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21세기에 산다. 20세기에 이미 신분제 사회는 폐지됐고, 모든 사람은 성공을 꿈꾼다. 그래서 과거와 달리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를 노력의 부족이나 성공의 부재라 생각하지 자신의 운명이라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부모나 사회가 자신의 지위를 대물림한다고 생각하는 사상은 자유주의와 많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타파했기 때문이다. 공자가 말하는 정명 사상 ( 모든 사람은 직분에 맡게 산다)라는 말은 끊임없이 성공에 대한 열망을 일으킬 뿐 허울뿐인 말에 불과하게 인식될 뿐이다. 현대 사회는 다양한 추구 가치가 혼합되어 있고 개인의 자유를 매우 중시하고 발휘하는 걸 옹호하는 편이다. 여기서 추구 가치란 자아실현, 개개인의 사랑, 사회에서의 명예와 부, 소속감과 안정감 등등이 있다. 니체는 우리의 정신을 크게 3단계로 나누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1단계 낙타에 머무른 경우가 많다. 여기서 말하는 낙타의 삶이란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하루하루 주어진 업무를 해나가는 노동자의 삶과 비슷해 사회에서의 큰 성취나 도전의식, 또는 자아실현 같은 가치가 결여된 채 낙타와 같은 형상을 반복한다. 하지만 낙타와 같은 삶은 절대 헛되거나 약하지 않다. 정신의 상태가 낙타처럼 삶의 짐을 잔뜩 싣고 어떠한 짐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 우리는 비판이나 비난을 가할 수 없다. 단지 정신의 강함이 1단계에 있다고 니체는 생각할 뿐이다.
정신 발달 2단계, 사자의 상태
주체적 자유를 획득하고자 하는 사회인들
외롭고 힘든 무조건적 짐을 짊어진 낙타들 중 일부는 사자가 되려는 변용을 한다. 사자는 자유를 찾고자 하고 자신의 사막에서 주인이 되고자 한다. 사자는 낙타가 마주했던 "너는 해야만 한다"라는 말로부터 "나는 하고 싶다"라고 주체적으로 저항한다. 사자는 낙타와 다르게 스스로 자유를 추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저런 생각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해 나간다. 사막에서의 자유를 찾아는 과정이 생각을 자유롭게 한다. 새로운 가치를 위해 권리를 포획하는 것 그것은 세상에 대한 경외심으로 가득 차 복종하는 낙타에게는 도발적인 표현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자에게도 자아실현이나 그 자체로의 열정, 모든 걸 그 자체로 즐기는 숭고함은 있지 않다. 사자의 상태는 가치를 만들고 창조하는 영역이 아닌, 스스로 자유롭게 가치를 선택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가치를 만들고 스스로 창조하는 정신이 아니라면, 스스로의 자아실현이나 그 자체로의 열정 모든 것을 즐기는 숭고함은 느끼기 힘들다. 그것은 마치 초원 위에서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가는 사자의 상태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자는 "정해진 룰 위에서 자신의 권위를 넓혀나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3단계 정신 발달, 순수한 어린아이
자신의 가치를 창조해 나아가는 현대인들
아이의 정신은 순진무구함, 망각, 새로운 시작, 하나의 놀이로써 세상과 마주한다.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이고, 하나의 신성한 긍정이다.
그렇다. 우리는 앞서 사자의 상태에서 자아실현, 열정 숭고함을 느끼기 어렵고 그 이유는 사자의 상태는 가치를 만들고 창조하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알았다. 하지만 이러한 아린 아이의 상태는 창조의 놀이가 가능하다. 자신의 의지를 바탕으로 세계를 잃어버린 자가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 가치를 만들고 스스로 창조하는 정신. 이것이 어린아이의 정신 발달이다.
창조의 놀이란, 단편적 비유로 실존의 대지인 바닷가에서 파도에 부서질망정, 모래성을 계속 쌓아가는 아이처럼 시시각각 만들어 창조의 정신이자 초인의 정신이다.
우리는 글 처음에서 현대인의 추구 가치가 자아실현, 개개인의 사랑, 사회에서의 명예와 부, 소속감과 안정감 등등임을 배웠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아는 연예인, 성공한 소수의 유튜버 사업가 전문직 분야의 사람들을 떠올려보자.
성공이란 정말 뭘까? 어떻게 해야 할 수 있고
우리가 가져야 하는 정신은 뭘까?
자아실현이란 메스로 우 욕구의 5단계로써, 많은 현대인들이 중요시하는 가치 중 하나이다. "자아"를 실현한다는 것 말 그대로이다. 단편적 예시를 들어보자.
볼 빨간 사춘기의 버스킹. 볼 빨간 사춘기는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낙타와 같은 삶(책임감을 짊어지고 자신의 의무감을 위해 하는 노래)을 위해 부르지 않는다.(자신의 의지가 아닌 사회적 이유로 공부하는 학생, 또는 부모의 압박으로 연습생으로 있는 엔터테인먼트 소속 생들 의무감으로 행하는 사람들이 낙타와 같은 예)
또 그녀는 어떤 사회적 성취를 위해서도 노래를 부르는 거 같지 않다. 사자와 같은 사람들, (성공을 위해서 하는 행위는 금방 지친다. 그 어떤 사람도 성공을 예측하거나 단정하거나 확신할 순 없다.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공부하는 많은 수험생, 좋은 대학만을 목표로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 돈을 벌기 위해 프렌치 이 지점을 여는 수많은 자영업자들)
그저 단지 그녀는 창조의 개념으로써 매일매일 자신의 노래를 그 자체로 신성의 의지로써 행한다. 버스킹에서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보라 아무도 그녀의 성공을 예측할 수 있는가? 그렇지만 그녀의 영상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자체로 즐겨내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성공할지 말지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사람이 아닌 신성한 초인 이것은 비단 볼 빨간 사춘기의 문제는 아니다. 아이유 같은 국내 가수뿐 아니라, 학교에 다니면서 그 자체로 진로에 대한 자아실현을 위해 자신에 대해 알기 위해 이것저것 책을 읽고 탐구하는 학생, 어떤 목적이 아닌 그 자체로 사랑에 대한 가치로 똘똘 뭉쳐 연인을 아낌없이 사랑하는 사람, 사회에서의 명예나 부 같은 목적이 아닌 자신의 추구하는 신념을 뿜어내는 많은 유튜버가 결국엔 모든 것을 가져가는 것 같다.
명심하자. 당신이 바라는 큰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앞서 파도가 몰아칠지언정 모래성을 쌓아가는 신성의 초인을 보았다.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한다 과정을 즐기는 자여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실패할지 말지의 여부는 머릿속에서 지워야만 한다."
행동에 충실했을 때( 3단계의 아이처럼, 혹은 사자와 낙타의 과정을 충실히 밟아나가 3단계의 아이로 변용하는 사람들처럼) 성공이 뒤따라 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성공하기 위해, 행동한다. 틀렸다. 난 명백히 말할 수 있다. 행동에 충실하고 과정에 충실하자. 결과는 과정이 주는 선물이라는 메시지를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