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는 사양하겠습니다

건물주는 사양하겠습니다_돈이요? 지금이 좋은데요?

by 이수연
보시면 아시겠지만, 꿈입니다


“아휴, 사모님 오셨어요?”


꿈을 꾸었다. 집으로 올라가기 전, 일 층 상가에 있는 마트에 들리니 사장님이 조금 당황한 기색과 함께 친절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나는 인사를 받으며 코카콜라를 샀다. 천이백 원을 현금으로 낸 뒤 잠시 마트 옆 떡집에 들러 떡도 샀다. 누구 하나 까칠하게 대하지 않고 친절하게 인사했다.

집으로 올라가는 길, 보이는 호수마다 누가 사는지 알고 있다. 101호에는 자취하는 젊은 남자가, 102호에는 할머니가 혼자 산다. 201호에는 부부가 사는데 강아지를 한 마리 키워서 계약할 때 동물을 키울 수 있는지 물었다. 그 옆에는 결혼한 지 안 한 지 모르겠는 커플이 하나 산다. 윗 층에는 애가 있는 가족이 사는데 아래층이 층간소음으로 가끔 내게 불평했다. 조금 이해해 달라고 양쪽에 얘기한 기억이 있다. 모든 것을 꿰고 있는 자신에게 감탄하며 생각했다.


‘역시 건물주는 주님이라니까. 모든 것을 알잖아.’


내 집은 건물 가장 위층이었다. 보통 집주인은 가장 윗 층에 사니까, 꿈에서도 집이 가장 위층인가 보다. 꿈인데도 올라가는 길이 어쩐지 힘들다. 건물 지을 돈은 있으면서 엘리베이터 만들 돈은 없었나 보다. 이왕 꿈이면 좀 더 부유하지. 그래도 건물주니까. 그렇게 계단을 올라갔다.

사 층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집이 넓다. 그래, 이게 건물 주지. 그러다 전화가 울린다. 전화를 받았다. 나이가 지긋한 남성이 수화기 너머로 말했다.


“사모님, 이번 역 유치 회의에 오실 거죠?
다 저희 잘 되자고 하는 일이니까 참여해주세요.”


그래, 건물 근처에 역이 생기면 좋지, 꼭 생겨야지 하면서 나무에다 강한 문구를 넣은 현수막을 걸어두는데 돈을 달라고 한다. 나도 역이 생기면 집 값이 펄떡 뛸 테니 알겠다고 했다. 별로 강하게 말하는 것이 내키지는 않는데, 단체에선 그렇게 써야 효과가 있대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건물주가 되니 집값이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이번에는 티브이를 틀었다. 현실에선 가지지 못한 50인치짜리 평면 티브이가 있다. 뉴스에선 부동산이 어떻고, 집 값이 어떻고. 집 사기 힘들다, 건물이 비싸다 말이 많다. 보다 보니 조금 억울해졌다. 세금도 내는데 뭐 그리 빼가려고 하나. 그러다 또 전화가 왔다. 부동산이란다.


“사모님 이번에 이 건물 사야 해요. 기회입니다, 기회.”


돈이 있으니 이런 전화도 오는구나. 그래서 얼마냐고 물어보자 억 억 이다. 그래, 건물주인데, 뭐. 사겠다고 말한 뒤 통장을 보자 엥? 돈이 없다. 알아보니 대부분 은행에 묶여 있다. 은행에선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라고 했다. 꿈치곤 너무 현실적이지 않나 싶다. 알겠다고 말하고 대출을 받으려는데 문득 이거 부동산 사기 아닌가 약간의 의심이 들었다.

그러다 또 전화벨이 울린다. 대체 뭔 전화가 이리 많이 와. 전화를 받는다. 이번에는 남편이다.


“수연아, 큰일이다, 큰일. 이 주변에 사건 났단다.
집값 떨어지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뉴스에 나옴 안되는데.”


집값이 떨어지면 한 번에 다시 억억. 은행에 묶여 쓰지도 못할 돈이면서 괜히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다 억울하기도 전에 다시 전화가 울린다. 벌써 네 번째 전화다.


blogger-336371_1920.jpg 꿈인데, 전화 오는 게 이제 무서워진다. 아직 꿈이 안 깼다. (pixabay)


“저 101호인데요, 다음 달에 나갈게요.”


101호가 이사를 간단다. 방을 내놓으려고 부동산에 전화했더니 다른 건물 얘기를 해준다. 뭐야, 건물이 하나가 아니었어? 부동산은 내놓은 다른 집에 계약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근데 도배, 장판, 전기 등 안 해주면 다른 곳을 알아보겠다고 한다. 건물이 비어있으면 손해니 해준다고 했다.

도배, 장판 다 해준다고 말하자 계약하겠다고 답이 왔다. 부동산에 가서 계약을 하고 다음날, 계약금까지 넣어 놓고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연락 왔다. 아니, 이럴 거면 계약을 좀 신중하게 하던가. 심지어 계약금을 받을 수 있는지 물어봤다. 안된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귀찮다. 다시 사람 구해야 하는 내 입장도 있지 않냐 말하면 알겠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론 욕하는 게 들리는 것 같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지만, 새로 들어온다고 해서 사놓은 싱크대 주문을 취소할 수 없는 상황이다. 주면 나도 손해다, 이 사람아. 말하고 싶은데 말하면 더 쪼잔해지는 것 같다. 그러다 다시 전화가 울린다.


“저 죄송한데... 이번 달까지 봐주면 안 될까요?”


도대체 이 꿈은 건물이 몇 개인 거야. 또 다른 집에서 온 전화였다. 월세를 반년이나 밀려 이번에도 못 내면 나가라고 한 듯하다. 전화를 받으며 보증금과 밀린 월세를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더 이상 넘어가면 손해였다. 하도 사정해서 마음이 약해지지만, 계속 봐줄 수도 없다. 나는 하기 싫은 쓴소리를 했다. 이렇게 불편한 순간이 또 있을까 싶었다.

매일같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집값에 동네에 생길지도 모르는 역 때문에 싸우는 일과 나간다는 101호와 월세가 밀린 몇몇 집과 부동산에서 빗발치는 전화와 사귀지 않을까 하는 의심에 주차문제, 보일러 고장으로 오는 연락들에 머리가 아파왔다. 건물주가 되면 월세랑 은행 이자로 여행이나 다닐 줄 알았는데 여기저기 전화가 빗발치며 걱정 투성이었다. 이게 돈이 있는 삶인가. 이게 뭐야. 그러다 다시 눈을 떴다.


vintage-1314047_1920.jpg 따르르르르르릉!!! 이제 일어나야 한다! (pixabay)


역시 꿈이다. 건물주가 되는 꿈이었다. 일어나서 천장을 보니 코딱지만 한 내 집이 맞다. 전등도 낡아서 벌레가 끼어있는 게 내가 사는 전세방이다. 휴대전화를 봐도 연락 온 곳이 없다. 통장을 보니 잃어버릴 돈도 없다. 문득 마음이 편해졌다. 아, 나는 나중에 돈이 많아도 건물주는 하지 말아야지. 속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저는 마음 편히 살랍니다. 건물주는 사양하겠습니다.





-'건물주는 사양하겠습니다'의 브런치 북 마지막화입니다.

각종 기고 및 제안을 받고 있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 이수연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다산북스)

* <슬픔은 병일지도 몰라>(반니) 저자

* 독립출판 소설 <자화상>(단편소설집 RED) 제작 및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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