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하면 어때?”
요즘 내가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이다. 결혼한 사람들에게는 굳이 “결혼하면 어때?”라고 묻지 않으면서 내가 남자친구와 함께 살기 시작하자 유독 호기심이 쏠린다. 굳이 비유하자면 혼자 하던 스타듀밸리를 멀티플레이로 전환한 느낌에 가깝다. 밭은 그대로인데 이제 물뿌리개를 둘이 나눠 드니 일이 조금 수월해진 정도다.
동거 이전에 나는 5평 남짓한 원룸에 머물렀다. 말은 자취방이었지만 실상은 잠만 자는 공간에 가까웠다. 어느 정도였냐면 2년 동안 휴지 30롤짜리 2팩을 샀는데 마지막 팩은 다 쓰지도 못한 채 이사할 때 가져왔다. 반면 남자친구는 집을 집답게 쓰는 사람이었다. 청소도 자주 하고 요리도 곧잘 하고, 갑자기 찾아가도 방은 늘 정돈돼 있었다. 그 차이가 분명했기에 지금 우리가 함께 사는 집은 내겐 그야말로 호화로운 생활처럼 느껴진다. 좁은 공간에서 벗어나 생활의 흐름이 나뉘자 집은 단순히 몸을 눕히는 곳이 아니라 머무를 만한 장소로 바뀌었다.
물론 단순히 넓은 집에 들어와서 달라진 건 아니다. 이사를 준비하면서 곰팡이 낀 샷시를 뜯어내 필름을 새로 붙이고, 오래된 벽지 위에 페인트 칠을 하고, 직접 차를 빌려 이삿짐을 날랐다. 그렇게 꾸려진 공간은 ‘우리의 집’이 되었다. 현관문을 열면 서로의 체취가 뒤섞여 있다. 같은 바디워시를 쓰고 같은 세제로 빨래를 하니 향도 비슷하다. ’우리‘의 향이 곳곳에 배어 있다.
그렇다고 동거가 장밋빛 일상으로만 채워진 건 아니다. 생활 습관 차이가 가장 큰 변수다. 나는 밥을 먹으면 소파에 드러눕고 설거지는 하루이틀 미루기 일쑤다. 이불 빨래는 계절이 바뀔 때쯤 한 번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남자친구는 적어도 2주에 한 번은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청소기 돌리는 주기에서도 차이가 난다. 나는 먼지가 눈에 띄면 그때 돌리지만 그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무조건 돌린다. 작은 습관 차이가 때로는 마찰을 일으키지만 큰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내가 놓치는 부분을 그가 메워주고 내가 대신 챙기는 영역도 생기면서 집은 조금 더 안정감을 갖추게 된다.
동거를 시작한 이유를 묻는다면 작게는 생활비 절약, 크게는 결혼 전 연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서로의 불안정한 소비습관을 정돈하고자 했고, 월세와 공과금, 식비를 따로 내는 것보다 합치는 게 훨씬 효율적이었다. 실제로 변화도 있었다. 혼자 살 때는 배달음식에 의존했지만 지금은 남자친구가 퇴근 후 저녁을 차려준다. 사랑을 요리하는 시간이라고 하면 다소 오글거리지만 사실이 그렇다. 효율성을 기대했지만 그 안에서 더 큰 행복을 얻었다.
동거라는 주제는 요즘 사회 곳곳에서도 눈에 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연스럽게 언급되기도 하고 기사 제목에도 자주 등장한다. 누군가는 ‘흔한 선택’이라 말하고 또 누군가는 ‘결혼이 먼저’라며 고개를 젓는다. 같은 현상을 두고도 세대와 입장에 따라 해석이 극명하게 갈린다는 점이 흥미롭다. 제도는 여전히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만 보호 장치를 마련해두었지만 사람들의 의식은 이미 그보다 한 발 앞서 있는 듯하다. 그래서 “동거하면 어때?”라는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변화하는 사회 분위기를 비추는 작은 단서이기도 하다.
나 역시 동거를 결심하기 전, 주변 언니 오빠들에게 “이게 맞는 선택일까?” 여러 번 물었다. 답은 제각각이었지만 결국 선택은 내 몫이었다. 그리고 반년이 지난 지금, 내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라 생각한 적은 없다. 매일 같은 집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 이보다 더 확실한 행복이 있을까?
다만 꼭 짚고 싶은 점이 있다. 동거가 단순히 달콤한 로맨스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동거는 서로의 개인 영역이 일부 침범되는 것에 동의하는 일이다. 물리적인 공간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생활 습관, 금전, 감정까지 얽히게 된다. 더구나 집 계약처럼 일정한 책임이 따르는 요소들도 있다.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동거를 시작한다면 달콤함보다 불편함이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동거를 고민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시도해도 좋다. 단 그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동거는 결혼의 전초전이자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경험이다. 설령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함께 살기로 한 그 순간의 선택은 결코 틀린 게 아니다. 나 역시 반년밖에 지나지 않았고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의 행복이 가짜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누군가 다시 동거가 어떠냐고 묻는다면 아마 나는 여전히 제대로 답하지 못할 것이다. 대신 이 글을 슬쩍 내밀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