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짱이는 뚠뚠 오늘도 일을 하네

건물주는 사양하겠습니다_저는 이렇습니다만

by 이수연
뭐하는 사람입니까?


나의 직업은 작가. 더 정확히 말하면 프리랜서. 강연이 들어오면 강연하고, 책을 써야 하면 책을 쓰는 사람이다. 그런 나는 대부분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난다. 남들이 일하고 있을 때 유유히 놀러 나가고 일 년에 두 번 있을 휴가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부러운가? 과연 부러울까?

그런데, 실상은 별로 부러울 일이 아니다. 남들 일할 때 논다는 것은 남들이 놀 때 일한다는 의미이다. 오히려 쉬는 날이 정해져 있지 않아 한 달에 쉬는 날이 이틀밖에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냥 쉬면 되지 않느냐고? 아니, 만날 놀면 그게 백수지 직업이겠는가. 직업이라는 것은 늘 직업이라는 단어가 붙을 만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적어도 나의 직업의식은 그러하다.


나는 이렇게 삽니다


대충 나의 일주일은 이러하다. 다른 분야화 협업하는 일 회의가 일주일에 두 번. 회의를 하면 실행에 옮겨야 하니 그 작업 일주일에 한두 번.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도 글 쓰는 법을 모르겠어서 함께 글 쓰는 수업 일주일에 한 번. 사람도 만나야 하니 약속이 일주일에 두세 번. 매일 영상 편집과 SNS, 글 쓰는 페이지 관리와 일기 쓰기. 일기를 쓴 뒤에는 렌덤 단어로 문단 쓰기 한 번. 모르는 단어 있으면 사전 검색은 필수. 그리고 작가니까 책 읽기 추가. 책을 읽었으니 서평 쓰기 또 추가. 글 쓰는 수업에 쓸 원고와 다음 책 원고도 또 추가. 그러고 나면 하루가 간다. 요즘 회사는 주 40시간 근무라는데 40시간은 가볍게 뛰어넘는 일이다. 해야 하는 일을 매일 하다 보면 어느새 15시간째 일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나 더 비교를 하자면 돈이다. 회사원들은 월급을 받는다. 제때 통장에 일정 금액이 반드시 찍히게 되어있다. 그런데 나는 월급이 없다. 내가 책을 일주일에 다섯 권 읽고 매일 원고를 써도 월급 따윈 없다. 독서는 누군가 보상해 줄 일도 없다. 돈이 들어오는 것은 일 년에 네 번. 분기별로 정산되는 인세와 가끔 있는 강연료. 그나마도 강연이 없거나 책이 안 팔리면 못 받는 돈인 것이다.

그럼에도 꿋꿋이 매일 해야 하는 일을 한다. 일을 하다 보면 마음속으로 한 음악이 울려 퍼진다.


“개미는, 뚠뚠. 오늘도, 뚠뚠. 열심히 일을 하네.”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배짱이겠지만, 베짱이도 나름 개미처럼 일하고 있는 것이다. 매일 기타 치고 노래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하나를 노래하기 위해 매일 발성 연습과 가사를 외우는 일 또한 얼마나 힘든가. 누가 베짱이가 노력하지 않는다고 말하나!(절대 욱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베짱이는 얼어 죽는다. 다른 버전의 이야기에선 개미가 도와주는데 어떤 이야기에선 얼어 죽는다. 현실로 따지자면 예술 계통과 비유할 수 있다. 예술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개미처럼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돈은 못 번다. 그럼 겨울이 오면 얼어 죽는다. 혹은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벌기 위해 베짱이 짓과 개미 짓을 같이 한다. 이 얼마나 성실하고도 피곤한 인생인가. 베짱이 짓과 개미 짓을 다 해야 한다니.



여기까지 프리랜서의 슬픔이었고, 사실 말하고 싶은 것은 기쁨이었다. 그렇게 돈 못 벌고 일을 많이 해도 이 일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당연히 내가 좋아하는 일이어서이고 둘째는 이 삶이 마음에 든다. 돈 좀 못 벌고 매일같이 일해야 해도 이 삶이 마음에 든다. 그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개미로 살아야 하는 베짱이는 행복할까?


누군가는 제때 출근하고 제때 퇴근하고 제때 쉬는 것을 좋아한다. “역시 남들 쉴 때 쉬어야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나도 그런 삶을 살아보지 않은 것이 아니다. 회사 생활도 해 보았고 내 사회성은 오랜 아르바이트로 다져 있다. 그러나 그 삶이 그렇게 재밌지 않았다.


중학교 때부터 나의 꿈은 음악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이었다. 그리고 음악을 시작하고 오 년 만에 그 꿈을 이뤘다. 음향 회사에 취직한 것이다. 음악 하나만 바라보고 계속 달려왔던 나는 음악을 통해 돈을 벌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음악을 듣는 것이 일이었고, 훌륭한 아티스트와 작업할 수 있었다. 그러면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매일 출근하는 동시에 퇴근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무작정 해야 할 일이 쌓여갔다. 어떻게든 해라, 라는 방식은 나를 피 말리게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매번 시간에 쫓기고 야근을 하면 한숨이 푹푹 나오는 삶은 괴로웠다. 이토록 하고 싶어 하던 일의 현실이란 이런 걸까? 발 끝부터 가슴을 지나 머리까지 현실 타격을 맞았다. 일주일에 한 번, 두 번, 현실 타격은 점점 강해지며 나중에는 결국, 출근길에 차에 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곤 했다.


그래도 그만둘 수도 없었다. 오랜 시간 이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기껏 이룬 꿈이었다. 그만두면 당장의 월세도 걱정이었다. 적은 월급에 모아둔 돈도 없었다. 그야말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스물 하나는 현실과 꿈이 섞여 있는 회사를 꾸역꾸역 다니는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그만두지 못하고 일을 질질 끌었다. 분명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너무 힘들었다. 그 마음에 죄책감마저 느껴졌다. ‘이 일을 하기 위해 얼마나 꿈꾸고 노력했는데, 내 마음이 바뀐 걸까. 고작 몸이 힘들다고 오랜 꿈을 포기해도 되는 걸까.’하며 자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삶의 형태가 나와 맞지 않는 것이었는데, 어린 경험으로선 그런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결국, 더 공부하고 싶다며 어렵사리 퇴사하고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그냥 베짱이로 살겠습니다, 열심히 사는 베짱이요


사실상 일하는 시간은 회사를 다닐 때보다 많고, 버는 돈은 회사를 다닐 때보다 적다.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은 같은데 그렇다. 그런데 나는 더 만족한다. 밤늦은 시간까지 책을 읽고 해가 뜨는 것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 사람들이 자는 시간에 남편과 드라이브를 하는 일, 북적이지 않는 미술관이나 여행지를 가는 일을 즐긴다. 여유 있다는 마음도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무엇보다 내 삶의 시간을 찾은 느낌이다. 나와 맞는 나만의 하루와 시간.


사람마다 각자 삶의 시간은 다르다. 아침 여섯 시에 딱 일어나 밥 먹고 일하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하루에 한 끼 먹고 새벽에 일하는 사람도 있다. 서로 “어떻게 그러고 살아?”하고 묻는데 사실 둘은 똑같다. 자신과 맞는 하루에 사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다르니까, 똑같은 시간 속에서도 다르게 살아갈 수 있다. 다수가 아닐 뿐, 나는 나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


당신은 베짱이인가요? 개미인가요?


만약 나의 삶이 너무나 힘들다면, 이상하게 불만족스럽고 하고 싶은 일을 해도 가슴이 턱턱 막혀온다면, 매일이 피곤하고 눈뜨는 하루를 피하고 싶다면 내가 나와 맞는 시간을 살고 있는지 돌아볼 가치가 있다. 남들이 정해놓은 시간이 나와 맞는 것인지, 나와 무엇이 맞는지 되돌아보면 조금은 답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의 하루가 있다. 당신에게도 당신만의 하루가 있지 않을까.




작가 이수연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다산북스)

* <슬픔은 병일지도 몰라>(반니) 저자

* 독립출판소설 자화상(단편소설집 RED) 제작 및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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