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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스카 Nov 16. 2018

시간은 약이 아니다.

- 나의 파괴와 재생

시간이 약이라는 말. 흔히들 위로를 할 때 하는 말이다. 언젠가 모든것은 잊혀지기 마련이고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 틀린말이 아니지. 시간이 흐르는게 맞는 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일 와닿지 않는 말이다. 내가 한창 병원을 다니던 시절에 나는 내 상황, 모든것들이 나를 갉아 먹고 있었다. 내 마음은 이미 너덜너덜해져 이불에 얼굴을 푹 쳐박고는 소리지르며 울부짖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때의 나는 아팠으니까. 이런 상황속에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무슨 소용일까. 나는 기댈곳이 필요했다. 사람을 찾고 실망하기를 반복하며 내 내면은 곪을대로 곪아버렸다.

고름이 꽉차 있는 상태로 괜찮다고 자기 최면을 걸다보니 살만했다. 그래도 버틸 수 있을것 같았다. 내가 다 망쳤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삶을 버티게 해주던 작은 기둥하나가 무너져 내렸다. 의지가 없어졌다. 그때 나는 한번 죽었다. 그 날, 그 밤. 절대 잊을 수 없고 잊어선 안되는 그 밤. 그날부터 지옥이 시작 되었다. 시간이 약이라고 말을 하는 이들의 말은 귓등으로도 들리지가 않았다. 철학을 조금씩 공부하기 시작했다. 다른 몰두할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뭐든지 하기 시작했다. 게임에 미쳤다. 영화에 미쳤다. 뭐든 했다. 그렇게 나만 멈춰있는 시간이 흘렀다.

무언가 좋은 말이 필요했다. 종교채널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정말 우연히도 불교채널 시선이 안착했다. 그때 이름 모를 스님 한분이 이런 이야길 하셨지.“시간이 가면 모든게 지나간다고 하지만, 고통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정지돼요. 시간이 가지 않는다고요.” 눈물이 핑 돌았다. 지나가다 듣게 된 말이지만 어찌나 위로가 되는지. 이 깊은 이해에 감사한다. 그 날 깨달았다. 슬픔은 슬픔으로 두어야 한다고. 언젠가 시간이 흐르기 시작 할 날까지.

가두켜둔 나의 마음이 이제는 조금씩 몸을 들어 일으키기 시작했다. 내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니 이미 많은 시간이 흘러버린 뒤였다. 이 흐름에 편승해야한다. 이제는 살아가야지. 나를 살아가야지. 느껍게 차오르는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나의 아픔으로 힘들게 했던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다분하다. 잘 버텨준 나에게 감사한다. 오늘 또한 좋은 친구와 좋은 식사를 나눌 수 있던 이 밤이 감사하다. 영화를 즐길 수 있게 해주는 나에게 감사하다.

얼마전 영화 스타이즈 본을 보았다. 브래들리 쿠퍼의 망가져가는 마음이 레이디 가가의 무대를 망쳤다. 죄책감을 가지고 힘들어 했으며 어떻게든 이겨내기 위해 집단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레이디 가가의 매니저는 ‘당신이 다 망쳤다.’ 라고 말을 건넸지. 그 밤이 생각났다. 나와 똑같이 마음이 무너졌고 영화의 브래들리 쿠퍼는 죽었다. 어떤 마음인지 알기에 영화 말미에 너무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마음은 내가 앉아있던 자리에 고스란히 두고 나왔다. 나는 영화의 감상에 젖어 다시 멈출 수 없다. 나아가야한다. 나에게 고마운 사람들을 위해, 나를 위해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한다. 그게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보답이고 내가 나를 위할 수 있는 최고의 노력이다.

그러니까 더 나은 내가 될게. 시린 겨울이 지났으니까, 이제 나를 맺혀야해. 무엇보다 고운 꽃으로 나를 피워낼게. 그렇게 당신에게, 당신들에게 어여쁜 꽃으로 존재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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