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떠나는 일의 장점

by 느림주의자

오랜만에 문장을 써 내려가려니 막막함이 앞서지만 오늘 느낀 감정을 남기지 않으면 기억에서 지워진다는 걸 너무도 잘 알기에 억지로나마 키보드를 두드리게 되었다.


도시를 떠난 지 벌써 두 달이 되어간다. 누가 나이에 따라서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빨라진다고 했던 거 같은데 나의 경우에는 그것보다 두 배는 더 빠르게 느껴진다. 아마도 잘하고 싶은 마음과 현실이 자주 부딪혀서일 거라고 생각한다. 한 것도 없이 두 달이 지난다는 건 지난날을 매우 바쁘고 계획적으로 살아온 INFJ로서 큰 자괴감이 들게 만들기도 하지만 '내가 언제 또 이렇게 시간을 써보겠어.'라며 자기 합리화로 뇌를 가득 채우며 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제주에 온 지 며칠이 되지 않았을 때 여러 종류의 어려움에 부딪혔다. 그도 당연할게 결정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방을 구하고 작업실을 구하고 내려왔기 때문에 그 빠른 결정과 판단들 속에서 몇 가지의 실수가 있었을 거다. 그리고 제일 큰 문제는 금전적인 문제였다. 제주에 내려와 알바를 하자니 작업실을 차리고 누군가를 가르치려 준비 중인데 최대한 이곳에 집중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크게 내키지 않았다. 사야 할 건 많았고, 통장은 채워지기 무섭게 비워지기 마련이었다. 공사장 같았던 작업실을 사람이 드나들 수 있게 가꾸고 보살핀다는 건 인생을 공부하기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사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자책과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올 거 기 때문에 지나간 일에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 인생 공부를 했다고 자기 합리화 중이다.)


누군가는 서울에서 온 나를 얕잡아보고, 누군가는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안 그래도 상처를 잘 받는 나는 머릿속에서 걱정과 불안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해가 전부다 진 저녁 찾은 산방산에서의 별들은 나를 위로해 주기 바빴다. 어느 날은 제주는 나를 왜 이리 힘들게 만들까, 왜 이리 속이기에만 바쁠까 싶었는데 너무 반짝이는 별들을 보면서 밉기도 한 이 제주와 위로를 해주는 제주 사이에서 혼란스러움에 눈물도 흘렸다.


제주에 살고 있는 I는 내 고등학교 친구인데 이 척박한 제주에서 엄청난 힘이 되고 있다. 고등학교 친구라고 해서 성격을 전부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이곳에 홀로와 대화도 많이 하고 성인이 돼서 나누는 이야기들은 학창 시절과는 또 다른 차원이었고 우리는 이렇게 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내성적이고 생각이 많을 줄 몰랐다는 I는 나와 어느 주제이든 대화를 나눌 때마다 놀랐고 우리는 이렇게 또 알아가고 알아가는 과정에서도 가까움을 느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제주에서 나는 기껏 두 달이지만 많은 게 변했다. 33년 평생을 알람이 없이는 일어나지 못했는데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8시면 눈을 뜨고 아침운동을 나갔고 밤 10시가 되면 하품을 한다. 도시에서 한 번도 끄지 않았던 에어팟 노이즈 캔슬링을 산책을 할 때면 끄고 자연의 소리와 잘 어울리는 음악을 배경음악정도의 크기로 소리를 조정하고 듣고는 한다. I는 나의 말을 듣고 너같이 활동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제주에 왔다가 금방 도시로 떠나버리는데 신기하다고 했고 나는 아무래도 내가 내향적이라서 시골의 조용함과 이곳만의 활동적인 자연이 잘 맞는 거 같다고 추측했다.


매일 같은 길을 지나가도 매일의 하늘이 너무도 다르다. 그래서 매일이 기대된다. 이게 어쩌면 도시를 떠나 자연에서 살아가는 삶의 장점이 아닐까.

도시의 야경보다 밤바다에 비친 달빛을 보는 것, 매일 다른 모양의 구름을 가림막 없이 보는 것, 비가 오면 바람으로부터 불어오는 자연의 향기를 맡는 것.


2025년 9월 3일 수요일 오후 8시 49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