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30
되게 건방지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음악프로그램을 보고 말이다.
수료를 하고 도대체 무엇을 할 거냐는 엄마의 말에 마음속 깊이 묻어뒀던 유학이야기를 아주 조심스럽게 꺼냈다. 엄마는 유학을 가서 뭘 배울 거냐고 네 나이에 무슨 유학이냐고 하셨지만 과거에 두 번이나 엎어졌던 유학에 대한 기억이 내 인생을 통째로 한스럽게 만들 것 같다고 말했다.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이유는 많았지만 이런 이유로만 엄마에게 유학에 대해 말한 이유는 과거의 대한 후회가 이유인 게 더 와닿는다는 심리상담 선생님의 말을 듣고서였다. 그리고 한국에 자리를 잡고 싶지 않다고는 기어코 엄마에게 말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대학원을 수료하면 31살, 학비가 그나마 저렴한 독일이나 프랑스로 유학을 준비한다면 언어 준비가 필수인데 아주 아주 짧게 6개월을 잡는다면 준비기간과 지원까지 1년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럼 32살. 30대 초반인데 한번 더 도전하면 어떠냐며 나의 인생도 인생이지라고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제는 엄마아빠가 너를 도와줄 수는 없다며 3년 뒤면 정년퇴직인데 퇴직 후에 자금을 우리도 모아야 하지 않겠냐는 엄마의 말에 머릿속에 토네이도가 몰아쳤다.
엄마의 말을 뒤로하고 방에 들어와 생각에 잠겼다. 지금 나에게 시간은 금인데 나는 그 시간들을 잘 쓰고 있을까 하고 말이다.
대학원에 들어온 지 벌써 10개월. 입학한 첫 학기에 전시를 한 것을 보면 그래도 제대로 하고 있다 생각이 들면서도 고작 이것밖에 안 하고 있나 라는 생각이 교차하며 머리를 지배하는 요즘이었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2학기가 벌써 두 달이나 흘러갔는데 나는 얼마나 많은 그림을 그렸고 얼마나 많은 글을 썼으며 중요시 여기는 독서와 언어공부는 얼마나 했을까. 또 나는 매주 세우는 그 수많은 계획 중에 이렇다 하게 멋진 한 주를 살아간 적이 있느냐고 자신에게 물었고 나의 대답은 'NO'였다.
알바를 하며 바쁘게 학교생활을 했다고도 자신 있게 말할 순 없었다. 학비를 조교급여로 퉁치고 집값은 부모님께서 받을 지원 해주시고 또 자잘하게 한 번씩 용돈을 받으면서 주 2일 파트타임 편의점 알바에 거의 매주 주말에 일용직근로를 하지만 모아져 있는 돈은 하나 없는 나의 통장을 보며 나는 어떤 낭비를 하며 이 시간들을 살아왔나 생각해 봤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필요이상으로 옷을 사고 신발을 사진 않았을까. 감정에 치우쳐져 인스턴트 같은 행복을 맛보기 위해 배달음식을 또 술을 필요이상으로 섭취하진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이 나이가 되어서 20대 때의 나처럼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만으로 살아왔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물론 여행이 주는 영감이 내게 아주 대단하기는 하다만 여행을 다녀왔다면 나는 결코 무언가를 그리고 무언가를 써 내려갔어야 했다.
그리고 이번 주말 꿈에만 사느라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 나를 돌아봤고 현실에 남아있는 나는 그냥 게으르고 욕심만 많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30대를 맞이하고 또 좋아하는 것이 있는 생을 맞이하고 심적으로 이렇게 힘들어도 괜찮나 싶은 날들도 있었고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행복했던 날도 있었지만 그건 현생을 살아가는 누군가에게나 있을법한 날들이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할 수 있음을 감사히 여겨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한번 죽으면 끝나는 목숨이 아닌 인생 통째를 걸고 나의 시간들을 보냈어야 했는데 너무 낭비스러웠던 지난날의 나는 시간을 허투루 보낸 바보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에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없는 여건 속에서도 그 끈을 놓지 않고 열심히 일궈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건방지게 시간을 쓰고 있나라는 자책감으로 한주를 마무리했다.
누군가에게 어떻게 보이냐 보다 내가 뿌듯한 인생을 살아감이 중요함을 느꼈다. 지켜지지 않을 과한 한주의 계획들보다는 실천할 수 있는 필요한 한 주의 계획들을 세워야겠다고 말이다. 이 글을 써 내려가고는 나는 또 돌아오는 한 주를 계획할 거다. 하지만 지금부터의 나는 한주는 돌아오지만 지나간 한 주는 돌아오지 않는 다는걸 꼭 기억하고 살아야 한다.
반성문같이 써 내려간 이 글이 훗날 읽었을 때 '내가 이때쯤 정신을 좀 차렸구나' 싶은 글이 되어있길 바란다.
am1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