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는 사양하겠습니다_나로서 살아가는 방법
나는 커서 뭐가 될까
“한 분야에서 십 년간 일하면 전문가가 된단다.”
어릴 적, 나를 가르치던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그러면서 이어 내게 말했다.
“근데 너는 십 년 뒤에 뭘 할지 정말 궁금하다.”
그때는 별생각 없이 듣던 그 말을 지금 돌이켜보면 그 물음은 진짜 궁금하다는 말과 내가 뭐가 될지 정말 모르겠다는 의미였다. 워낙 이것저것 다 해보는 성격이니 뭘 할지 학생을 수십 명 가르쳐본 선생님들도 내가 나중에 뭘 할지 감이 안 오셨던 것 같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얘가 이것저것 하다 뭣도 안될까 봐 걱정하신 듯하다.
저 음악 할 건데요?
어릴 적의 나는 호기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미술대회에 나가서 상을 타고, 과학경시대회부터 라디오 만들기, 과학상자, 라인트레이서 대회, 발명대회 등 여러 대회에 나가서 또 상을 탔다. 그러다 몸이 약해서 시작한 합기도에서도 대회를 나가며 선수 생활을 이 년 정도 했다.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고, 가끔 그림도 그리는 중학생의 내게 수학 학원 선생님은 면담을 신청했다. 그리고 나를 잡고 말했다.
“너는 공부만 하면 충분히 좋은 대학 갈 수 있는데 왜 그러니.
운동이나 다른 거 그만두고 이제 공부만 해라.
이제부터 준비하면 수학 1등급도 가능해.”
“저 음악 할 건데요?”
그리고 나는 음악을 하겠다며 모든 학원과 대회 준비를 때려치웠다. 그만둔 게 아니라 진짜 때려치웠다. 덕분에 선생님마다 교무실로 나를 돌아가며 불렀다. 과학 선생님은 과학을 하라고 하고 체육 선생님은 운동을 하라고 하고 담임 선생님은 성적이 왜 떨어지냐며 돌아가며 한 마디씩 했다. 그 와중에 미술 선생님은 "너! 미술을 해라!"라며 나를 불렀다. 그러나 나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나는 ‘십 년이면 전문가가 된다’는 말을 믿고 음악만 하기로 했다.
이제는 하나만 하겠... 응?
그런데 음악을 할 때에도 하나만 하진 않았다. 기타를 배우면서 작곡을 배우면서 피아노를 배웠다. 음악이라는 틀 안이니까 다 배우면 좋지 않나 싶어서 또 이것저것 배웠다. 그때 나를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내가 뭘 할지 감을 못 잡았다. 기타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기타로 대학을 가는 것이 어떻겠냐 물었고 작곡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작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나의 길은 또 엉뚱하게 갔다. 스물 하나에 사운드 엔지니어로 취업을 한 것이다.
사운드 엔지니어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는 채로 스튜디오에 무작정 메일을 보냈었다. 일을 정말 하고 싶은데, 만나 뵐 수 있냐고. 그렇게 무작정 메일을 보낸 스물 하나에게 대표님이 만나보자고 했다. 그냥 한 번 패기 로운 이 청년을 만나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나를 뵙고 그 주에 회사에서 일하던 모든 직원이 다 그만두는 사태가 일어났다. 그렇게 일할 사람이 모두 없어진 상황에서 나는 취업당했다. 갑자기 와서 일하라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그 뒤, 나는 사운드 엔지니어가 되어야 했다. 알지도 못하는 프로그램을 써야 했고, 해본 적도 없는 마이킹을 해야 했고, 음향 장비 설치도 하고, 믹싱도 해야 했고, 마스터링도 해야 했다. 그래도 이것저것 배워둔 덕분에 특성을 이해해가며 빠르게 적응했다.
생각하지도 못한 직업이었지만, 생각보다 잘 맞았다. 어릴 적 기계를 다룬 기억으로 음향 기계에 친숙했고 작곡을 배우면서 익힌 편곡이나 편집, 사운드 디자인이 믹싱을 할 때 도움이 되었다. 가끔 케이블을 만들 때면 납땜을 거침없이 했다. 배워서 남주는 건 없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직업은 이상하게 흐른다
나름 만족스러운 적성과 직업에 나는 쭉 엔지니어로 살 줄 알았다. 이제는 내 직업을 드디어 찾아냈구나 싶었다. 여기서 십 년을 일하면 진짜 전문가가 되겠지. 녹음도 기가 막히게 하고 위상이 틀린 것도 다 잡아내고 박자마다 딜레이 초를 계산할 줄 아는 그런 전문가. 척하면 딱 해내는 이 분야의 전문가.
그런데 또 인생은 이상하게 흘렀다. 엔지니어만 할 줄 알았던 내가 아프면서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마치 인생이 끝난 것 같았다. 드디어 내 길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병원에 입원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직장과 재계약을 하지 못했고 기다려주던 동료들도 하나둘 떠나갔다. 언제든지 돌아오라며 얘기해주었지만, 나의 빈자리를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이 채우고 있었다.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았다.
그 뒤, 그 생각이 무색할 정도로 새로운 길을 찾았다. 병원에 입원하면서 매일 쓴 일기를 주치의 선생님이 읽었고 책으로 내는 것이 어떻겠냐며 권유한 것이 진짜 책으로 나와 작가가 되었다. 투고를 했고, 계약 제의가 들어왔다.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작가라는 직업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이토록 통일성 없는 인생이라니, 이상하게 흐르는 인생이었다.
그런데도 글을 쓰는 일은 나와 너무 잘 맞았다. 마음이 편하면서 하고 싶은 대로 창작을 해낼 수 있는 무궁무진한 곳이었다. 음악만 표현의 방법이라고 생각한 내겐 표현이 넓어지는 경험이었다. 글을 쓰는 일 또한 굉장히 즐거웠다. 나에 관해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는 완벽한 공간. 이건 완전 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 격이었다.
아직 인생을 다 살진 못했지만
그렇게 작가로 만족하며 글을 썼다. 작가가 되면서 다른 사람의 고민을 자주 들어주게 되었는데, 어느 날 한 학생 독자가 물었다.
“저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뭘 할지 모르겠어요.
다른 사람은 다 자기 길을 정하는데, 전 뒤쳐진 것 같아요.”
그 말에 내 삶이 생각났다. 이것저것 하다가 생각지도 못한 직업을 가지게 된 나. 어쩌면 나도 다른 사람에 비해 작가로서 뒤쳐진 게 아닐까 늘 생각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것 같고 글쓰기를 배워본 적도 없으면서 일을 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런 나이기 때문에,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이 있지 않을까?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 내가 글을 썼을까?
그래서 나는 이렇게 답했다.
“너무 하나만 보고 가다 보면,
그게 막혀버렸을 때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더라고요.
저도 ‘이것만 해야지!’하다가 모두 무너져버리기도 했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지금이 너무 좋아요.
그 경험이 있어서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하고 싶은 거 다 해봐요. 정하지 말고, 부담 가지지 말고요.”
지금도 사람들은 내게 나중에 뭘 할지 궁금하다고 묻는다. 나는 계속 글을 쓰고 싶다. 그런데, 정해두고 싶진 않다. 아마 앞으로도 글을 쓸 것이고, 쓰고 싶지만 직업은 늘 이상하게 흐르니까. 쓸 수 없는 날이 왔을 때, 날 지탱해 줄 무언가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는 여전히 이것저것이다. 앞으로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조금은 문을 열어둬도 괜찮지 않을까.
작가 이수연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다산북스)
* <슬픔은 병일지도 몰라>(반니) 저자
* 독립출판 소설 자화상(단편소설집 RED) 제작 및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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