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우리나라 최고의 여행지라는 데에 토를 달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호불호는 갈릴 수 있다. 그럼에도 제주도는 늘 여행자로 붐빈다. 제주도를 찾는 이들의 목적도 다양하다. 단체 패키지 여행에서 먹방투어까지. 그리고 또 하나, 모험. 최근 제주도에서 배낭 맨 백패커들이 자주 눈에 띄는 건 바로 이 모험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만끽하는 백패킹의 묘미
제주도에서 모험을? 모험의 사전적 의미는 ‘위험을 무릅쓰고 어떠한 일을 하는 것’이다. 제주도가 정글도 들고 밀림을 헤집어야 하는 아마존도 아니고, 그럼? 제주도에서 모험이란 제주도의 ‘날것’을 즐기는 여행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그러니까, 렌트카로 성산일출봉, 섭지코지 같은 유명 관광지만 바쁘게 찾아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온몸으로 꼼꼼히 그리고 느리게 제주도를 체감하는 여행. 제주도의 날것을 만나는 최고의 방법이 백패킹이다.
백패킹(backpacking)은 이름처럼 ‘등짐’ 지고 떠나는 여행이다. 필요한 장비를 차에 가득 싣고 떠나는 여행에 비하면 조금, 아니 많이 불편하지만 튼튼한 두 다리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산이든, 강이든, 바다든. 간혹 백패킹을 캠핑과 동일시하는 사람이 있는데, 캠핑은 백패킹의 한 부분일 뿐, 전부는 아니다. 야영 장비를 짊어지고 1박 이상 여행을 떠나는 백패킹은 20세기 초 자동차가 들어갈 수 없거나 하루 안에 도착할 수 없는 지역에 가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된 레포츠다.
제주도에서 백패킹 명소로 꼽히는 곳이 비양도다.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15분 정도를 더 가야 닿는 우도의 부속 섬으로 족보로 따지면 제주도의 손자뻘 쯤 되는 작은 섬이다. 무인도였던 비양도는 2003년 다리가 놓이며 섬 아닌 섬이 됐다. 백패커들은 비양도를 굴업도, 선자령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백패킹 성지로 꼽는데, 정확히는 백패킹을 위한 야영지가 비양도에 있다. 그러니까, 비양도는 제주도로 떠나는 백패킹의 베이스캠프인 셈. 참고로, 제주도에는 우도의 비양도 말고 협재에도 비양도라 부르는 섬이 하나 더 있으니 헷갈리지 말 것.
제주 성산포항에서 출발하는 페리는 우도의 하우목동항과 천진항을 30분 간격으로 교차 운행한다. 오전 7시 성산포항을 출발한 첫 배는 오후 6시30분까지 하루에 스물두 번(5~8월) 하우목동항과 천진항을 오간다. 승선료는 어른 기준 왕복 1만500원. 신분증 지참은 필수다. 동행 중 임산부, 65세 이상 경로, 7세 미만 영유아가 있다면 차량을 싣고 우도에 입도할 수 있다. 우도 숙박 예약자도 마찬가지. 당연히 백패커는 해당 되지 않는다. 차량 선적비용은 중형차 기준 2만6000원이다.
초행자라면 페리에 몸을 싣기 전, 짧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하우목동항 행? 천진항 행? 비양도가 목적지라면 천진항보다 하우목동항이 낫다. 하우목동항과 비양도는 우도의 서쪽과 동쪽 끝에서 마주보고 자리한다. 그러니 하우목동항에서 남쪽으로 3km 쯤 떨어진 천진항을 출발점으로 삼으면 그만큼 거리가 늘어난다. 하우목동항에서 비양도까지는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6km 남짓, 마을을 가로지르면 3km 정도다.
우도에 발을 들이면 본격적인 ‘모험’이 시작된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제주도에서 모험은 제주의 날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러니 제대로 모험을 즐기려면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차창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는 풍경과 걸으며 몸으로 감각하는 풍경은 같을 수 없다. 차창으로 밀려든 바람은 그저 바람이지만, 몸으로 감당하는 바람은 나의 일부가 된다. 비릿한 바다 향도, 투명한 햇살도 마찬가지다. 백패킹은 그런 거다. 자연이 내어주는 것을 겸허히 몸으로 받아내는 것. 그리고 감각하는 것. 고맙게도 하우목동항에서 비양도에 이르는 우도 북쪽 해안도로는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한 제주 올레길 1-1코스에 속한다.
욕심이 난다면 내친김에 우도를 한 바퀴 도는 올레길 완주에 도전해 보는 것도 멋진 일이다. 하우목동항에서 하고수동해수욕장, 우도봉, 천진항을 거쳐 다시 하우목동항으로 돌아오는 올레길 1-1코스는 전체 11.3km로 6시간 정도 걸린다. 만일을 대비해 마을버스 운행 정보도 꼼꼼히 챙기자. 15분 단위로 운행하는 해안관광버스에 비해 긴 배차시간(1시간)이 아쉽지만, 잘만 활용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우도와 비양도를 즐길 수 있다. 마을버스 운행 시간과 정거장 등에 대한 정보는 제주시 우도면 홈페이지(https://www.jejusi.go.kr/town/udo/pride/bustime.do)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도 해안관광버스는 짐이 많은 백패커들을 그닥 달가워하지 않는다.
비양도 북쪽 해안에 접한 야영지는 인근 방목장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새다. 바람을 막기 위해 어른 허리 높이로 쌓은 허술한 돌담 몇 개를 빼면 텅 빈 공터나 다름없다. 바다 쪽으로 활짝 열린 야영지는 어디서든 바다를 조망할 수 있어 명당 아닌 곳이 없다. 이용료는 무료. 대부분 사유지이지만 우도를, 비양도를 찾아주는 백패커들이 고마워 마을주민들이 무상으로 땅을 제공한다. 야영지 옆에 세면대를 갖춘 화장실이 있고, 쓰레기 분리수거장은 화장실 옆에 별도로 마련했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일반 관광객과 공간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 정도. 비양도는 우도를 찾는 관광객 대부분이 거쳐 가는 유명 스폿이다 보니 조금 어수선한 건 사실이다. 그래도 마지막 배가 우도를 떠나는 오후 6시 30분 이후에는 나름 운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백패커들에게 야영지는 종착지가 아닌 경유지다. 그러니, 다음 사람을 위해 머문 흔적은 최대한 남기지 말아야 한다. 특히 음식물 쓰레기. 예전처럼 야영지에서 삼겹살을 굽는 몰상식한 사람은 많이 줄었지만, 지금도 화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백패커에게 식사는 비화식이 원칙이다. 비화식은 불을 사용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간편식으로 끓는 물 없이도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어 백팩커는 물론 등산가들도 즐겨 애용한다. 최근에 나온 비화식은 짜장밥에서 제육볶음까지 메뉴도 다양해졌다. 비양도 입구에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이 있지만, 식수는 미리 준비하는 게 좋다.
하룻밤 머물 잠자리를 마련했으면,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느긋한 시간을 보내면 된다. 야영지 옆에 우뚝 선 돌로 쌓은 구조물은 봉수대다. 포털 사이트 검색 창에 ‘비양도 백패킹’을 써넣으면 나오는 이미지 대부분이 이곳 위에서 촬영한 사진들이다. 검은 현무암이 해안을 이루고, 그 현무암 위로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장면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초지 위에 각양각색의 텐트가 점점이 자리한 모습도 이국적이다. 아! 일출과 일몰도 놓치지 말 것.
제주의 바다 속을 누비다, 해녀체험
우도와 비양도를 넘나들며 즐긴 백패킹이 제주 땅이 선사한 모험이라면, 이제 바다로 갈 차례다. 제주도는 사면이 바다인 섬이지 않은가. 그러니 바다에서의 모험을 빼놓으면 섭섭하다. 백팩킹에 필적할 바다 모험의 주인공은? 스킨스쿠버도, 스노클링도 아닌 해녀체험이다. 제주도 하면 해녀, 해녀 하면 제주도 아니던가. 제주해녀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제주도에는 해녀체험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 여럿 있다. 한수풀해녀학교(http://jejuhaenyeoschool.com)는 그중 가장 활발하게 해녀체험을 운영하는 곳이다. 한수풀해녀학교는 제주해녀 문화를 계승하기 위해 지난 2008년 문을 연 국내 최초의 해녀 양성 교육 기관으로 일반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체험프로그램은 한수풀해녀학교 산하 잠수교육연구협회(https://blog.naver.com/asdshq 064-796-1515)에서 담당한다. 해녀체험은 하루 4번(10:00 11:30 13:30 15:00) 진행되며, 스노클링, 스킨스쿠버 체험도 가능하다. 2시간 정도 진행하는 해녀체험은 간단한 이론 교육과 실습으로 구성된다.
해녀체험 장비는 스노쿨링 장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웨트슈트와 수경, 오리발. 한데 여기에 독특한 장비 하나가 추가된다. 바로 테왁망사리. 테왁망사리는 부표인 테왁과 망사리를 아울러 부르는 이름이다. 테왁망사리는 해녀들이 물질할 때 잠깐씩 쉴 수 있는 유일한 휴식처이기도 한데, 망사리의 둥근 테두리에 손을 얹고 의자에 앉듯 두 무릎을 살짝 구부리면 테왁의 부력으로 바다 한가운데에서도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망사리는 채취한 해산물은 보관하는 그물망이다.
해녀체험의 백미는 단연 해산물 채취다. 한수풀해녀학교가 자리한 한림읍 일대에선 뿔소라와 해삼은 물론 전복이나 돌문어도 심심찮게 잡힌다. 물론 쉽지는 않다. 물에 떠있기도 벅찬데, 시퍼런 바닷물 속으로 잠수라니. 그것도 2m 이상을. 부력이 있는 웨트슈트를 입었으니, 초보자에겐 더욱 만만치 않다. 요령은 몸속의 공기를 최대한 빼내는 것. 한데 부작용이 있다. 빙고! 잠수 시간이 그만큼 짧아진다. 그럼 해녀들처럼 납 벨트를 착용하면 되지 않냐고? 그건 불법이다. 수산자원관리법에 따라 해녀를 제외한 일반인은 납 벨트를 착용하고 바다에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할 수 없다.
해녀체험은 수영 실력과 무관하게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바다에서 하는 체험인데, 수영 실력이 필요 없다니. 한데 사실이다. 실제 해녀 중에는 수영을 아예 하지 못하는 분들도 제법 많다고 한다. 체험 시간 동안 전문 강사가 늘 함께하니 안전에 대한 걱정은 뚝. 채취한 해산물은 각자 손질해 입맛 따라 요리해 먹으면 된다. 삶은 뿔소라도, 날로 먹는 해삼도 그 맛이 일품이다. 물론 라면에 넣어 끓인 돌문어 맛을 따라 올 수 없지만.
한수풀해녀학교에서는 해녀 체험 중 촬영한 수중 사진을 웹하드을 통해 참가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그러니 체험을 마친 뒤에는 사무실에서 들러 아이디와 비번을 확인해 꼭 다운로드 받도록 하자. 사진은 기억보다 오래 추억되는 법이다. 웹하드에 업로드 된 사진들은 5일 후 삭제된다는 점도 명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