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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Jul 08. 2021

떠나봐야, 생각할 수 있는 것

제주로 떠나왔다. 그리고 이곳에서 새롭게 적응을 한 뒤 지난 시간들의 걸음을 돌아보았다. 어떤 사람들과 내 삶을 걸어왔는지, 그리고 무엇이 나를 이렇게나 밑바닥을 치게 만들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낯선 이들에게 나를 소개하고, 그간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면서 내가 무엇 때문에 지쳤고, 무엇이 그렇게 화가 나고 억울했고, 무엇이 그렇게 나를 힘들게 했었는지를 정리할 수 있었다. 

서른한 살이 된 지금에서야 인생을 살아가는데 모든 것이 나에게 딱 맞아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좋은 직장인 것 같아 내 나름의 기준에 따라 선택을 하더라도 막상 그곳에서 누구를 만날지 모를 일이고. 내가 선택해서 들어간 것이니 또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나에게 지워진다. 

이래나 저래나 나의 업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지난 2년의 시간 동안 지시, 통제, 명령을 내리던 상사, 비난과 지적을 서슴지 않았던 상사 밑에서 있으면서 내가 아닌 존재로 살아와야 했던 시간들이 너무나 버거웠던 것이다. 불의한 상황에 맞서고, 내 목소리를 내며 눈에 가시 같은 존재로 살아왔던 그 지난 시간들이 너무나 벅찼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그나마 좋았던 동료들이 하나 둘 떠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왜 나는 여기 있을까', '왜 놓지 못하는 것일까'를 끊임없이 물으며 스스로를 몰아붙여가며 옥죄였던 것이 너무 후회가 되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왜 그렇게 밖에 대응하고 대처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혈기가 왕성했던 젊은 날의 패기였을지도 모르겠고, 다시 돌아가도 그렇게 행동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빠르게 판단을 내렸어야 하는데, 사실 그때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잘 몰랐다. 몸으로 부딪히며 알게 되는 것들이, 지나 봐야 아는 것들이 더 많으니까. 

반면에, 내가 누군가에게는 좋은 동료였을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정말 함께 일하기 싫은 동료였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참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도 든다. 누군가 탓을 하고, 내가 한 실수에 변명하고, 합리화하고, 일을 떠넘기면서 잔머리를 굴렸던 시간들도 분명히 있었다. 떠나와서 생각해보니 늘 '누군가의 잘못'이라 생각했던 내가 그 속에서 '나의 잘못'도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다음에는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나에게 그리고 함께 하는 이들에게 좋은지, 또 어떤 기준과 태도와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상사를 대해야 하는지를 다시 정리하고 생각해보게 돼서 유익한 시간이다. 

무엇인가를 그만둔다는 것은 다시 또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그만두면서 지난날들을 복기하며 충분히 곱씹고 정리를 하고 털어낸 다음 그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홀가분하면서도 아쉽기도 한, 후회도 남는 이 마음을 제주에서 생각해보니 한결 마음이 편하고 여유를 가지고 돌아볼 수 있게 됐다. 자기 객관화가 된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이렇게 나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함께 시간을 보내준 친구들 덕분에 내 안의 나를 돌아볼 수 있었던 것 같아 모든 만남에 참 감사하다. 

이제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해야 한다. 충분히 에너지 충전이 되었다. 제주에서 쉬어가는데 어떻게 충전되지 않을 수가 있겠나. 이제 또 다시 첫걸음을 하나 둘 떼면 될 것 같은데, 자 이제 어디로 걸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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