 이따금씩 지-지직거리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주변을 둘러보니 휴대전화가 수십 개였다. 몇 분 뒤면 나를 깨울 예정이었던 알람을 귀찮음을 뒤로 한 채 전부 껐다. 터치가 제대로 먹히지 않은 탓에 오래 걸렸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금이 가고 곰팡이가 피어있는 벽지는 새벽 달빛을 받아 새로웠다. 왠지 모르게 따뜻했다. 아무 것도 없이 깨끗했다면 오히려 더 외로웠을 거야. 비어있는 마음을 마주했을 때 드는 감정을 붙잡고서 왠지 붉어지는 눈시울을 끌어안아야 할 정도로 혼자니까. 그게 더 힘들었을 거야. 나는 이렇게 아무 것도 없고 갈라진 금투성이 인데, 벽지 넌 사람도 아니면서 멀쩡하구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버리니 조금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아이는 그렇게 벽지에 피어 있는, 별을 닮은 곰팡이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일어난 자리에서 제자리 뛰기를 했다. 방 안은 스며드는 달빛을 제외하고는 어두웠지만 뛸 때마다 떨어지는 좁쌀만 한 하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아이는 하얀 존재들에게서 위안을 받았다. 이불은 달빛 아래에서도 누랬다.

꿈자리가 오늘따라 안온하지 않았다. 현실을 두 번 마주하는 것 같았다. 잠에서 깨면 으레 하는 행동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가스레인지는 아무리 돌려도 불꽃 튀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이렇게 된지 일주일이 넘었다. 수도꼭지에서 나는 소리라곤 끼익 거리는 돌아가는 소리뿐. 아이는 어두컴컴한 화장실 바닥을 밟고서 거울을 바라봤다. 발에 감촉이 차가웠다. 마치 눈과 입이 굳어버린 채 양철침대에 누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처럼 차가웠다. 덜덜, 몸이 떨려온다. 팔을 덥석 잡았을 때 그 온기가 너무나 익숙했기에 아이는 놀랐었다. 겨울에 눈을 떴을 때 하루를 맞이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손바닥으로 볼을 부빌 때의 차가움이었다. 그래서 익숙했다. 사람은 그 누구나 죽을 때 차갑게 죽는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타일 위에서 멍하니 수도꼭지를 바라보던 아이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목이 말라 성대가 열릴 때마다 아파왔다. 목소리는 오랜 가뭄 끝에 갈라진 논밭 같았다. 그렇게 꺽꺽대며 웃다가 이젠 뜨거운 김의 흔적조차 사라진 밥통을 팔로 끌어안아 데우고선 화장실을 나와 신발을 신었다.

밖으로 나온 아이는 곧장 오른쪽에 쌓인 물건들 뒤지기 시작했다. 퍼런 비닐봉투를 찾았다. 주워들고서 몸을 옮기기 시작했다. 달빛 새어 들어오는 골목길을 지나 풀숲을 헤치고 드디어 가로등이 비추는 곳으로 나왔다. 밖은 처음 나왔을 때 보다 많이 밝아졌고, 다섯 대의 경찰차를 피해 숨었다. 이따금 눈길을 주는, 밤잠 없는 이들은 아이를 보고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들고 가던 생수를 준 사람도 있었지만 마시지 않는다. 지금 마시면 죽을 테니까. 며칠을 목마름과 열병 속에 버티다, 가끔 찾아오시는 아주머니가 가져온 물을 마시곤 바로 병원에 갔던 경험이 있으니까. 겨우 눈을 떴을 땐 오랜만에 멀쩡한 기분이 들었지만, 하얀 옷을 입은 키 큰 아저씨가 내게 돈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바로 쫓겨났다.

아이는 한참을 걷다 다리 위에 섰다. 더 이상 사람은 없었다. 주워 입은 옷 중 가장 하얀 옷을 입고 모자를 써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자동차들이 멈춰서는 일도 없었다. 아이는 다리 위에 섰다. 들고 온 파란 비닐봉투를 풀어헤쳤다. 손때가 묻어 꼬질꼬질한 편지와 깔끔하고 구김 없는 사진이 있다. 아이는 잠시 그 편지를 펼쳐 읽었다.

안녕, 아빠야. 엄마는 멀리 여행을 가기로 했어. 여행을 가서 쉬고 온대. 그러니까 조금만 참아주렴. 아빠도 같이 가고 싶었는데 아빠는 너랑 놀아줘야 되잖니. 게다가 엄마만 갈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그래서 엄마는 오랫동안 못 볼지도 몰라. 하지만 무럭무럭 클 때쯤이면 돌아온다 했어. 엄마를 다시 볼 때 씩씩하고 건강하고 착하고, 라면에 있는 당근도 좋아하는 아이가 되어야 엄마가 좋아하겠지? 그치? 내 새끼. 아빠가 많이 보고 싶은데 내 새끼 밥 먹여주려면 돈 많이 벌어야 해서 못 보러 갈 것 같아. 이틀만 집 잘 보고 있으면 아빠가 팔 벌려 안아도 모자랄 만큼 돈 준다 했거든. 기대되지? 아빠도 정말 기대 된단다. 그래서 토요일에나 갈 수 있을 것 같아. 미안해. 아빠가 많이 바빠서. 이번 주 주말에 꼭 보자.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내 새끼. 사랑해. 아빠가.

아이는 편지를 접고 오른손에 들고 있던 사진을 보았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신비로웠다. 파란 달과 하얀 햇빛이 같이 떠 있었다. 아이를 보고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도 따라서 웃었다. 눈가에선 별 한 줄기가 흘러 바닥에 떨어졌다. 달이 떨어졌다. 아이가 있던 그 자리엔 꼬깃꼬깃한 편지가 바람에 날아가고 있었다. 오로지 해만이 하늘위에 떠 있었다.



후기.
가끔 새벽에 무릎을 끌어안고 고독을 느끼며 세상에 다시없을 외로움을 느끼곤 했다. 나만 이렇게 불행하진 않을 거야. 이 시간만큼 외로운 일은 없을 거야, 내일은 다를 거야. 공허해서 서러웠고 서러워서 고독했다. 지독한 외로움이었고, 돌파구는 찾지 못했다. 단지 미래를 붙잡으려 애쓰고, 나를 보듬으며 보내는 시간들이었다. 내가 단절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무엇의 노래를 들으며 울어보았다. 머리가 핑 돌 때쯤 새벽 냄새가 났다. 또, 다시 아침이 온다. 나의 안온함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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