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가 바라보는 쉼의 의미
브런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글을 통해 모자이크의 근간을 이루는 사고의 흐름과 치열한 고민의 흔적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나눠볼까 합니다.
우선 첫 시작으로 모자이크의 브랜드 철학에 깊이 스며든 ‘쉼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적어보았습니다.
머릿속 산발적인 생각들을 끄집어내어 다소 두서없을 수 있으니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모든 게 호기심 투성이던 초창기 시절, 문득 “쉼이란 무엇일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았다.
부동산의 메커니즘과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고민에만 몰두하던 차라 섣불리 대답하기 어려웠지만 분명 이 질문에 대한 우리만의 대답, 즉, 명분을 만들어야 했다.
쉼에 대한 사전적인 정의는 죄다 “피로를 풀기 위해 몸을 편안히 두는 인간의 상태(being)”류의 피상적인 말의 나열이라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조직 심리학을 연구하는 ‘수잔 윌리스 조글리오(Suzanne Willis Zoglio)’ 박사가 그의 저서 [생각의 털어버려라, 그리고 재충전하라]에서 언급한 아래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쉼이란
최상의 자기 자신으로 복원력을 강화해 주고,
매일 부딪치는 역경에 맞서 싸우기 위한 에너지 충전 도구를 갖추게 해 주며
에너지 저하를 치료하기 위한 응급처방이다.
꽤나 그럴싸한 말이지만 사실 이 역시 온전히 공감이 되지는 않았고, 보다 피부에 와닿는 기준을 찾아보던 중 2022년 경제사회통계연구실에서 발행한 [한국사회동향 보고서]에서 흥미롭고 무심하기까지 한 대목을 발견했다.
쉼 활동은 ‘나의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거나 자면서 쉬는 경우가 많았음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아무것도 안 하기’, ‘수면이나 낮잠’, ‘TV 및 동영상 시청’을 선택한 비율이 무려 70% 라는 것이다.
이상적인 사유로서의 쉼과, (적어도 국내) 현실에서의 쉼은 다른 듯하다.
쉼은 정신적인 재충전의 활력이 되어야 하지만, 현실에서 ‘쉼’이 가지는 의미는 단순히 직장과 업무에서의 상태 변화에 그쳐있다.
수년 전 화제가 되었던 [피로사회(한병철 저)]라는 책에서 읽었던 구절이 생각났다.
우울한 인간은 노동하는 동물(animal loborans)로서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물론 타자의 강요 없이 자발적으로.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 (......)
분주한 것의 반복은 어떤 새로운 것도 낳지 못한다.
"피로 사회"라는 키워드를 기준 삼아, 쉼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사고의 흐름은 이렇다.
현대인들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경제활동을 하기 위한 다양한 제약 상황 속에서 살아간다.
집과 사무실로 대변되는 매일 같은 공간 속에서 지나치게 반복된 행위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생존을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다.
현대인들의 일상은 이러한 무한 반복의 굴레 속에서 누적된 피로의 연속이며, 저마다 소소한 일탈을 계획하지만 또다시 경제활동이라는 무거운 책임감에 일상으로 회기 하곤 한다.
만약 같은 행위를 함에도 일상과 다른 특별한 공간 속에 있다면, 혹은 일상의 공간이라도 평범하지 않은 새로운 행동을 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쉼이지 않을까?
그러니까..
‘같은 회사 업무라도 삭막한 사무실이 아닌 제주도의 바닷바람을 배경 삼는다거나’, ‘치맥을 먹으며 K-드라마를 보더라도 방구석 소파가 아닌 강원도 어느 산골의 개울가에서 발을 적시고 있다거나’라는 식이다.
적어도 일상의 단조로운 반복에서 벗어나 ‘내가 선택하는 이 공간에서, 이런 행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 대견스럽기도, 주변에 나의 현재를 자랑할 정도의 일종의 우월감(?) 정도는 환기할 수 있을 듯하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히 쉼일 듯하다.
여기서 감히 ‘쉼’을 정의를 해보자면,
쉼이란 일상에서 벗어난 비일상 속에서 누리는 소소한 자유를 통해 나를 회복하는 것이다.
반복적으로 강요받는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자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공간과 행동의 자유를 통한 회복 말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선택의 자유를 갈구하지만, 막상 자유가 주어졌을 때 어딜 가야 할 것이며, 거기서 또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
모자이크는 어쩌면 누군가의 쉼을 도와주는 "큐레이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큐레이터의 역할은 누군가의 취향에 맞게 어떠한 어젠다의 선택과 집중을 제안하는 것이다.
쉼을 ‘자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공간과 행동의 자유를 통한 회복’이라고 본다면, 공간적인 선택지들은 충분히 있다.
정작 나만 하더라도 쉬고 싶은 날엔 도장 깨기 하듯 호텔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호캉스를 하곤 한다. 근사한 식사와 수영, 훌륭한 조망. 사고회로를 잠시 꺼두고 일상에서 벗어나 소소한 일탈의 순간을 누린다.
다만, 이상하게도 공간들이 저마다 기시감 들 정도로 닮아있다.
호텔과 리조트의 객실은 물론이거니와 어느새 독채 펜션 또한 감성숙소라는 카테고리로 획일화된 채 양산되고 있다.
사실 대부분의 주거용/상업용 부동산은 개발 과정에서 수익성이 중요하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모든 경험은 공간에서 나오기에 경험 또한 마치 데자뷔처럼 계속해서 반복되곤 한다.
과연 이러한 선택지들이 우리의 쉼에 대한 욕구를 풍요롭게 채워줄 수 있을까?
이미 존재하는 것들 또한 반복의 연속이라면, 쉼에 대한 선택지를 넓혀주는 것이 아니다.
이 지점에서 모자이크가 한몫을 해줘야만 할 것 같다.
모자이크의 역할은 적어도 특정 소비층을 위해 공간과 경험에 대한 선택지를 넓혀주고 개개인의 취향과 상태에 맞게 최적의 선택을 제안해 주는 것.
아직 국내에는 반복의 때가 묻지 않은 낯설고 고유한 지역 자연이 많다. 물론 전통적인 부동산 관점에서 개발의 가치가 있는, 즉 시세 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땅은 아니다. 그래서 더욱 한적하고 아름답다. 생각이 많은 날이면 언제든 와서 숨어버리고 싶을 정도다.
모자이크는 저마다 고유한 매력을 지닌 다양한 지역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 특색 있는 자연경관을 보존하고 문화와 예술을 결합한 형태의 특화된 공간과 다채로운 콘텐츠, 사려 깊은 서비스로, 지역 자연에 대한 존중을 보여준다.
우리의 큐레이션은 이러한 공간적인 선택지뿐만 아니라 그 공간에서 경험하는 모든 활동을 포괄한다.
거실 소파에 누워 K-드라마를 보다 문득 본 창 밖의 강이 아름답다. 당장 창을 열고 수영장으로 뛰어든다. 수영하며 바라보는 강이 더욱 아름답다. 물장구를 치다 보니 몸이 스산하고 허기가 진다. 타올로 물기를 대강 털어내고 모닥불을 피우며 고기를 굽는다.
수영뿐만 아니라 캠핑, 테니스, 요트 등... 제공할 수 있는 경험은 충분히 많을 것 같다.
우리팀의 미션은 정해졌다.
모자이크는 소수의 회원들을 대상으로 계속해서 쉼에 대한 넓은 선택지(공간, 행동)의 자유를 제안해 준다.
우리의 회원들은 치열하게 살다 가끔 이곳으로 숨어 들어와 외부와 단절된 채 온전한 쉼의 순간을 누린다.
그 순간 속에서 나를 돌아보며 지난날을 돌이켜 보기도 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 시간은 또다시 재충전의 활력이 되어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남아 최상의 나를 만든다.
모자이크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