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사라졌다. 그래도 아홉 시 전에는 일어나지만 아무래도 지인이 제주도에 머물다가면 나의 루틴이 깨지기 마련이다.
족저근막염이 심해져서 한동안 러닝을 못했다. 러닝을 할 때는 7시에 일어나서 하루가 굉장히 이상적이었는데 산책으로라도 루틴을 돌려볼까 생각 중이다. 한국에는 어쩐지 러닝붐이 일어서 많은 사람들이 러닝을 하는데, 러너 오 년 차인 나로서는 또 언제 이 붐이 사라질지, 이 붐이 사라지면 러닝이라는 행위가 또 얼마나 슬퍼할지 마음에 쓰인다.
최근에 펜션청소알바를 시작했다. 제주에 사는 친한 친구 C의 조언 덕분이었다. 제주도에 와서 일정한 시간대에 해야 하는 알바는 하지 않겠다고, 그곳에 시간을 쓰면 나의 작업에 그만큼 시간을 쓰지 못하니까 그러지 않겠다고 줄곧 이야기해 왔다. 그런 내게 C는 가계상황이 어려우면 펜션알바는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스케줄이 일정하지는 않지만 만원이 시급한 이 상황에서 하루에 약 3시간을 쓰고 5만 원을 버는 건 큰 수입이었다.
오늘은 청소를 가는 날이라 준비를 시작했다. 직접 만든 그릭요구르트에 시나몬 사과잼, 바나나와 그래놀라를 넣어 건조기를 기다리면서 먹을 점심을 준비했다. 펜션 근처에서 잠을 깨워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하나 사서 펜션에 도착했다. 나와 같은 나이에 사업확장에 재능이 있으신 것 같은 펜션 사장님은 이미 4채의 펜션을 에어비앤비로 운영하고 계셨고 그분을 만나고 내 모습이 조금 작아지기는 했다.
펜션청소알바의 또 다른 장점은 누군가와 함께 일하지 않고 나 혼자서 열심히 청소만 하면 된다는 점이었다. 이어폰을 끼고 청소를 하다 보면 잡생각이 사라진채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에만 집중하게 되는데 스팀걸레까지 돌리면 정말 상쾌하고, 화장실 청소를 할 때면 햇살이 잘 들어서 무지개까지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조금의 루틴을 만든 건 우울증에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도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고 싶다는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대학을 휴학하고 8년 동안 여행을 다녔는데 그때부터 숙박업을 운영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청소를 끝내고 C를 만나 함께 강아지들 산책을 했다. 무해한 녀석들을 보면서, 나도 함께 무해해지고 싶었다. 제주도에서 그래도 아직 버틸만한 이유는 C라는 좋은 친구가 있어서이다. 나의 안녕을 끼니를 걱정해 주는 C에게 고마우면서도 내가 너무 C에게 짐덩어리는 아닐까 걱정되어서 조금 더 빨리 괜찮아지고 싶은 이유 중에 C도 포함이 되어있다.
C를 만나고 제주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지인인 Y를 만나러 갔다. Y의 막내 동생은 대학진학을 앞두고 있는데 나와 같은 계통의 전공에 대한 고민이 있어서 상담차하는 방문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Y와 Y의 아버님에게 에어앤비 운영 제안을 받았다.
C랑 있으면서도 조금 있는 자금이 내년 연세로 나가기 전에 어떻게 굴릴지 함께 고민했었다. 그래도 에어비앤비는 그 고민 중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곳에서 혼자인 내가 열기에는 너무 큰 리스크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는 브런치 카페를 열지 아니면 무엇을 하면 좋을지 한참 고민을 하면서 왔는데 에어비앤비 운영 제안이라니.. 인생은 참 어떻게 흘러가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말이 딱 맞는 말이었다.
주택이 에어비앤비로 운영가능한지도 확인해야 하고 아직 결정된 건 아무도 없다. 그래도 느낀 건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것과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하면 언젠가 이렇게 기회가 온다는 거였다.
돌이켜보면 휴학시절 힘들 때도 대학원에서 힘들 때도 항상 한 번씩 찾아오는 햇살 같은 기회 덕분에 나의 마음을 유지하며 살았었는데 힘들다고 잊었던 내가 조금 바보 같아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데도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나는 아무래도 갈대 같은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2025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