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끝자락을 좇아 하동으로 간다. 가는 봄이 아쉬워 서둘러 떠나온 길인데, 막상 그 풍경과 마주하니 마음이 한없이 느슨해진다. 무장해제. 봄은 그런 계절이다. 잡힐 듯 말 듯 애간장을 태우면서도 결국엔 넉넉한 품으로 모든 걸 받아주는 계절. 그래서 이번 여행에선 다향 그윽한 차밭에 앉아 느긋하게 차도 마시고, 흩뿌린 물감처럼 점점이 번지는 초록세상도 멍하니 바라보며 느린 여행을 만끽할 생각이다. 게으른 늦깎이 상춘객의 팔자 좋은 소리라고 해도 상관없다. 가끔은 게으름 부리며 보낸 느린 시간이 더 소중하게 기억되기도 하니까. 더구나 지금은 차나무에 새잎이 하나둘 돋는, 그래서 마음까지 여유로워지는 봄의 끝자락 아닌가.
하동은 우리나라 최대 야생차 생산지다. 화개면과 악양면에만 300여개의 야생차밭이 있다. 그 면적이 무려 627ha. 이들 차밭에서 연간 1,020여t의 차를 생산한다. 국내 생산 차의 30%에 이르는 양이다. 아닌 게 아니라 섬진강 물길 따라 화개면으로 들어서면 십리벚꽃길로 유명한 화개천 너머로 야생차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야생’이라는 이름처럼 형태도 위치도 제각각인데, 물길 옆 너른 평지에 자리한 차밭이 있는가 하면, 섬마을 다랭이논처럼 산기슭에 계단식으로 축대를 쌓아 차밭을 조성한 곳도 있다. 지리산과 섬진강에 인접한 화개·악양 일대는 안개가 많고 다습할 뿐 아니라 차 생산시기에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차나무 재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으로 평가 받는다. 하동 야생차는 이런 독특한 재배환경과 재배법으로 2015년에는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됐으며, 2017년에는 FAO(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의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정금차밭은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방면으로 4km 쯤 떨어진 산비탈에 자리했다. 하동군이 자랑하는 다원10경 가운데서도 풍경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정금삼거리에서 ‘정금정’이 있는 정금차밭 정상까지는 완만한 고갯길을 800m 쯤 올라야 하는데, 편한 걸음으로 15분 남짓이면 정상에 닿을 수 있다. 차량운행이 가능한 포장도로지만 차 두 대가 교행하기에는 길이 좁고 주차공간도 협소에 도보로 이동하기를 권한다.
정금차밭 정상에 서면 산비탈에 조성한 야생차밭 너머로 화개면 일대가 한눈에 담긴다. 차는 눈으로 한번, 향으로 한번, 입으로 한번 마신다더니, 눈앞에 펼쳐진 풍경만으로도 이미 차 서너 잔은 마신 듯 기분이 상쾌하다. 차나무 사이를 분주히 오가면 찻잎 따기에 여념이 없는 주민들의 모습도 이즈음 정금차밭에선 놓칠 수 없는 풍경이다. 찻잎 채취는 농사비가 내리는 곡우(양력 4월20일) 즈음에 시작해 6월까지 이어지는데, 곡우 전에 딴 찻잎으로 만든 녹차가 우전이다. 일찍 딴 찻잎이 귀한 대접을 받는 건 햇빛을 그만큼 덜 받아 떫은맛이 덜하기 때문이다.
호젓한 차밭에서 차 한 잔 마시는 호사를 누리고 싶다면 사회적 기업 놀루와(www.nolluwa.co.kr)에서 차마실 키트를 대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두 종의 하동 야생차와 다기세트 외에도 온수가 든 보온병과 설명서 등이 꼼꼼히 구비돼 초보자도 쉽게 차를 우려 마실 수 있다. 차마실 키트는 원하는 장소에서 수령이 가능하며, 오후 6시까지 반납하면 된다. 4인이 즐길 수 있는 키트 1개당 2만원.
여유가 된다면 정금차밭에서 천년차후계목, 신촌차밭을 거쳐 하동 쌍계사 차나무 시배지(시도기념물 제61호)에 이르는 천년차밭길을 걸어도 좋다. 하동 쌍계사 차나무 시배지는 하동과 야생차의 인연이 시작된 곳으로 1200년 전, 신라 흥덕왕 3년(828)에 김대렴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차나무 종자를 왕명으로 심은 곳이다. 정금차밭에서 하동 쌍계사 차나무 시배지까지는 편도 2.7km, 어른 걸음으로 50분쯤 걸린다. 자가 운전자는 주차가 용이한 하동 쌍계사 차나무 시배지 앞 하동야생차박물관에서 걷기를 시작하면 된다.
쌍계사는 하동 야생차와 인연이 깊은 사찰이다. 성덕여왕 23년(724)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삼법이 창건한 쌍계사는 진감국사가 주석하면서 비로소 가람의 면모를 갖췄다. 진감선사는 김대렴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차나무 종자를 왕명으로 심은 뒤 차밭을 조성하고 보급한 인물이다. 쌍계사 대웅전(보물 500호) 앞에 있는 쌍계사 진감선사탑비(국보)에서는 진감선사의 차 생활을 언급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쌍계사에는 이외에도 하동 쌍계사 승탑(보물)과 하동 쌍계사 마애여래좌상(경상남도 문화재자료) 등 많은 국가지정 문화재가 남아있다.
스타웨이하동은 하동의 떠오르는 핫스폿이다. 별 모양의 스카이워크와 카페, 리조트, 컨벤션 등 갖춘 복합문화공간 스타웨이하동은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되며 지역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스카이워크는 그 아찔함만큼이나 멋진 풍광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다. 두 곳에 마련된 스카이워크 전망대에서는 섬진강과 악양들 일대가 한눈에 담긴다.
금오산전망대는 하동의 동남쪽 해안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다. 전망대가 있는 해발 849m 산정까지 차로 오를 수 있어 누구나 편하게 멋진 해안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금오산 일출과 다도해는 하동10경 가운데 하나로 꼽힐 만큼 아름답다. 아시아 최장을 자랑하는 금오산 짚와이어가 이곳에서 출발한다.
<당일 여행 코스>
화개장터→정금차밭→쌍계사→스타웨이하동
<1박 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 화개장터→정금차밭→쌍계사→스타웨이하동
둘째 날 / 평사리최참판댁→삼성궁→금오산전망대
<여행 정보>
○ 관련 웹 사이트
하동문화관광 : www.hadong.go.kr/tour.web
쌍계사 : www.ssanggyesa.net
스타웨이하동 : www.starwayhadong.com
○ 문의 전화
하동군청 관광진흥과 : 055-880-2378
쌍계사 : 055-883-1901
스타웨이하동 : 055-884-7410
놀루와 : 055-883-6544
○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하동(화개), 서울남부터미널에서 하루 7회(06:40~19:30) 운행. 약 3시간 25분 소요.
화개정류장에서 농어촌 하동-칠불사 버스 이용, 정금 정류장 하차. 도보 약 600m.
* 문의 : 서울남부터미널 1688-0540,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화개공영버스터미널 055-883-2793
○ 자가운전 정보
순천완주고속도로 구례화엄사 IC→산업로 구례방면 우회전 7.8km→냉천교차로에서 하동방면 우측도로 14.9km→화개삼거리에서 쌍계사방면 좌회전→화개교 건너 좌회전→정금삼거리에서 우회전→정금차밭
○ 숙박 정보
올모스트홈스테이 하동점 : 악양면 평사리길, 055)882-5094, www.kolonmall.com/Special/214114(한국관광품질인증)
켄싱턴리조트 지리산하동 : 화개면 쌍계로, 055)880-8290, www,kensington.co.kr/rhd
아름다운산골 : 화개면 범왕길, 010-6273-7743
섬진강호텔 : 금성면 산업로, 055-884-8071
○ 식당 정보
쉬어가기좋은날 : 재첩더덕정식, 화개면 쌍계사길, 055)883-4375
청운식당 : 참게탕, 화개면 쌍계사길, 055)883-1666
혜성식당 : 재첩정식, 화개면 화개로, 055)883-2140
벚꽃경양식 : 수제돈가스, 화개면 화개로, 055)883-4007
○ 주변 여행지
하동편백자연휴양림, 하동레일바이크, 불일폭포, 백련리도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