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뭐라 부르시게요?

건물주는 사양하겠습니다_나로서 살아가는 방법

by 이수연
태어나보니 호칭이 너무 많다


태어나보니 엄마와 아빠가 있었다. 추가로 오빠도 있었다. 오빠만 있었으랴. 할머니도 있고, 할아버지도 있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삼촌, 이모, 큰아빠, 큰엄마. 무슨 관계가 이리 많은지 여기저기 부르는 이름도 달랐다. 조카, 손녀, 딸 등등 매번 다르게 부르는 것이 신기했던 때였다.

어린 시절 친가에 가면 나는 늘 그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큰아빠께 아저씨라고 불렀다. 큰아빠가 나를 부르면 말똥말똥한 눈으로 "아저씨!"라고 외쳤다. 그럴때면 큰아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큰아빠라고 해야지.”


“아빠도 아니고, 크지도 않은데 왜 큰아빠예요?”


내가 그런 말을 하면 어른들이 웃었다. 조금 더 자라선 그 관계를 조금은 알았는지 큰아빠라고 불렀다. 아빠이고, 커서 큰아빠는 아니구나! 아마 학교에 들어갈 즈음 그 단어를 이해했던 것 같다.


나이만큼 늘어가는 호칭


학교에 들어갈 즈음엔 대부분 나의 호칭은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이었다. 같은 반 친구들이나 학교 선생님들이 있었고 친구의 엄마들도 나를 이름이라는 큰 호칭으로 불렀다. 아마 그때 즈음 우리 엄마는 수연이 엄마라고 불렸을 것이다.

그렇게 초등학교 육 년, 중학교 삼 년, 고등학교 삼... 년 말고 육 개월을 다녔다. 그때까지 나는 이수연이었다. 가족들은 나를 부를 일이 별로 없었고, 친척들을 자주 뵙지 않았으니 주변에선 이름으로 계속 불렸다. 약 십 년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익숙해지기 충분했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사회에 나오자 또 다른 이름이 생겼다. 알바! 직원! 기사님! 참 다양하게 나를 불렀다. 나 역시 사람들을 직급으로 불러야 했다. 이렇게 다양하게 부를 거면 학교 다닐 때 직급 순서 같은 것을 외우게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실장님이랑 대표님은 다르고, 부장이랑 차장은 다르다지 않나, 이사님과 사장님은 또 다르다니 이해가 안 됐다. 거기까지 올라가 봤으면 그 순서를 외웠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런 높은 호칭으로 불리기 전에 퇴사했다.



ballet-2425703_1920.jpg 야호! 퇴사다! (pixabay에서도 이렇게 사진을 쓸 줄 몰랐겠지)


아직도 호칭이 남았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선 잠깐 유학 준비를 했다. 지금도 한국에서 글을 쓰는 것을 보면 유학 계획은 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런 미래를 모르고 열심히 공부할 땐 ‘Su!’라고 불렸다. 영어 이름을 지으라고 해서 귀찮은 마음에 가운데 글자를 영어 이름으로 했다. 나름 그럴듯한 방법이었다. 제시카나 티파니 이런 건 조금 낯부끄러웠으니까. 그러나 짧은 유학 준비를 마치고 다시 다른 호칭이 생겼다. 바로 ‘환자 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팔자에 없는 공부를 하다 갑자기 병이 심해졌다. 당시 내겐 아주 다양한 병명이 있었는데, 그중 대표직을 찾으라면 우울증이었다. 대표가 될 만큼 아주 강력해서 덕분에 별의별 행동을 했다. 밥도 안 먹고(못 먹는 거였지만), 집 밖에 안 나가고(솔직히 못 나가고), 잠도 안 자고(이것도 못 한 거에 가깝네), 제일 안 좋은 행동은 다 했다. 그렇게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했고 대여섯 번 정도 들낙날락하며 유학을 포기했다.


일어나세요, 환자 분. 아니, 작가님!


그때 나의 호칭은 환자였다. 수연님, 이수연 씨, 하고 이름을 부르기도 했는데 결국은 환자였다. 이수연 ‘환자 분’ 이렇게 부르기도 하고 약을 줄 때엔 “환자 분 성함요.”라고 묻기도 하며 아침마다 열리는 의료진 회의에는 이수연 환자로 불려졌다.


‘거 듣기만 해도 아픈 호칭이네.’


자꾸 환자, 환자 하니까 진짜 환자가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진짜 환자였으니 딱히 항의하진 않았다. 그런 걸 보면 정신병원에 있었지만, 나름 현실을 잘 인지했던 것 같다. 나는 환자라는 것을 순순히 인정하고 대표자인 우울증과 앞으로도 사이좋게 지내보기로 했다.


그러다 조금씩 회복하며 다시 사회로 나왔다. 솔직히 아직도 치료는 받고 있으니 환자이긴 한데, 환자보다 더 많이 부르는 호칭이 생겼다. 바로 작가님. 정신병원 입원 4회 차 즈음 얻은 호칭이었다.


책 계약을 하면서 처음엔 출판사에서 작가님이라고 말하기 시작하고 책이 나오면서 주변에서도 나를 작가님으로 불렀다. 주변에 소개될 때도 작가님이 되어버렸다. 내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쉽게 나를 작가님이라고 했다. ‘아니 거 내 이름은 아시는 거요?’ 묻고 싶은데, 모른다고 할까 봐 못 물어봤다. 의미만 통하면 됐지. 그렇게 작가님으로 불리는 날이 많아졌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호칭을 이어나가고 있다. 나는 이 호칭을 지키기 위해 지금도 글을 쓰고 있고.


뭐라 부르시게요? 아, 실은 상관없습니다


현재, 나는 ‘작가님’으로 불리고, 남편에겐 ‘여보’라고 불리며, 외국에선 ‘Su’라고 불리고, 친구들마다 또 다르게 불린다. 관계만큼의 이름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 누구나 나만큼의 호칭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누구나 이렇게 불리는 경험을 할 것이다.

그런데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호칭과 나를 같은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호칭이 나를 나타내겠지만, 내가 나를 나타내는 말은 ‘나’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나는 나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변함없이 내가 나를 호칭하는 것은 '나'이다.

나를 존경하듯 불러도, 비하하듯 불러도, 작가라고 하든, 백수라고 하든 상관없다. 아무리 나를 다양하게 불러도 나는 나일뿐이니까. 나는 어떤 형태로 불리든 그냥 내가 되고 싶다. 물론 로켓펀치처럼 손이 분리돼서 날아가면 조금은 나라는 존재를 다르게 생각해 볼지도 모르지만.


그런데, 분리돼도 날아간 손은 내가 아니라 내 손일뿐이지 않을까?




작가 이수연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다산북스)

* <슬픔은 병일지도 몰라>(반니) 저자

* 독립출판 소설 자화상(단편소설집 RED) 제작 및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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