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력 부족 사회

by Orca

요즘 ‘성인 ADHD’라는 단어를 자주 듣는다. 기사나 SNS에서 쉽게 다루는 걸 보면 이제는 특정 질환이라기보다 현대인의 집중력 문제를 설명하는 말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얼마 전 아는 오빠에게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인들과 대화하던 중 “너 ADHD 아니야?”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고, 장난처럼 웃어넘기려 했지만 막상 생각해보니 본인도 약간 의심스러워 병원을 방문했다고 한다. 상담 과정에서 몇 가지 항목을 확인했는데 그중 유독 공감됐던 증상들을 이야기해줬다.


물건을 충동적으로 한꺼번에 버린다.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기 힘들다.

감정이 쉽게 가열되거나 식는다.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는 집중력이나 충동 조절, 계획 수행 같은 기능이 일정하게 작동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예전에는 주로 아동에게서만 진단됐지만 최근에는 성인에게서도 흔히 나타난다. 성인 ADHD는 아동기와 달리 눈에 띄는 과잉 행동보다는 우선순위 혼동, 시간 감각 불안정, 충동적 결정 등으로 나타난다. 문제는 이런 특징이 사회에서는 ‘게으르다’거나 ‘집중력이 없다’로 단순하게 해석된다는 점이다.


ADHD 검사는 전문의 상담 후 필요하다고 판단되거나 혹은 본인이 ADHD라는 확신이 있을 때 정밀 검사를 진행하는 방식이고 비용이 30~50만 원 내외로 꽤나 만만치 않다. 그래서 진단은 결국 ‘증상이 심하냐’보다 ‘이 불편함을 더는 방치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결정된다. 기준은 의사가 아니라 본인이다.


ADHD적 특성이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흥미가 있는 일에는 과하게 몰입하고 새로운 환경이나 변수에 빠르게 반응하는 능력은 ADHD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자주 나타난다. 이른바 ‘하이퍼포커스(hyperfocus)’ 현상이다. 자극에 민감하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빠르게 떠올리고 위기 상황에서 즉각적으로 대응하기도 한다. 반면 반복적이고 구조적인 환경에서는 쉽게 집중력이 떨어진다. 이런 특성은 조직에서는 단점으로 보이지만 창의적 문제 해결이나 빠른 전환이 필요한 환경에서는 오히려 강점으로 작동한다. 결국 ADHD적 특성은 질병이라기보다 주의력의 작동 방식이 다른 하나의 패턴이다.


문제는 이런 ‘다른 패턴’을 사회가 어떻게 다루느냐다. 개인의 특성을 인정하기보다 기준에 맞추길 요구하는 문화에서는 이런 차이가 쉽게 결함으로 취급된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정신건강 문제를 개인의 나약함으로 해석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 제도적으로도 불합리한 부분이 많다. 정신과 진료나 약물 처방 이력이 있으면 최소 2~5년 동안 보험 가입이 제한되는 규정이 있다. 실제로 일부 생명보험과 실손보험에서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이력이 있으면 심사 단계에서 거절되거나 보험료가 높게 책정된다. 사회는 정신 건강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여전히 ‘정신과 내원’을 불이익으로 취급한다. 결국 문제를 숨기거나 증상이 악화된 뒤에야 병원을 찾게 된다.


나 또한 불과 1년 전쯤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서 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이 있다. 약물치료와 상담을 병행했고 약 6개월 정도 지나자 증상이 안정됐다. 정신과 진료에 대해 걱정했던 것만큼 약을 먹었다는 사실이 부끄럽거나 불편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 과정을 통해 내 상태를 객관적으로 점검할 수 있었다. 정신과 진료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필요할 때 받는 하나의 관리 과정이었다. 몸이 아플 때 병원에 가는 것처럼 마음이 불안정할 때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수십 개의 알림이 동시에 울리고 정보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환경에서 집중력의 분산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사회 구조가 인간의 주의력 한계를 넘어선 상태다. 그래서 ADHD적 특성은 일부 사람만의 현상이 아니라 현대인이 공통적으로 겪는 결과에 가깝다. 중요한 건 진단의 여부보다 지금의 환경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인식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환경을 개인이 감당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함께 조정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보험 제도, 직장 문화, 의료 접근성 같은 구조가 ‘정신 건강’을 불이익이 아닌 기본적인 건강 관리의 영역으로 다루는 사회, 거기서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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