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 낯가립니다만?

건물주는 사양하겠습니다_저는 이렇습니다만

by 이수연
저를 아시나요...?


가끔 주변에선 나는 인간관계에 고민이 없는 속 편한 사람처럼 본다. 결혼도 했고 주변에 사람도 많고 연락하는 사람도 많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모임에선 늘 진행을 맡곤 했다. 그 외에도 거의 매 달 사람을 만나는 약속으로 일정이 꽉 차있어 나를 만나기 위해선 예약을 해야 한다는 소리도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작가가 되면서 신기하게 알아보는 사람도 생겼고 먼저 다가오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우연히 만난 사람이 나의 팬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웃으며 감사하다고 했지만 속으로 심장이 두근댔다.


‘어떻게 나를 알지...? 내가 그렇게 유명했나?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그것보다 사실 나 낯가리는데.’


우연히 만난 팬이 사인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복잡한 머리를 안고 사무적인 사인을 했다. 그리고 팬이라고 하는 분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실망할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시야에서 보이지 않자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순간, 약간은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기도 했다.


낯가림의 역사


나의 낯가림의 역사는 깊다. 초등학교 때는 그래도 부반장도 하면서 나름 친구가 많았지만, 나의 전성기는 거기까지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새로 입학한 중학교에선 내가 졸업한 학교를 나온 친구가 한둘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대부분 다른 초등학교 친구들. 낯선 환경에 낯선 사람이 주어지자 나의 숨겨진 낯가림이 빛을 보았다. 삼 년 내내 친구 하나 없는 사람으로 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친구가 없는 것이 스트레스이기도 했지만, 그때부터 혼밥의 맛을 알게 되었다. 급식도 혼자 먹는 것이 편했고 어딜 갈 때도 내 시간에 맞춰 혼자 가는 것이 편했다. 쉬는 시간엔 매점에서 빵사먹는 것보다 혼자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것이 좋았다. 간혹 가다 간식을 사 먹어도 뺏어 먹을 친구조차 없었다. 이거 나름 괜찮은데? 그렇게 생각했다.


불편한 것이 있다면 혼자라는 것에 눈치 주는 사람이었다. 중학교 담임 선생님은 나를 따로 불러 다른 사람과도 어울려야 한다고 했다. 학생을 생각한 교사의 진심 어린 말이었지만, 그 말에 나는 혼자가 눈치 보였다. 같은 반 애들도, 선생님도 나를 이상하게 보고 있다고 생각했고, 어느 정도는 그게 맞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학교에서 안 좋은 기억을 쌓은 나는 열일곱, 쿨하게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 학교가 싫으면 내가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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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가리는 사회생활 마스터


그렇게 열일곱에 시작한 사회생활은 오히려 편했다. 다들 돈 벌려고 출근했지, 친구 사귀려고 출근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에 십 대인 나와 같은 또래는 아예 없을뿐더러, 억지로 누군가 사귀지 않아도 괜찮았다. 게다가 함께 일하는 직원도 많지 않아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친구라고 하긴 뭐하지만, 나름 인간관계가 생긴 것이다.


그렇게 아르바이트와 회사 생활로 나는 낯가리지 않게 보이면서 낯가리는 이상한 방법을 배웠다. 일이 있을 때는 전화도 잘하고, 연락도 잘하고, 먼저 인사도 잘하고, 안부도 묻지만 어쩐지 절대 친해지는 법은 없었다. 일을 무사히 마치면 술 한잔도 하고, 개인적인 얘기도 나눴는데 돌아서면 끝. 이게 어른의 관계라는 건가, 사회란 이런 건가 싶었다. 다 그런 줄 알아서 사실, 내가 낯가려서 그런 거라는 것도 몰랐다.


어딘가 이상하다


나의 이상함을 눈치챈 것은 남편을 만난 뒤부터였다. 공연장을 운영했던 서른둘 남편과 사운드 엔지니어 일을 하던 스물 하나의 나는 만나서 함께 재밌는 일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새로운 공연 기획을 했는데,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섭외해 공연을 만들고 실황 녹음을 해서 음반을 내는 일이었다.

클래식 분야에서 실황 녹음은 흔한 일이지만, 인디씬에선 드문 일이었다. 라이브 음악을 녹음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아티스트도 있었지만, 그래도 늘 공연은 만들어졌다. 첫 시작 이후 약 삼 년 동안 7회 기획된 공연은 일곱 개의 음반과 70개의 음원 작업, 그리고 열네 명의 아티스트가 거쳐갔다.


함께 작업한 아티스트들은 모두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었다. 평소 공연도 보고 같이 작업하고 싶다는 마음을 그렇게 풀었다. 당연히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니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서로 음악 얘기도 하고, 안부도 묻고, 가끔 만나기도 하고. 그런데 어쩐 일인지 모두 내게 존칭을 놓지 않았다. 남편에겐 형, 오빠, 동생 하며 말을 놓는데 나는 늘 ‘수연 씨’라고 불려졌다. 아니, 나도 친해지고 싶은데... 내가 한참 나이도 어린데 왜 다들 나를 어려워하는 거지? 그리고 남편의 말로 나의 진실을 알았다.


“수연이는 좀 낯을 가리는 것 같아.”


남편이 말한 나는 이러했다. 일단 말을 절대 놓지 않는다. 처음 누군가를 만나면 내 얘기는 잘하지 않는다. 어쩌다 번호를 교환해도 먼저 연락하면 상대가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부터 하고 상대가 나를 귀찮아하지 않을까 다시 걱정한다. 지인에게 먼저 만나자고 말 한마디 못하고 먼저 연락하는 것도 문자 내용까지 다 써놓고 전송 버튼도 못 눌러 남편에게 부탁하고선 보내 놓고 또 마음 졸인다. 내가 연락해서 불편한 건 아닐까, 싫다고 하면 어쩌나. 소심한 마음은 다 끌어안고 답장이 안 오면 울기 직전이다. 역시 내가 불편한 거야. 괜히 연락했어. 수십 번을 남편에게 얘기한다고 했다.


남편의 그 말을 듣고 알았다. 아, 나는 낯을 가리는구나. 사람들이 나를 불편해하는 것이 내가 먼저 그 사람들을 불편해해서였구나. 어쩐지 다가가기 힘들고, 어쩐지 먼저 연락하기엔 부담스러운 사람이 나였구나. 그래서 다들 나에게 정중하게 대했구나. 먼저 연락할까 싶어서 문자를 다 치고도 전송 버튼을 끝내 누르지 못하는 것은 낯을 가려서였구나.


낯가리는 인 싸이더


그럼에도 먼저 다가와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먼저 연락하고, 만나자고 말하고, 생각났다고 연락하는 사람들. 나는 늘 그렇게 먼저 다가온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런 큰 벽을 넘어서 나와 친해지려 했구나. 정말 배울 점이 많고 대단한 사람이구나. 그래서 나는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는 일보다 주변 사람을 더 챙기기로 했다.

먼저 나에게 다가와주는 사람의 마음을 무시하지 않고, 그만큼 주려 노력했다. 먼저 연락을 주니 답장을 하는 것은 마음 편했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괜히 억지로 노력하지 않았다. 그저 멀리서 조금의 관심과 호응을 해주는 정도로 만족했다. 나와 맞지 않는 일에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자 내가 마음 편한 일이 보였다. 다가오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그 결과, 지금 내 주변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함께해준다. 마음을 터놓을 친구도 있고, 안부를 물을 사람도 있다. 자랑이라고 하기 뭐하지만, 다 커서 생일 파티를 세 번 한 적도 있다. 이쯤 되면 낯 좀 가려도 사람과 이어가는 것은 잘하는 게 아닐까? 충분히 인간관계가 괜찮지 않나? 이제 내가 낯가린다는 사실을 잘 믿지 않는 사람까지 생길 정도니까.


이왕 이렇게 낯가린다고 터놓았으니 주변 사람이 본다면 먼저 연락해주면 좋겠다.

아, 이제 마음 편하다!



작가 이수연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다산북스)

* <슬픔은 병일지도 몰라>(반니) 저자

* 독립출판 소설 자화상(단편소설집 RED) 제작 및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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