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는 사양하겠습니다_에필로그
아무것도 없는 사람
아무것도 없는 남자와 아무것도 없는 여자가 결혼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여자와 서울에서 일하는 경상도 남자였다. 같은 직장에 다니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없어서인지 눈이 맞았다고 한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자식을 둘을 낳았다. 1991년도에는 아들이, 1994년도에는 딸이 태어났다. 그게 나와 우리 오빠이다.
그전에 부산에서 아무것도 없는 남자와 조금 있는 여자가 결혼을 먼저 했다. 그리고 다시 아무것도 없는 자식을 낳았다. 여자는 조금 있는 여자였지만, 아무것도 없는 남자와 같은 길을 가기로 했다. 그래서 1983년, 아무것도 없는 자식이 태어났다. 그것이 우리 남편이다.
아무것도 없는 만남
그렇게 2014년, 아무것도 없는 스물 하나의 여자과 아무것도 없는 서른둘이 만났다. 그 둘은 연애를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어서인지,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사랑했다. 그렇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는 남자가 유일하게 바라는 것이 하나 있긴 하다고 했다. 아무것도 없는 여자와의 결혼이었다. 그리고 일 년 삼 개월 뒤 스물셋이 된 여자와 서른넷이 된 남자는 결혼했다. 그 결과 다시 아무것도 없는 가정이 하나 탄생했다.
아무것도 없는 남자와 아무것도 없는 여자는 아무것도 없이 결혼식을 올렸다. 아무것도 없어서 결혼식도 하지 않으려 했지만, 아무것도 없는 부모님이 바라서 결혼식은 하자고 했다. 아무것도 없으니 아무것도 없이 결혼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가능한 일이었다. 대충 돈을 끌어다 모은 뒤, 축의금으로 값아 결혼식을 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가정을 만든 아무것도 없는 남자와 아무것도 없는 여자는 결혼 뒤에도 아무것도 없어서 집도 없고 차도 없고 돈도 없었다. 돈을 벌었지만 아무것도 없어서 돈은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모두 소진되었다. 그나마 조금씩 돈을 모으기는 했는데 그것도 가졌다고 하기 뭐한 돈이었다. 그래도 쌓이긴 쌓였다. 하루 만에 일억 투자해서 벌 돈을 몇 년을 모아야 했다.
아무것도 없긴 했지만, 아무것은 있었다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남녀에겐 작은 오토바이 하나가 있었다. 남자가 결혼 전에 타고 다니던 오토바이였는데 88년식 빨간색 시티백이었다. 오토바이는 여자보다 나이가 많았다. 남녀는 그 오토바이를 함께 타고 다녔는데 여자는 그 오토바이를 타기 조금 미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보다 나이 많은 오토바이가 툴툴거리며 움직이는 게 괜히 부려먹는 심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을 모은 남녀는 차를 하나 샀다. 아무것도 없는 남자가 자동차 면허를 따고 몇 달 뒤였다. 계속 말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 첫 차는 백만 원짜리 아반떼 XD. 아무것도 없는 남녀의 인생 첫 차였다. 아무것도 없는 남자가 백만 원 준 중고차를 끌고 여자에게 첫 시승식을 한 날 02년식 아반떼 XD는 주유 등이 고장 나 있었고 도로 한복판에 기름이 없어서 멈춰야 했다. 아무것도 없는 남자는 당황했고 견인을 불렀다. 아반떼 XD는 주유소를 백 미터 남긴 상태였다.
시간이 지나 아무것도 없는 남자는 그나마 덜 아무것도 없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차를 바꿨다. 육백만 원짜리 09년식 토스카였다. 88년식 오토바이보다 열한 살 더 많으니 아무것도 없는 여자와 아무것도 없는 남자의 나이 차이와 같았다. 아무것도 없는 여자는 이제 차를 탈 때 덜 미안하다. 그래도 여자보다는 나이가 적은 차를 타기 때문이다.
돈은 없는데, 그래도 사람은 있다
아무것도 없는 남녀의 집 또한 아무것도 없었다. 일곱 평 정도의 원룸에서 둘이 살았는데, 아무것도 없는 여자의 자취방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남자는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서울 자취방을 뺀 뒤, 아무것도 없는 여자 집에 들어왔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는 남자는 아무것도 없어서 아무것도 없는 남자가 집에 들어온 뒤에도 집의 수납장은 그대로였다.
아무것도 없는 남녀의 집은 기본적인 가구를 제외하면 다른 가구를 둘 자리가 없었 다. 그나마 있는 가구도 원룸에 기본으로 있던 가구였다. 침대, 에어컨, 세탁기 다 있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남녀의 것은 아니었다. 결혼 후 일 년이 지나 이사를 하긴 했지만 남녀의 돈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어서 조촐하게 한 결혼식 때 받은 축의금이었다.
이사를 하며 아무것도 없는 남녀는 새로 이사 갈 집을 채워야 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어서 채울 돈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남녀는 옷장 대신 자취방에서 쓰던 행거를 고스란히 가져갔다. 에어컨은 집주인에게 잘 얘기해서 새로 달아 달라고 부탁했고 친절한 집주인은 새 에어컨을 달아주었다. 아무것도 없는 남녀의 집에 들어갈 세탁기는 아무것도 없는 여자의 오빠가 사주었다. 아무것도 없는 여자의 오빠도 아무것도 없었어 아무것도 없는 여자에게 세탁기를 사준 뒤, 정말 아무것도 없어져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대망의 침대는 역시나 아무것도 없는 여자의 어머니가 선물해주었다. 아무것도 없는 남녀는 침대가 그렇게 비싸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아무것도 없는 남녀의 집엔 이제 침대도 생겼고 냉장고도 생겼고 식탁도 생겼고 화장대도 생겼다. 이제 아무것도 없다고 하기엔 가구도 있고 차도 있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 남녀는 덜 아무것도 없는 남녀가 되었다. 그 뒤 고양이 두 마리를 입양했는데, 똑같이 아무것도 없는 고양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근데 이제 아무것도 없... 나?
아무것도 없는 남녀는 다시 이사를 했다. 그것 또한 남녀의 돈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이었기 때문이다. 혼인신고를 미뤄온 아무것도 없는 남녀는 전세자금 대출에 혹해서 혼인신고를 했다. 아무것도 없는 남녀의 첫 서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건명 : 혼인신고
아무것도 없는 남녀는 이전 집에서 보증금을 빼고, 대출을 끼워서 이사에 성공했다. 이전 이사로 나름의 가구들이 있어 새로 산 것은 에어컨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남녀는 여전히 아무것도 없음에도 기뻐했다. 이사한 집은 아무것도 없는 남녀의 생의 첫 전세였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는 남녀는 드디어 월세를 내지 않는 삶을 경험한다며 기쁨의 춤을 췄다.
이제 아무것도 없는 남녀는 차도 있고 전세에 살고 가구도 있고 고양이 두 마리도 있다. 아무것도 없다고 했는 데 있을 건 다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누울 자리도 있고 차 있고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고 고양이 두 마리 있는데 이 정도면 세상 다 가진 거 아닌가? 남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것도 없는 여자의 이야기가 이렇게 시작된다. 아무것도 없는 여자는 여전히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도 무언가는 있듯이 살아간다. 뭐가 있을까? 궁금하다면 오백 원, 은 농담이고 앞으로의 글을 함께하면 된다.
작가 이수연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다산북스)
* <슬픔은 병일지도 몰라>(반니) 저자
* 독립출판소설 자화상(단편소설집 RED) 제작 및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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