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든미지근

건물주는 사양하겠습니다_나로서 살아가는 방법

by 이수연
내겐 부담스러운 열정


친구가 초대해서 소셜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다들 열정을 가지고 으쌰 으쌰! 매일과 매주, 목표를 정하고 정기적으로 열리는 모임에서 얼마나 성취했는가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나는 그곳에 놀러 갔던 사람. 손님이나 깍두기 정도이니 구경을 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다들 정말이지 열심히여서 솔직히 조금 놀랐다.


“목표를 정하면 그래도 그 목표와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면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겠죠.
그러니까 일부러 더 높은 목표를 잡게 되는 것 같아요.”


그 말에 솔직히 태클을 걸고 싶었다. “저는 지금 제 모습도 좋은데요. 꼭 발전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건가요?”라고 묻고 싶은데, 너무 깐깐해 보일까 봐 포기했다. 그리고 저 열정 가득 타오르는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서 또 참았다. 그래, 나의 이 마음을 굳이 얘기할 필요는 없지. 그냥 조용히 넘어가자. 그래도 정말이지 나와 참 다른 사람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침묵을 이었다.


beach-1867017_1920.jpg 제게 목표를 묻지 말아 주세요... 제발! (pixabay)


저는 아닌데요?


나의 속마음을 억누르는 동안 모임은 계속 진행됐다. 좌불안석이었다. 곧 있으면 내게도 목표를 물을 것이 분명했다. 묻지 말아라. 속으로 계속 빌고 있는데 결국 순서가 왔다.


“수연님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없는데요...?”


물어보신 분이 조금 당황했다. 이런 열정 가득한 곳에서 그만 속마음을 얘기해 버렸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좀 그렇고. 괜스레 내가 이곳에 왜 놀러 왔나 후회했다. 저들도 힘들고, 나도 힘들고. 그래도 열정 넘치는 사람들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도 목표를 정해 보세요! 지금이라도요.”


목표, 목표. 한때는 목표로만 살아왔는데, 나이가 하나둘 먹으며 그것도 지쳐서 목표 없이 지낸지도 한참이었다. ‘그래, 나도 한때는 목표가 있었지. 허허.’ 하는 동안에도 그들은 나의 목표를 듣기 위해 정적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이 마치 꿈 없는 아이에게 자꾸만 “꿈이 뭐니?”라고 묻는 것 같아 나는 나중에 자식에게 꿈을 묻지 않겠다고 다짐까지 했다. 그리고 어렵게 목표는 아니지만 그나마 바라는 것을 얘기했다.


“글쎄요. 올해 안에 새 책을 계약했으면 좋겠네요.”
“그걸 이루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글을 쓰죠.”
“지금 하고 있는 것 외에 목표를 위해 더 뭘 하실 건가요?”


‘그만!!’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지금 하고 있는 걸 열심히 하면 되지 뭘 자꾸 더 하라는 건지. 나는 정말 생각나는 것이 없어 바보처럼 헤헤 웃다가 다음 사람에게 질문을 넘겨버렸다. 그리고 그 뒤로 그 모임에는 절대 놀러 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열정도, 목표도 없는 뜨든미지근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런데 뜨든미지근이라는 말이 정말 나와 맞는 단어 같아서, 인정하는 것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게 기분 나빴다면, 조금이라도 차거나 뜨거워졌을 텐데 아직도 뜨는 미지근한 걸 보면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다.


지금도 뜨든미지근하게 산다


지금 나는 포부도 뜨든미지근하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그 일을 해내겠지. 꼭 내가 대단한 사람일 필요는 없잖아.’ 라며 자신에게 말한다. 목표도 뜨든미지근해서 반드시 이뤄야 할 것도 없으니 반드시 해야 할 일도 별로 없다. 결과가 뜨든미지근해도 실망하는 일도 적다. 애초에 삶도 뜨든미지근해서 발전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발전하지 못해도 어때. 열심히 살았는데. 뜨든미지근한 합리화도 잘한다.

아마 내 체온도 뜨든미지근해서 뜨든미지근한 물로 샤워하고 뜨든미지근한 침대에 눕는 일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뜨든미지근하게 집 온도를 맞추고 일어날 때도 뜨든미지근하게 적당히 게으름을 피운다. 눈을 뜨면 또다시 뜨든미지근한 하루의 시작이겠지만, 또 어떤가. 내일도 뜨든미지근할 것을.


식을 것도 딱히 없고, 뜨거워질일도 딱히 없는 뜨든미지근. 그러나 나와 가장 가까운 편안한 온도이지 않을까. 내게 뜨뜬미지근은 천천히 걷는 일이고 때로는 앉아서 쉬는 일이다. 그래서 마지막 말도 뜨든미지근하게 해야겠다. 뭘 그리 빨리 가려고 합니까. 걷다 보면 다 닿을 곳을.




작가 이수연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다산북스)

* <슬픔은 병일지도 몰라>(반니) 저자

* 독립출판 소설 자화상(단편소설집 RED) 제작 및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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