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가족과 연을 끊으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까?
나는 남편과 이혼하지 않았다.
단, 앞으로 시어머니를 5년 동안 만나지 않는 조건이었다.
5년이란 기간을 정한 이유는, 내가 아이를 낳는다고 가정하였을 때 아이의 정서발달에 가장 중요한 약 3년 동안 시어머니로부터 내 아이를 보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피해의식과 분노, 질투 등 부정적인 생각과 에너지로부터 내 아이를 보호하고 싶었다.
남편은 '울며 겨자 먹기'로 내 제안을 승낙했다.
2022. 8월
남편은 본가에 가서 앞으로 내가 시댁에 오지 않을 것을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께 통보하였다.
그 이후 남편은 본인 부모에 대한 죄책감 때문인지 또는 나에 대한 원망 때문인지, 일주일 동안 내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가벼운 대화만 있을 뿐, 그는 웃지도 울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2주가 지나니, 나와 대화다운 대화를 조금씩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눈은 마주치지 않았고, 우리는 같은 집에 살고 있지만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름 모를 누군가인것처럼 심리적 거리가 컸다.
나는 남편을 이해했지만 슬펐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단 2가지였다.
시댁에 갔을 때 시어머니로부터 비난과 가시 돋친 말들을 듣지 않는 것이었고,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싸우거나 혹은 시어머니와 내 남편이 싸우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아니, 시어머니의 언행이 바뀌길 바라는 것은 천지개벽이 일어나도 일어나지 않을, 어리석은 기대라는 것을 알기에 남편이 단단하고 꿋꿋하게 나를 지켜주길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결국 시댁에 안 가는 모질고 파렴치한 며느리여야만 나는 나와 내 가정을 지킬 수 있었고, 그 대가가 남편과 멀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복잡한 심경일 남편에게 아무 말도 못 한 채 나는, 매일 공허한 마음으로 울며 잠들었다.
3주가 지나니, 남편은 나와 눈을 마주치기 시작했다.
4주 후에는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던 원래의 남편 모습이 돌아왔다.
내게는 참 칠흑 같은 한 달이었다.
2022. 추석 당일
남편 혼자 시댁에 가는 첫 명절이었다. 그래도 며느리 노릇을 안 할 순 없어 고급 곶감과 와인을 남편에게 건네주었다. 마음이 어지러웠을 내 남편은 급하게 집을 나갔고, 그가 떠난 집은 고요했다.
나는 보고 싶었던 전시회를 갔고, 카페에서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보냈다.
하늘은 화창했으며 바람은 선선했다.
내 마음과 닮은 날씨였다.
1박 2일로 시댁에 갔던 작년 추석이 떠올랐다.
홍삼과 과일 등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시댁에 도착했으나, 편한 시간에 도착하라던 시어머니는 나와 남편이 오후 1시에 도착했다는 이유로 불편한 심기부터 보였다.
도착하자마자 내게는 앞치마를 입혀주셨지만 당신 아들에게는 아무것도 시키고 싶어 하지 않았던 모습,
나와 동갑인 도련님에게는 귀여운 우리 집 막내라 칭하면서 내게는 '너는 우리 집 며느리야'라고 하셨던 말,
나를 귀여워하는 남편을 보며 '너는 왜 엄마한테 한번도 이쁘다 라는 말은 안 하니?'라며 남편과 싸우던 모습,
친정에 가야 할 시간에 갑자기 근처 산에서 트레킹 못한 게 분하다며 화내던 모습.
마지막으로, 앞으로 명절 전날에는 며느리인 내가 시어머니께 직접 전화해서 '몇 시에 도착해야 할지, 어떤 것을 미리 준비해야 할지' 전화하라고 시켰던 행동.
1박 2일이라는 짧은 시간이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이 상처받았고, 힘들었으며 불쾌했던 시간이었다.
작년 추석을 떠올리니 마음속에 있었던 자잘한 죄책감과 송구스러운 마음에서 모두 해방되는 기분이었다.
똑같은 추석인데, 시어머니를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 하나로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씁쓸했다.
남편은 올 한 해가 인생의 최악이라고 했다.
본인의 부모님도, 나도, 자기 스스로도 결국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말을 듣는 나는 마음이 무너졌다.
남편과 나의 공허는 언제쯤 완벽히 사라질 수 있을까.
사라질 수 있는 방법은 있기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