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자세를 찾아라

건물주는 사양하겠습니다_나로서 살아가는 방법

by 이수연
베스트 자세야? 인정!


내 집에서 함께 하는 유일한 인간인 남편은 가끔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는다. 밀린 청소나 집안일을 할 때 남편을 부르면 보통 남편은 자신이 하겠다며 나오지만, 어떤 날은 방에서 대답만 간신히 한다. 무얼 하길래, 싶어 방으로 가보면 남편은 이상한 자세로 누워있다. 정면으로 누운 것도 아니고, 측면으로 누운 것도 아니고, 몸도 어딘가 구부러져 있고 머리는 높고 다리는 낮은 그런 모습. 그 모습을 보면 나는 늘 남편에게 묻는다.


“아, 지금이 베스트 자세야?”
“응. 진짜 베스트야.”


그 이상한 자세가 남편에겐 누워있는데 제격인 베스트 자세다. 그리고 그 자세를 찾아 누워 있을 때는 서로 건드리지 않는다. 다시 누우면 그 자세와 그 편안함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때로는 침대를 다 써가며 누워서 상대가 눕지 못해도 베스트라면 한 번쯤은 봐준다. ‘그래, 그 편안함 나도 알지’, 하면서.



P20200130_234406346_7B2A7C8F-C45F-4CFE-9A2D-81B838810B56.JPG 우리 집 고양이 니브의 베스트 자세. 역시 고양이의 베스트는 박스인가 보다.


베스트 자세로 살아가다


가끔 살아갈 때도 베스트 자세가 필요하다. 남들에겐 이상하고 불편해 보일지 모르는데, 그게 내 인생에는 베스트, 가장 편안한 자세인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그만둘 때 그랬고, 이른 독립을 할 때에도 그랬다. 남들은 왜 평범한 길 두고 그렇게 고생하냐고 물어도 그게 내겐 베스트였다. 아무리 다시 생각해봐도 다시없을 베스트.


고등학교를 그만두었던 것은 열일곱 구 월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 하던 나는 부모님을 끈질기게 설득해서 고등학교 자퇴권을 얻었다. 자퇴하면 어떻게 살지 계획부터 시작해서 검정고시 공부까지 스스로 계획했다. 그만둘 생각으로 다니는 학교를 상상한 적, 다들 있지 않나. 내가 가장 학교 생활을 즐겼던 때는 그만둘 생각으로 다녔던 육 개월의 고등학교 생활이었다.

어차피 그만둘 생각이니, 학교 성적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수업도 듣고 싶은 대로 들었고 야간 자율 학습도 학교를 그만두기 전에 경험해야 한다며 필수도 아니면서 괜히 야자실에 들어갔다. 물론 예상했다시피 공부는 안 하고 시간만 때우다 집에 돌아갔다.

한 번은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수행 평가로 각자 가능한 악기를 연주하는 실기가 있었는데 나는 그곳에서 기타를 쳤다. 그런데 음악 선생님은 대중음악을 연주했다는 이유로 낙제시켰고 재시험을 보라고 했다. 내가 기타를 가르쳐준 친구는 쉬운 클래식을 연주해서 통과했다는 것도 아이러니였다. 그래서 나는 재시험 날, 학교를 안 갔다. 나는 분명히 연주를 했고, 재시험을 볼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으니 나름의 반항이었던 것이다.

대학 진학도 하지 않고 어차피 학교를 그만 둘 나를 신경 쓰는 선생님은 없었다. 나는 그 날 집에서 늦잠을 자며 느지막이 산책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이 얼마나 편안한 인생일까. 하기 싫으면 안 하는 삶. 그야말로 베스트 자세다.


또 다른 베스트 자세는 독립이었다.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돈을 벌기 시작한 나는 열일곱에 집을 나와 반 독립생활을 했다. 그렇다고 뭐, 놀러 다닌 것도 아니고 미성년자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다닌 것도 아니다. 그저 집이 아닌 지하 작업실에서 잠을 청하고 친구들이 등교하는 시간에 나는 출근을 하는 정도였다.

집에 들어가서 지내는 시간은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한 번도 내 방을 가져보지 못한 나는 그때부터 월세를 내며 내 공간을 만들었다. 내 공간이라고 하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은 방해할 수 없고, 나의 동의하에 함께 할 수 있으며 내가 생활하는 것을 방해받지 않는 것을 의미했다.

집에서 눈칫밥으로 살아온 내게 나의 공간은 그야말로 편안 그 자체였다. 비록 매 달 나가는 월세를 위해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웠지만, 만족스러웠다. 내가 돈을 직접 벌고 있으니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부모님께 얘기하지 않고 스스로 구입할 수도 있었다. 내 힘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열일곱에 느낀 또 다른 베스트 자세였다.



homeless-1204653_1920.jpg 때로는 이상해 보이는 자세가 베스트 자세가 된다 (pixabay)


베스트 자세는 늘 달라진다


그런데 베스트 자세도 누울 때마다 다르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베스트 자세도 변화했다. 처음 베스트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었고 그다음으로 찾아온 베스트는 학교를 그만둔 것이고 그다음은 자립이었고 그다음은 안정감이었다. 늘 월세와 생활비를 걱정해야 했던 내가 결혼과 취직을 하며 안정감을 찾았다. 안정감을 찾은 뒤에는 다른 베스트 자세가 나를 기다렸다.

주변 사람들은 나의 정신병원 입원 사실을 숨기길 바라지만, 이미 출판한 두 권의 책으로 다 알려져 버린 나는 숨기지 않고 말할 수 있다. 그다음의 베스트 자세는 정신병원 입원이었다. 마음 편히 쉴 수 있고,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베스트였다. 마음 편히 쉬어본 적 없던 내가 처음으로 마음 편히 쉬면서 포기하는 법을 배운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의 베스트는 고양이들이다. 침대 위에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끼여 누워있으면 그보다 편한 일이 없다. 하나는 머리에, 하나는 발 밑에서 고롱고롱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편해진다. 어찌 보면 베스트가 갈수록 소박 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마다 다른 베스트 자세


만약 모두가 내게 학교를 절대 그만두어선 안된다고 했다면, 나는 나의 베스트 자세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모두가 대학을 꼭 가야 한다면서 억지로 내게 입시 준비를 시켰다면 나는 절대 편안하지 못했을 것이다. 구부정해도, 팔다리가 이상하게 놓여 있어도 그게 내가 편하다면 내 인생의, 지금의 베스트 자세다. 그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방해할 수 없는 나만의 편안함.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베스트 자세’는 ‘나’의 베스트 자세라는 것. 남편이 아무리 편안하다고 하는 자세를 내게 가르쳐 내가 그렇게 누워도 남편이 느낀 편안함을 내가 느끼진 못한다. 덩치도 다르고 척추가 휜 정도도 다르고, 이것저것 다 다르니 당연할 수밖에 없다. 내가 베스트 자세를 원한다면 이렇게도, 저렇게도 누워가며 스스로 내게 딱 맞는 베스트 자세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누군가는 똑바로 누운 정자 세일 수 있고, 나처럼 이상한 모양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각자의 베스트 자세를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 이수연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다산북스)

* <슬픔은 병일지도 몰라>(반니) 저자

* 독립출판 소설 자화상(단편소설집 RED) 제작 및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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