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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스카 Jan 31. 2019

오늘의 일기

파랗게 멍든 시간들. 38

친구들과 저녁 고르던 중에 너에게 온 카톡을 보고 바로 집으로 출발했어. 곱창 먹자고. 그 단순한 말에 친구들에게 미안하다 한마디 남긴 채 바로 너에게 가려했어. 추레한 모습으로 너에게 가기 싫어서 약속시간까지 남은 시간을 잘게 쪼개 샤워를 하고 제일 아끼는 옷으로 갈아입고서 바로 달려갔어. 버스로 30분. 건대입구역 도착할 즘에 네가 먼저 도착했다고 카톡이 왔지. 설레었어. 네가 좋아하던 곱창집에 갔고, 취한 너에게서 지난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다른 이성에 대한 고민도 들었어. 속상했어. 그런데 그게 무슨 소용이야. 지금 나는 그런 것보다 네가 중요한데.

네가 다른 사람이랑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속상하지만 지금은 그냥 네가 좋아서 너랑 있는 시간만으로도 행복한데 어떻게 해. 굳이 그럴 필요 없는데, 우리 집 가는 다리만 건너면 되는데도 너희 집에 데려다준다고, 집 앞까지 쫓아갔어. 너희 집 앞에서 같이 태운 담배 한 까치. 난 아마 네 덕에 담배를 끊지 못할 것 같아. 아니 이건 핑계야. 사실 끊을 생각 없어. 그런데 그게 너라서 그렇다는 의미 부여하고 싶었을 뿐이야. 오는 길 내내 너는 건대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 그리고 애착을 이야기했고 너희 부모님에 대한 자랑을 했어. 나는 또 들어주었고. 네가 좋아서 그저 들었어.

그래 지금은 그냥 네가 좋아. 맞아. 나는 그래. 그랬고 또 그럴 거야. 많이 좋아해. 사실 무서워. 이 마음이 커지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또 많이 울 거 같아. 그럼에도 굽히지 않고 있어. 이 마음은 싫지 않게 울 수 있을 거 같아. 뭐, 기분 좋게 운단 이야긴 절대 아냐. 나름 질투도 많고 욕심도 많아서 아플 거 알아. 뭐 어때. 너 때문에 울고 있는 건데. 있지. 요새 들어 드는 생각인데 겨울의 끝자락인 것 같아. 봄이 오나 봐. 전보다 따뜻해져 가는 기온을 실감해.

나만 그런 걸까? 널 생각하니까 따뜻해서 니트에 가디건을 입고 나갔었어. 근데 밤공기가 쌀쌀한 건 어쩔 수 없나 봐. 그래서 너를 보러 가는 길에 좋아하던 반목티에 셔츠자켓을 입고 코트를 입었어. 생각해봐. 너 보러 간다고 머리 감고 샤워하고 드라이 신경 쓰고 헤어 에센스에 옷 갈아입고 비비까지 발랐다니까? 그 밤에? 참 애썼어 난. 그리고 취해 있는 밤 동안 잠깐잠깐 우리 담배 태우러 나갔잖아. 너랑 있어서 춥지 않더라. 이건 어쩌면 나에게 봄이 오는 중이라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너는 그런 나에게 꽃으로 피어줘.

어서 날이 풀려 네가 말한 영동대교를 같이 걷고 싶어. 네 스무살 초입을 함께 했던 그곳을 나도 너와 같이 걷고 싶어. 그렇게 걷고 나면 내가 스무 살 중반을 시작했던 낙성대에 너와 함께 가서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 그 앞에서 또 우리 같이 담배를 나눠 태우자. 그리고 산도가 높은 아메리카노 한잔으로 입을 헹구자. 그리고 달달한 초코 범벅을 하나씩 사서 맛있게 먹자. 내가 남긴 것 까지 다 먹어. 너는 먹는 게 보기 좋아. 너에 대한 애정을 글로 적고 있자니 끝이 나질 않아. 결론은 이거야. 나는 지금 네가 너무 좋아져 버렸어.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언니네 이발관 노래가 생각나. 이런 이런 큰일이다 너를 마음에 둔 게.

아 오늘 나는 네가 젤리를 좋아하지만 많이 먹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어.


글. 김태현

그림. 윤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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