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어가는 맛에 대한 그리움

by Jane Anne


얼마 전 마트에 갔더니, 껍질이 보슬보슬 일어나 분이 날 것 같은 감자가 가득 쌓아져 있었다. 내 주먹보다 더 큰 감자를 봉지 중간쯤 담아왔다. 감자는 늘 사는 거지만, 햇감자를 보니 옛 기억이 떠올라 하나씩 정성스레 담았다. 요즘은 시골에서 자라난 경험이 참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과 감자 캐던 추억들이 주렁주렁 함께 달려 나온다. 부모님은 감자를 캐오던 날부터 밥솥에서 감자를 함께 찌셨다. 밥상에 삶은 감자가 수북하게 올려지면, 엄마, 아버지는 밥을 덜어내고 그 자리에 감자를 담으셔서 즐겨 드셨다. 햇감자를 사 온 중년의 나는 엄마, 아버지를 따라 하고 있다. 그러고는 이제야 담백하니, 포슬포슬한 감자가 맛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이십 대 때, 남자친구와 이별고 신문의 삽화를 스크랩해 뒀던 기억이 난다.

남자와 여자가 이별을 얘기하고 있다. "나와의 추억들을 잊어버리지 않을 거지?", " 내가 군대에 있을 때, 휴가를 나올 때마다 찾아갔던 근처 떡볶이집이 있었어. 그 맛을 지금도 못 잊어, 그런데 어떻게 너와의 사랑을 잊어버릴 수가 있겠어?"

그때는 사랑에 대한 기억이 영원할 줄 알았다.



가끔 내 머릿속에서는 어딘가에 단단히 박혀 꿈쩍도 않고 있다, 갑자기 습격을 당한 것 같은 기억들이 나타나 짙어질 때가 있다. 엄마는 아카시아 꽃이 필 때 바다에서 잡힌다던 꽁치를 궤짝으로 사서, 젓갈을 담그셨다. 굵은소금을 가득 뿌리고, 항아리 뚜껑에는 진피나무(제피나무)를 꺾어놓았다. 정갈하게 숙성된 꽁치 젓갈로 여름내 톳나물을 무쳐주셨다. 엄마 고추장으로 만든 초장은 얼마나 상큼하고 깔끔하든지, 진한 미역국은 집간장이어야만 되는데....

지금은 대부분의 양념을 마트에서 돈을 주고 사서 먹지만, 엄마의 그 맛을 구할 수가 없다. 늙은 우리 엄마는 "남이 해주는 음식이 맛있다" 하시며, 그 귀하디 귀한 손맛을 세월 앞에 내려놓으셨다.



사랑은 잊혀 가는 거였다. 내가 몇 살 때 그를 만났는지, 그의 어떤 점을 좋아했는지 점점 희미해져 간다. 하지만 고향집에서 젊은 엄마가 어린 나에게 해줬던 그 음식들은, 왜 이리도 선명해지고 있는 건지.... 그 맛에 대한 기억이 불쑥 튀어나오면, 스스로 잠잠해질 때까지 어찌할 도리가 없다.









# ( 햇감자 사진을 그때 찍어두질 못했습니다, 뜬금없이 가지와 오이 사진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