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는 사양하겠습니다_저는 이렇습니다만
신이시여, 저에게 왜 이런 시련을...
신을 믿지 않지만 가끔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하는 일이 있다. 이를테면 잔돈을 잘못 거슬러 받아 만 원이 더 주머니로 들어온 경우라던가, 길가다 현금이 두둑한 지갑을 줍는다던가.
때는 스물여섯, 가을. 나는 음악을 들으며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딱히 집 주변에 산책로가 없어 큰 도로를 따라 한두 바퀴씩 걷곤 했는데, 그날도 동네를 한 바퀴 걷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러다 저만치 보도블록 위에 까만색 무언가를 발견했다. 다가가서 보니 예상했던 것처럼 지갑이었다. 항상 지갑이나 가방을 주우면 망설임 없이 찾아주었기에 찾아줄 생각으로 단서가 될만한 것을 찾기 위해 지갑을 열었다. 그런데 안에 돈이 있었다. 삼십만 원 정도의 현금이.
순간 움찔했다. 이렇게 돈이 많이 든 지갑을 주운 것은 처음인데. 약간은 당황해서 다시 그 자리에 내려놓을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일단 지갑을 들고 집으로 왔다. 그리고 남편에게 전화해서 지갑을 주웠다고 전하자 남편이 말했다.
“카드사에 전화하면 찾을 수 있을걸?”
“근데, 안에 현금이 삼십만 원이나 있어.”
“헛...”
아마 남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건 신이 주신 용돈이 아닐까. 당연히 내 것도 아니고 찾아주어야 하는 것인데 견물생심이라고, 뭔가 그간 믿어온 나의 도덕성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고민되는 마음으로 이번에는 친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지갑을 주웠고 현금이 들어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나름 듣고 싶은 대답이 있어 주변에 자꾸 물었다. 그래도 찾아줘야지. 이런 말들. 그런데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라면 현금만 빼서 가지고 지갑은 한강에 버린다.”
그 말을 듣고 흔들렸던 내 마음은 그나마 양심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차마 현금만 빼고 지갑을 한강에 버릴 생각까진 못했으니까.
빨간 약이냐 파란 약이냐
시간이 조금 지나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함께 지갑을 보았다. 안에는 카드 여러 장과 신분증, 그리고 명함, 더하기 가장 중요한 현금이 있었다. 이 사람은 누구길래 현금을 삼십만 원 들고 다니나 싶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신분증에 있는 이름을 포털 사이트에 쳐 보았다. 지갑을 주웠는데 포털 사이트에 그 지갑 주인이 뜨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내가 그 경우였다. 지갑 주인이 포털 사이트에 기업인으로 올라가 있었다.
삼십만 원에 흔들렸지만, 얼굴에 이름까지 알게 된 사람을 모른 체할 수 없었다. 차라리 신분증을 보지 않았거나 포털 사이트에 검색이라도 안 했으면 조금은 덜 찔렸을 것 같은데, 내 양심은 도저히 넘어갈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소심한데, 잃어버린 사람에겐 큰돈이 아닐지라도 그걸 빼다 쓸 수 없었다. 결국, 약간은 흔들렸지만 찾아주기로 했다. 그렇게 카드사에 전화해서 지갑을 주웠다며 카드 주인에게 연락을 부탁했다.
흔들린 게 부끄럽네요
지갑을 주운 다음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아마도 지갑 주인이지 싶어 전화를 받자 예상대로였다. 지갑 주인은 포털 사이트에 나온 대로 나이가 있는 아저씨였다. 나름 사업도 하시고 높은 위치라고 나왔는데 한참이나 어린 내게 존댓말을 써가며 너무나 공손하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댁이 어디쯤이신가요?
제가 맞춰서 찾아가겠습니다.”
너무 감사해하고 공손하셔서 순간 흔들렸던 내가 미안할 정도였다. 삼십만 원이 아직은 아른거렸지만 지갑 아저씨와 약속을 잡고 만났다. 그리고 손하나 대지 않은 지갑을 고스란히 전해주며 말했다.
“혹시 지갑에 빠진 건 없는지 확인해보세요.”
나 이전에 누군가 발견해서 몰래 카드나 현금을 뺐을 수도 있으니 확인해보라는 내 말에 지갑 아저씨는 내 앞에서 지갑도 안 열어보고 말했다.
“다 있겠죠. 이건 답례입니다.”
그리곤 그제야 지갑을 열고 오만 원을 내게 주셨다. 감사하다는 인사까지 받고 오만 원이 생긴 것이다. 나는 마음 불편한 삼십만 원을 내려놓고 마음 편한 오만 원을 받았다. 그리고 그 돈으로 맛있는 것을 맘 편히 사 먹었다.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습니다
하고 많은 분실물 사건 중 이 지갑이 기억에 남는 것은 한 번이라도 찾아줄지 말지 망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나는 명확하게 알았다. 일단 나는 남의 돈을 그냥 가져갈 만큼 대범하진 못하다. 물론 당당하게 그 돈을 쓰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럴만한 깜냥이 없으니 착하게 사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확실하게 알게 된 하나의 사실. 나는 무엇보다 마음이 중요하다. 삼십만 원이던, 백만 원이던 내 마음이 당당한 것이 좋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고 마음 편하게 지내는 것이 최고다. 돈은 나도 벌 수 있지만, 부끄럽지 않은 마음은 돈으로 살 수 없다. 게다가 부끄럽지 않은 대상이 나라면 더욱이.
하지만 앞으로 아마도 없다고 믿지만, 혹시라도 있을 신이 내 마음을 다시 시험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지갑을 줍더라도 현금이 없는 지갑이길 바란다. 물론 찾아줄 거지만, 시험에 들 필요는 없지 않나. 이렇게 깜냥 없게 태어나게 했으면 그냥 착한 마음으로 쭉 살게 두었으면 좋겠다.
작가 이수연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다산북스)
* <슬픔은 병일지도 몰라>(반니) 저자
* 독립출판 소설 자화상(단편소설집 RED) 제작 및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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