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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끝 단절? 연결?

코피 사건 이후, 우리 집에 생긴 대화법

by 담연 이주원

남매둥이는 대체로 사이좋게 논다. 둘이 서로 쳐다보며 깔깔 웃는 시간이 더 많다. 하지만 가끔 갈등이 커지면 부모 입장에서는 당황스럽다. 특히 둘째 한준이는 마음이 상하면 자기만의 “동굴”로 들어간다. 방문을 닫고 이불을 덮어쓴 채, 세상과 단절한다. 그런데 웃긴 건, 5분도 안 돼 다시 슬며시 나와 은근슬쩍 합류한다는 거다. 마치 “아까 일은 없었던 걸로 해!”라는 듯. 그러면 우리 가족은 한준이가 민망하지 않게 이전처럼 대한다.


하지만 얼마 전 사건은 좀 달랐다. 막내가 한준이에게 맞아 코피가 났다. 언니와 막내는 “오빠가 갑자기 때렸다”라고 했지만, 정작 한준이는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그날 나는 놀란 마음에 야단부터 쳤다. 한준이는 울기만 하고, 끝내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막내는 억울한 마음에 며칠 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오빠한테 맞아서 코피 났어”라고 떠벌렸다.


돌아보니, 감정을 나누기도 전에 ‘잘잘못’만 따진 게 문제였다. 대화법을 강의하는 강사이면서도 우리 집에서는 제대로 소통하지 못했던 수많은 사건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그리고 진심으로 알게 되었다. 갈등이 터져 나와 서로를 할퀸 뒤의 회복에는 ‘서로의 감정을 어루만져 줄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감정코칭 vs 비폭력대화

심리학자 존 가트맨이 말한 감정코칭은, 아이의 감정을 먼저 알아주고 이름 붙여주는 방식이다. “속상했구나, 화가 났구나” 하고 감정을 말해주면 아이는 자기 마음을 이해받는 경험을 한다. 이해받아야 변할 수 있다고 이해받아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반면, 마셜 루젠버그의 비폭력대화(NVC)는 갈등을 풀 때 4단계(관찰–느낌–욕구–요청)를 따른다. “네가 ○○했을 때 나는 △△한 감정을 느꼈어. 왜냐하면 □□라는 욕구가 있었기 때문이야. 그래서 다음엔 이렇게 해줄래?”라는 식이다. 이렇게 대화하려면 상대방을 적극적으로 공감해야만 나와 너의 욕구를 알아차리고 서로에게 참만남이 이뤄진다. 오랜 연습과 훈련 없이는 어렵다.

둘은 닮았다. 감정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하지만 차이도 있다. 감정코칭이 주로 아이의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라면, NVC는 상대에게 내 감정과 욕구를 설명하고 구체적으로 부탁하는 것이다.


우리 집 버전 화해법

그래서 우리 집은 이 둘을 합쳐, 아이들에게 맞는 간단한 3단계 화해법을 만들었다.

감정 보살피기: 나와 너 감정 알아차리기. [“너 많이 속상했구나.”, “나는 화가 났어.”]

욕구 알아차리기: 감정 이면에 깔린 욕구 찾기. [“나는 내가 만든 걸 지키고 싶었어.”, “나는 공평하게 나누고 싶었어.”]

표현하고 해결책 찾기: 내 감정과 욕구를 말하고, 부탁하거나 함께 방법 찾기. [“나는 화가 났어. 다음엔 허락받고 해 줄래?”, “네 마음은 이런 거니? 아니면 어떻게 느낀 거야?”]


우리 집에서의 실천

초1 다온이와 우리 부부가 먼저 이 3단계를 익히고 실천하기로 했다. 만 4세 둥이가 이해하기엔 어려우니 자연스레 배우도록 1호와 우리 부부가 먼저 변하기로 했다. 다섯 살 남매둥이는 흉내 내듯 따라 할 것이다.

“나 속상했어. 나는 공평하게 나누는 게 중요해. 다음엔 물어보고 먹어줘.”

아이들 앞에서 어른이 먼저 실천하면, 말의 힘은 자연스레 전해질 거다.


갈등 뒤의 진짜 수업

갈등은 사라지지 않는다. 중요한 건 갈등이 터져 나와 싸움이 된 후 어떻게 다시 연결되는 가다. 한준이가 동굴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합류하듯,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다시는 안 싸우는 것”이 아니라 “싸운 뒤에 어떻게 다시 같이 노는가”다.

코피 사건은 아픈 기억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새로운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 감정을 돌보고, 욕구를 찾아내고, 해결책을 함께 찾는 것. 그렇게 화해 3단계, 대화 3단계가 우리 집 역사에 기록되었다.

가족은 갈등이 없는 공동체가 아니다. 갈등을 다루는 법을 함께 배우는 작은 학교다. 오늘도 우리 집은 이 작은 학교에서 연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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