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는 사양하겠습니다_돈이요? 지금이 좋은데요?
호.. 호구라고 하면 할 말은 없습니다
물건을 사는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꼼꼼히 알아보고 이것저것 다 비교해본 뒤 사는 타입과 그냥 대충 적당히 사는 타입. 그중에서 나는 정말 확실하게 대충 적당히 사는 타입이다.
대충 적당히인 나는 구매 결정이 굉장히 빠르다. ‘고민은 배송을 늦출 뿐!’이라며 그냥 산다. 검색해서 상단에 뜨는 것을 누르고 옵션은 모두 적당히. 옵션이 너무 많으면 그냥 포기. 비교 안 하고 그냥 구매 쓱. 요즘은 결제가 편해져서 일 분이면 뭐든 살 수 있다.
덕분에 광고에도 쉽게 넘어간다. 무언가 나와 맞는 광고를 딱 띄워주면 별생각 없이 그걸 턱 사버린다. 물론 필요 없는 것이라면 구매하지 않겠지만, 정확한 알고리즘으로 내가 사려던 것을 추천하면 그냥 산다. 과소비라고 하기엔 만원, 이만 원 정도라 소소한 소비 정도라고 보는 것이 적당하다. 반품도 잘하지 않는데 삼 만원 이상이라면 귀찮음을 무릅쓰고 반품하기도 한다.
대충 적당히 덕에 사기도 맞아봤다. 약 이만 오천 원 정도의 스마트폰용 프린터기였는데 구매하고 언젠가 오겠지, 한 달을 그냥 지나쳤다. 남편이 언제 오는 거냐고 물어도 ‘보내주겠지’하며 미루다 석 달이 지났다. 남편은 거기가 어디냐며 끈질기게 물어서 구매처를 찾아보니 사이트도 문을 닫고 전화번호도 없는 번호로 이미 튄 뒤였다. 덕분에 남편의 잔소리 좀 들었다. 그렇게 대충 적당히니 사기도 맞는 것이라고.
그 외에도 옷은 입어보고 사라, 신발은 신어보고 사라, 화장품은 써보고 사라, 가구는 재보고 사라 등등 다양한 잔소리를 듣는다. 남편의 말에 따르면 실패율이 확실히 줄지만, 나도 나름의 실패들로 실패하지 않는 규칙은 있다. 나는 키가 작으니까 외투를 살 때엔 총장이 80센티 아래인 것으로 사기. 구김이 잘 가지 않는 원단으로 사기. 리뷰 많은 것 사기(그런데 막상 리뷰는 잘 안 본다) 등등. 물론, 실패율을 줄인다고 했지 실패하지 않는다곤 안 했다.
이제부터 변명 같지만, 진심입니다
이렇게 단점을 줄줄 얘기하고 뒤에 이런 말을 하면 변명 같긴 한데, 사실 내가 이런 구매방식을 택하는 것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바로 무언가 알아보지 않고 실패하는 금액보다 그 알아보는데 쓰이는 내 마음 중 마음을 택한 것이라고.
평소 자잘한 일에 신경을 많이 쓰는 나의 마음은 늘 피곤하다. 건강한 고양이가 아플까 봐 걱정하기도 하고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것에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일일이 생각한다. 글은 또 어떻게 쓸지 매일 고민하고 평소 습관처럼 삶이나 죽음, 감정이 무엇인지 사색에 잠긴다. 오죽하면 추천받은 책 이름이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라는 책일까.
그런 나는 지치지 않기 위해 마음 아끼기를 한다. 걱정이 끊임없이 들면 뚝 끊어버리고, 다른 사람 일에 별다른 관심도, 신경도 안 쓰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대충 적당히 물건 사기. 알아보면 돈도 조금이나마 아낄 수 있을 몰라도 물건 하나를 사기 위해 드는 나의 온 신경과 생각과 마음을 그렇게 아끼는 것이다.
당신은 설득되고 있다
생각해보면, 물건 하나를 사기 위해 알아보는 시간은 꽤 길다. 한 시간에서 며칠, 몇 달을 알아보기도 한다. 미리 샀으면 고민한 시간 동안 그 물건을 쓸 수 있을 텐데! 물건 알아보는 시간과 노력을 아낄 텐데! 보통 비슷한 것을 가격비교를 해봐도 많이 차이나 봤자 만 원정도. 그렇다면 나는 만 원을 쓰고 내 시간과 노력을 사겠다!
앞서 맞은 사기를 신고하지 않은 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물론 신고 정신이 투철하면 좋지만, 신고를 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과정이 내겐 너무 스트레스였다. 신고를 알아보고 내용을 진술하는 등 신경 쓰일 구석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상대는 이미 다 들고 도망갔는데. 그래서 나는 스마트폰 프린트 값인 이만 오천 원을 내고 그곳에 쓸 마음을 사기로 한 것이다. 물론 남편은 옆에서 절대 그러지 말라며 잔소리를 했다. 그러면 계속 사기 친다고. 그 말도 맞아서 다음부턴 사기 맞음 남편에게 신고할 생각이다.
반품을 잘하지 않는 이유도 비슷하다. 온라인 쇼핑몰 물건은 직접 볼 수 없으니 반품하는 경우가 많은데 반품을 하기 위해 다시 포장하고 운송장 입력하고 쇼핑몰과 전화하는 일이 생각보다 일이다. 여기서 나는 계산에 들어간다. 반품에 쓰일 신경이냐 금액이냐. 지금 생각해보면 대충 만 원, 이만 원이면 반품하지 않는 듯하다. 그러니까 물건을 사는 것에 쓰는 내 마음은 만 원, 이만 원어치인 것이다.
그 외에 좋은 점을 찾자면 대충 샀는데 물건이 좋을 때, 생각 이상으로 기분이 좋다. 기대 없이 구매하니 내 돈 주고도 선물 받은 느낌이다. 가끔 나와 맞지 않는 것이라면 주변에 선물할 수도 있다. 마음까지 넓어 보이는 꽤 괜찮은 장점인 것이다.
그래서 저는 돈보다 마음입니다
이쯤 되면 실은 묻고 싶은 것이 생길 것이다. ‘아니, 그냥 귀찮은 거 아니야??’ 차마 아니라곤 못하겠다. 귀찮기도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잘 알고 더 마음 써야 하는 일을 구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물건 알아보느라 문장 하나 못 쓸 바엔 최저가는 아니더라도 그냥 그런 거 산 뒤 문장 하나 더 쓰겠다. 반드시 시간뿐 아니더라도 조금 더 신경 쓴 문장 하나를 위해 다른 신경을 포기하는 것이다.
월급 하나 없는 프리랜서 작가면서 최저가를 찾지 않는 것은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돈으로 사본 적도, 그럴 생각도, 그리고 돈도 없다. 그러나 나의 편안한 마음을 위해 만 원 정도는 쓸 수 있잖아! 나는 돈보다 마음이다!
작가 이수연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다산북스)
* <슬픔은 병일지도 몰라>(반니) 저자
* 독립출판 소설 <자화상>(단편소설집 RED) 제작 및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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