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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진이 Jan 30. 2022

할머니와 보금자리

서울 표류기 22.1.30

"일주일 뒤에 출근하세요."

서울에서 첫 사회생활은 준비 없이 시작됐다취업될지 모르고 면접을 봤고 취업될지 몰라서 살 곳도 알아보지 않았다. 출근 일이 촉박했지만 경험이 없어 일주일 뒤 출근한다고 했고, 합격 취소될까 겁이나 출근 일을 미루자는 말도 못 했다. 나는 일주일 안에 서울에서 살 곳을 찾아야 했다.


엄마는 추진력이 강한 사람이었는데 전화 몇 통 돌리더니 서울에 엄마의 고모할머니가 계시다고 했다. 마침 혼자 사신다고. 전화를 돌려서 알 정도니 평소엔 남과 다르지 않았던 사이다. 며칠 뒤 엄마와 함께 고모할머니 집으로 상경했다. 그날 나는 고모할머니를 처음 보았다. 아흔이 넘은 고령의 할머니는 깡말랐고 허리는 약간 구부정했으며 나무의 잔가지 모인 것 같은 입에서는 말이 느리게 나왔다.


할머니는 아들 가족이 모시고 살았는데 할머니가 교회 간 사이에 아들 가족은 이사 가버렸다. 나랑 같이 살 때 할머니는 성경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 하루 중 읽지 않는 시간보다 읽는 시간이 더 많았다. 할머니와 대화는 아침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회사 나갈 때와 일을 마치고 들어와서 나누는 몇 마디가 다였다. 할머니의 역사가 어땠는지 기분이 어땠는지 같은 이야기는 나눌 자신도 의지도 없었다. 


손빨래를 해서 와이셔츠를 짜서 널곤 했는데 할머니는 그런 내 모습을 칭찬하셨다. 사실 할머니에게 빨래를 부탁하기 미안해서이기도 했다. 할머니가 차려준 아침을 같이 두고 식탁에서 같이 먹을 때 어색한 공기가 너무 무거웠다. 나는 늘 황급히 출근하고 늦게 왔다.


할머니와 두 달쯤 살았을 때, 아침 운동을 하고 돌아오니 할머니 며느리가 와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월세도 안 내고 살았으니 월세를 달라고 했다. 할머니 혼자 두고 갈 땐 언제고 혼자 사시는 할머니 옆에서 있던 나에게 돈을 달라 하니 황당해서 싫다 하고 나와버렸다. 친구가 있는 중앙대 근처로 자취방을 잡았다. 


몇 년 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어고 그 집은 여전히 재개발이 안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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