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는 사양하겠습니다_저는 이렇습니다만
세상 물정 모른다~
나는 모르는 것이 많다. 최종 학력은 고졸 검정고시. 대학에 갈 생각도 없었으니 적당히 본 검정고시는 대충 3등급 정도였다. 어릴 때는 공부를 잘해서 어른들의 기대를 받곤 했는데, 아무도 내가 이렇게 가방끈이 짧은 삶을 살 줄은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다.
기본적은 상식도 약한 편이고, 사회나 뉴스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 정치가 어떻고, 요즘 정세가 어떻고, 주식 시장이 어떻고, 부동산 가격부터 법이 어떻고... 정말이지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애초에 관심이 없는 것이 문제겠지만, 누군가 열띤 토론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어떻게 저렇게 의견이 분명하면서도 잘 알고 있는 걸까?
놀리기 좋은 사람
그런 나에게 사람들은 아마 예의상 무식하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자주 놀려먹는다. 매번 모르는 것은 반드시 묻고 상대는 매번 일상적으로 속기 좋은 거짓말을 한다. 또 잘 수용하는 성격이라 “아~그래?”하고 다 믿어버린다. 수용을 잘한다는 나는 그저 속이기 좋은 사람이다. 자꾸 속아주니 자꾸 속인다. 아니, 실은 진짜로 속은 게 맞긴 하다.
특히 세 살 터울의 오빠는 나를 속이는 재미로 살았다. 한 번은 중학생 때 오빠 방에 있는 컴퓨터 본체에 열이 많아 본체 뚜껑을 열어놓고 있었는데, 부품 중 하나가(지금은 그래픽 카드인걸 알지만 그때는 몰랐다) 빨간색으로 변한 것을 보고 오빠에게 물었다.
“오빠, 이건 왜 빨개?”
“이거 컴퓨터가 열 받아서 그래. 열 받으면 빨개져.”
“아~그래?”
그리고 뒤돌아서 다시 내 방으로 돌아가는 순간 오빠가 큰 소리로 내게 외쳤다.
“그걸 믿냐??”
애초에 컴퓨터 부품도 모르는 내게 물어보자마자 그렇게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한 사람이 이상한 거 아닌가? 어떻게 그리 얼굴색 하나 없이 반사적으로 나를 속일 수 있는 걸까. 의심 하나 없는 나는 오빠가 그렇게 외치고 나서야 열 받는다고 빨개지는 부품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 뒤에도 오빠에게 수없이 속고 속았다.
나를 속이는 것은 오빠뿐만이 아니었다. 결혼을 하면서 나를 속이는 일이 오빠에서 남편으로 넘어왔다. 남편 또한 엄청 진지하게 거짓말을 하는 능력자라 어김없이 속을 수밖에 없었다.
“백합조개 알지? 그것보다 더 맛있는 게 뭔지 알아?
그건 장미 조개인데 크기가 손바닥만 한 게 진짜 맛있어. 안 먹어봤지?”
“아~그래?”
“거짓말이야. 장미 조개는 없어.”
이런 사사로운 것에 늘 거짓말. 결국엔 의심 없던 나도 진지한 남편의 얼굴을 보면 오히려 거짓말이라고 의심했지만, 뭐 나를 속이는 일이 그렇게 즐겁다면 속아주기로 했다.
뻔뻔하게 모르기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이렇게 모르는 것이 많고 잘 속는다는 것이 아니라, 뻔뻔하게 모른다는 것이다. 무시당할까 봐 아는 체 하기보단 그냥 대놓고 모르고 대놓고 물어본다. 어떻게 보면 당연히 알 법 한 일도 물어본다. 확인하는 것도 있고, 내가 아는 것과 다를 수 있으니까.
내가 잘 모르는 얘기를 할 때는 “왜?”를 수십 번씩 말하기도 하는데, 의도와 달리 가끔은 주변 사람을 짜증 나게 만들기도 한다. 정치 얘기를 하다 “왜?”에 짜증 난 남편이 화를 내서 나를 울리기도 했다. 마치 다섯 살처럼 계속 묻기만 하니 한두 번은 대답을 해주던 주변 사람도 슬슬 의심한다.
‘얘, 사실 다 알고 물어보는 거 아니야?’
그런 마음이 보일 때면 나는 진심을 담아 상대에게 말한다.
“나 진짜 몰라서 물어보는 건데?”
“이런 것도 몰라?”
그럼 나는 한층 더 뻔뻔하게 대답한다.
“모르면 알려주면 되지.”
살다 보면 관심사가 다르고 사는 것도 다르니 모르는 것이 서로 다를 수도 있는데, 모르면 좀 알려주면 되는 거 아닌가? 내가 모든 것을 다 아는 척척박사도 아니고 가방끈도 짧은데 모르는 게 좀 많을 수도 있지 않나? 그래도 내가 조금 더 아는 일이 있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모르니까 물어보고 알려고 하는 태도 아닌가. 그래서 나는 늘 뻔뻔하게 모른다. 모르니까 배우려 하고, 모르니까 물어본다.
조금은 짜증 나도 알려주세요
나는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죄라고 생각하면 나는 죄가 너무 많으니까. 모르면 배우면 된다. 이렇게 모르는 걸 인정하고 나는 계속 묻고 싶다. 모르는데 아는 체하고 싶지 않다. 솔직하게 묻고 알려하는 용기를 가지고 싶다.
그런데 대답에 의심은 조금 해야 할 것 같긴 하다. “왜?”라고 묻고 그 답을 고스란히 믿어버리니. 다음부턴 “왜?”다음에 나를 속이던, 알려주던 하나 더 물어야겠다.
“진짜??”
조금은 짜증 나더라도 친절히 알려주기를.
작가 이수연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다산북스)
* <슬픔은 병일지도 몰라>(반니) 저자
* 독립출판 소설 자화상(단편소설집 RED) 제작 및 저자
Instagram @suyeon_lee0427
Facebook @leesuyeon0427
Youtube @이수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