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는 지금 행복해?"
남편이 내게 물었다.
불쑥 들어온 이 질문에 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여보 사랑해"
"나도 사랑해"처럼,
"응 행복하지"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물론 난 행복하다.
아기의 맑디 맑은 옹알이와 해맑은 웃음에 행복하고
매일매일 이 세상을 흡수하며 자라는 모습에 감탄하고
나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이 존재로 인해
행복하다.
내 작은 한숨 소리도 알아채는 남편 덕에 행복하고
나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남편에게 무척이나 감사하다.
그런데 대답은 쉬이 나오지 않았다.
왜였을까?
남편의 짧은 물음에
난 지나온 많은 기억들과 감정 속에 파묻혔다.
행복했던 기억들과 함께 눈물짓던 순간들이 뒤섞여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나는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
그것들을 뭐라 설명할 수 있을지 아주 많이 고민해야만 했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엇일까..
나에게 행복이란,
'안정감'인 듯하다.
무언가에 쫓기듯 내달리지 않고
누군가를 쫓아가려 조급해하지 않고
미래의 나를, 내일의 나를 기대하는 상태.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보듬어줄 수 있는 상태.
대학생 시절에도, 직장인 시절에도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던 것 같다.
힘들어서 매일 끙끙거리면서도,
버거워하면서도 짊어지고 달렸다.
그럼 그 시간들이 나에게 좋은 미래를 가져다주리라 생각했다.
열심히 달려온 십 년.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아보니
그 십 년의 시간은 아득하고 무의미해졌다.
지금의 나는
미래의 나를 그려낼 수 없다.
그래서 불안하다.
십 년이란 시간이
일하는 엄마가 된 나를 더 선명하게 그려내 줄 줄 알았는데
형체조차 알 수 없어
불안하다.
아이와 남편과 함께
웃음 짓고 있으면서도
혼자 남겨진 시간엔 무겁게 가라앉는 이유가 그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원하지도 않을 수많은 채용공고들을 찾아보면서,
그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나를 그려본다.
너무나 무의미하다.
삼십 대가 되면
조급했던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던데
서른한 살의 나에겐 언제쯤 여유가 찾아올까?
-
행복하냐는 질문에 쉬이 답변하지 못한 내가 신경 쓰였는지
소나기가 쏟아붓던 날
회사 퇴근이 늦어진다던 남편은
비에 젖은 채 큰 종이 가방을 내게 건넸다.
거짓말까지 하고 백화점에 들러
내 선물을 사 온 것이다.
작게나마 기분전환하라고 샀다며..
아주 예쁜 니트를 골라왔다.
특별한 날도 아닌데 받아 든 선물은 기쁨보단 놀람이었고
비와 땀에 젖어 있는 남편의 모습에 감동했다.
남편은 자주 나에게 말한다.
내 행복이 자신의 행복이라고.
나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사는 거라고.
행복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져 지낸 며칠의 시간이
다 부질없게 느껴질 만큼
그 마음이 전해져서 눈물이 났다.
선물을 고민하고
거짓말까지 하며 백화점을 누볐을,
오는 길에 쏟아지는 비로부터 선물을 지켜내기 위해
소중히 품에 안고 왔을 그 모습에,
매일 밤 잠들지 못하고 한숨짓던 내 모습을 안쓰러워해 준
남편에게 고마웠다.
나 정말 사랑받고 있구나
한 남자에게 듬뿍 관심받고 있구나
외롭지 않구나
그리고 난 남편에게 긴 편지를 썼다.
"오빠 덕에 난 정말 행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