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는 사양하겠습니다_돈이요? 지금이 좋은데요?
이상한 철칙
나는 삶에 딱 규칙을 정해놓고 살진 않는다. 내 인생에 반드시 해야 할 것도 없고,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없다. ‘흘러가는 데로 삽니다’라는 말이 맞는 인생을 살고 있는데 그래도 나름의 규칙이라고 하기 뭐한, 어쩌면 철칙 같은 것이 하나 있긴 하다.
올 초즈음 새로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사람들과 함께 글을 쓰는 기회도 늘려나갔다. 만날 혼자 쓰다 보니 시야가 좁아지는 것 같아서, 그리고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책 세 권을 내놓고도 몰라서 글쓰기를 배우기로 했다. 글을 함께 쓰니 글과 자신에 관한 얘기를 나눌 기회도 많아졌는데, 같은 팀원 한 분이 내게 물었다.
“수연 씨는 철칙 같은 게 있어요?”
그분은 아마 글쓰기에 관해 물어봤던 것 같은데, 나는 글쓰기가 아닌 내 인생의 철칙 같은 것을 말해버렸다.
“‘통장 잔고는 낮게 유지하자’ 요.”
“그게 뭐가 철칙이에요?”
상상 못 한 대답에 팀원은 내가 글쓰기에 관해 말하지 않은 것을 딴지걸기 전에, 내 인생의 철칙에 먼저 딴지를 걸어버렸다. 실은 글쓰기 철칙 같은 것도 딱히 없고, 바로 생각난 것을 말한 것이어서 철칙이라 하기 뭐하지만, 그래도 ‘철칙’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생각난 대답이 그 말이었으니, ‘통장 잔고를 낮게 유지하기’를 철칙으로 봐도 무관한 상황이었다.
통장 잔고는 낮을수록 좋다
“통장 잔고를 낮게 유지하는 게 어떻게 철칙이 돼요?”
말만 던지고 해석을 안 한 나의 모습에 팀원이 한번 더 물었다. 마치 ‘그런 이상한 대답에 해석조차 하지 않다니’라는 나의 불친절함을 견디지 못해 나온 대답이었을 것이다.
“죽을 때 돈을 가져갈 수도 없는데, 많아서 뭐하나요.
돈은 쓰라고 있는 거죠.
게다가 돈이 많이 남았는데 다 못 쓰고 죽으면 괜히 억울하잖아요.”
여전히 어딘가 불친절하지만, 나는 분명하게 대답했다. 팀원 분도 어쩐지 석연찮지만, 조금은 받아들인 듯 보였다. 미래에 관한 대비나, 노후자금 뭐 이런 생각은 안 하냐고 말하고 싶어 하는 거 같은데, 말하면 너무 뭐라 하는 것 같아서 참는 듯 보였다. 나는 내심 그 말을 하지 않을 정도로 친해지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겼다.
처음부터 통장잔고가 낮진 않았다
처음부터 이런 철칙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나름 열심히 벌어 스무 살에 천만 원도 모아보고(그러나 그 천만 원이 내가 모은 돈 중 가장 큰 액수로 남아버렸다) 틈만 나면 저축을 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우울증이 심해지며 늘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고, 유학 자금을 모두 병원비로 날리며 돈에 관한 생각이 바뀌었다.
‘결국 내가 죽으면 못 쓰는 돈 아닌가?’
죽으면 돈을 못 쓴다. 가는 길에 노잣돈이 필요하다 한들 그게 어디 지폐겠는가. 애초에 돈이라는 것은 쓰라고 있는 것이다. 내가 돈을 써야 누군가는 돈을 벌게 된다. 쓰지 않으면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돈을 쓰는 행위는 나를 위한 일이면서 시장 경제를 위한 일이다!’라는 엄청난 결론을 내렸다. 모두를 위한 일! Peace!!
세계 평화를 위해!
그렇게 나는 나와 세계 평화를 위해 돈을 쓰기로 했다.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특히 돈이 있으면 되는 여행 같은 일을 대부분 했다. 한 번은 프로젝트가 끝나서 계약돼 있던 오백 만원이 통장에 들어온 날로부터 한 달 만에 다 썼다. 유럽을 돌고 미국에 갔다 오니 금방 사라졌다. 돈을 세계적으로 썼으니 말 그대로 세계 시장 경제를 위해 기여한 셈이었다.
돈을 다 쓰고 나니 정말이지 마음이 통장 잔고만큼이나 가벼웠다. 언제 죽어도 아쉽지 않게 돈을 썼다. 처음 천만 원을 모았을 때, 나에게 주는 보상으로 백만 원만 써보자고 생각하고도 쓸 줄 몰라서 통 크게 한 번의 라식 수술로 돈을 썼는데 이제 보니 나는 돈 쓰는 일에 굉장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 재능을 마음껏 쓰고 있고 통장 잔고는 여전히 가볍다.
통장잔고는 못 말려
세상과 나를 위한 일이라고 돈을 쓰는 나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사람도 있다. 바로 가족이다. 남편은 뭐라 하지 않지만, 내가 돈을 다 쓴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내 통장에 돈이 들어오면 다 쓰기 전에 얼른 생활비를 가져간다. 엄마와 아빠는 늘 잔소리다. 그러나 다행히 나는 말대꾸를 잘한다. 대화는 늘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애도 키우도 집도 사려면 돈을 모아야지.”
“애 안 낳을 거고, 집 안 살 건데?”
“그렇게 어떻게 살려고?”
“그러다 죽으면 어쩌려고? 나 아플 때 봤잖아. 사람일은 모르는 거야.”
“살다 보면 갑자기 돈이 필요할 때도 있는 거야.”
“그럴 때는 꼭 돈이 어디서든 생기더라고.”
끝없는 말대꾸에 결국 가족은 고개를 흔들며 내게 말한다.
“으휴, 너를 어떻게 말리겠니.”
작가 이수연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다산북스)
* <슬픔은 병일지도 몰라>(반니) 저자
* 독립출판 소설 <자화상>(단편소설집 RED) 제작 및 저자
Instagram @suyeon_lee0427
Facebook @leesuyeon0427
Youtube @이수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