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는 사양하겠습니다_돈이요? 지금이 좋은데요?
그저 그렇게 삽니다
지금 남편과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서울의 열넷 평 정도의 전셋집이다. 전세라고 해도 대출이 대부분이고 우리 돈은 별로 없다. 평수를 봐도 알겠지만, 아파트는 커녕 작은 빌라다. 서울 중에 비싸지 않은 곳이 있겠냐만은 그렇다고 엄청 비싼 동네도 아니다. 그저 그런 동네에 그저 그런 집인 것이다.
그런데 또 있을 건 다 있는 집이다. 작은 거실에 있는 캣타워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떡하니 지키고 있다. 큰 방에는 침대와 책상이 놓여 인간의 공간으로 쓰이고 있고 항상 문이 닫혀있는 작은방은 옷방 겸 짐을 보관하고 있다. 옥상도 열려있어서 화단을 놓고 소소하게 무언가 자꾸 키우고 있고 가끔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이웃 주민과 인사도 할 수 있다.
나는 이 집에서 만족하며 살고 있다. 사람들은 집을 사야 하지 않겠냐며 더 열심히 돈을 모으라고 하지만 딱히 그럴 생각도 없다. 내가 그 뭐 몇 푼이나 번다고 그거 모아서 집을 살 수도 없을 것 같다. 내가 그렇게 말하면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싶지 않냐며, 그런 작은 집에서 애는 어떻게 키울 거냐고 또 묻는다. 그러면 나는 아이에 관한 생각이 없고 만에 하나에 하나라도 아이를 키우게 되면 그때 가서 생각하겠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당당하게 말한다.
“지금도 충분히 만족스러워요.”
집의 역사
내가 소박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게 사실이라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도 물론 있다. 이름하여 나의 집의 역사이다.
처음 어릴 적 살던 집은 지금보다 작은 월세방이었다. 열 평만 한 집에 나와 엄마, 오빠 셋이서 옹기종기 살았다. 방은 딱 두 개라 성별이 같은 엄마와 내가 같은 방을 쓰고 삼각형의 이상한 구조를 가진 방은 오빠 방이었다. 그런데 묘하게 편한 구석이 있어 나도 주로 오빠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엄마가 집에 계시지 않은 날이 많으니 대부분 오빠와 둘이 시간을 보냈지만, 집안이 어려웠던지라 월세를 제때 내지 못해 늘 독촉 전화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는 절대 월세를 밀리지 않으리라.
조금 더 크고 열일곱에는 두세 평만 한 창문이 있을 수도 없는 지하방에서 살았다. 음악 작업실로 나온 곳은 말이 좋아 작업실이지 시끄러울 수 있는 고시원이었다. 공용 샤워실과 공용 화장실, 공용 세탁기가 놓여 있고 전자레인지도 공용이었다. 작은 공간에는 책상 하나와 컴퓨터, 일인용 매트가 다였다. 그 공간에서 사 년을 살았으니, 나도 어지간히 독한 사람이었다.
내가 처음 남편을 만나 함께 살 때는 반지하 단칸방에서 시작했다. 그래도 사 년 만에 지하에서 반지하로 반 층 올라간 뒤 남편을 만났다.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한 남편은 혼자 살던 집이 있었지만, 계약기간이 끝나간다며 결혼이란 이유로 내 집에 얹혀살았다. 그리고 우리는 이사를 하지 않고 그 단칸방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반지하의 삶은 다이내믹했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고. 겨울에 외풍이 어찌나 불던지 온 창문을 다 비닐로 막아버렸는데 외풍에 비닐이 볼록해져 있었다. 특히 화장실이 집 내부가 아닌 밖으로 나 있는 구조였는데 씻을 때는 겨울바람과 함께였다. 밖에서 씻는 색다른 경험이 필요하다면 딱인 집이었다. 그 집에선 침대도 기본으로 있던 옵션 중 하나였는데, 사이즈는 싱글이었다. 나름 신혼이니 둘이 꼭 껴안고 잠이 들면 나의 잠버릇에 남편은 종종 침대에서 떨어졌다. 그럴 때면 남편이 내게 늘 하는 말이 있었다.
“쪼그만 게 침대는 참 크게 쓴단 말이야?”
“원래, 내가 마음이 좀 넓잖아. 그래서 침대도 그렇게 쓰는 거야.”
그렇게 남편이 몇 번 굴러 떨어지고 결혼 일 년 즈음 지났을 때, 우리는 이사했다. 결혼식을 올리고 축의금으로 보증금을 마련했다. 드디어 지상으로! 우리는 그 사실에 매우 신나 했다.
지상의 삶이여!
월세였지만 지상의 힘은 엄청났다. 비가 와도 잠길 걱정 없고 무엇보다 화장실이 집 안에 있었다. 겨울에도 춥지 않고 씻을 수 있다니,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 게다가 방도 두 개! 이맘때 즈음 침대도 퀸 사이즈로 새로 샀다. 여전히 나는 침대를 넓게 쓰지만 이제 남편이 떨어질 확률은 줄어든 것이다.
이사를 하며 반지하의 옵션이던 가구를 쓸 수 없어 필요한 것만 구입하고 그 외 가구 대부분은 쓰던 것들을 고스란히 가져왔다. 옷장 대신 행거, 책상 모두 그대로였다. 결혼했으니 새 가구, 새 집이라는 마음도 없었다. 딱 필요한 것만 사자. 서로 마음이 맞았다. 왜냐하면 둘 다 그럴 돈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이사를 가고 나니 이미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그맘때 즈음 고양이 두 마리를 입양했다.
다시 그로부터 이 년이 지나 신혼부부 전제자금 대출을 받게 되었다. 내 인생에 꿈도 꿔보지 않은 전세를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인생의 첫 전세를 겪기 위해 내가 오래 살아왔던 동네를 떠나야만 했지만, 월세를 내지 않는 기분이란 무엇일까 궁금했다. 그렇게 남편과 집을 알아보고 이사 온 곳이 지금 집, 열넷 평 전세였다.
결혼 뒤, 두 번째 이삿날에도 여전히 오래 함께 해온 가구를 고스란히 가져왔다. 이전 집에서도 나름 만족하고 살았는데 이사를 하며 식탁을 거실에 딱 두었을 때, 식탁이 코딱지만 했다. 이전 집은 거실이라고 하기 뭐할 정도의 공간이었는데 이사 온 집은 거실이 따로 빠져있어 원래 쓰던 식탁이 작았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나와 남편은 식탁을 새로 샀다. 나름 만족했던 이전 집이 사실 작은 집이었다는 것을 이삿날 알게 되었고, 약간이라도 더 생긴 거실에 묘한 성취감마저 들었다.
지금에 만족하며 산다
이런 경험들로 나는 충분히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과거가 돌아가기도 싫은 끔찍한 고생이라고 생각하며 살진 않았다. 집이 너무 추울 때엔 에베레스트에 위치한 게르에 머무르는 등산객 놀이를 하며 버텼고 자동차 엔진 소리에 울리는 집 안에서 춤추기도 했다. 나는 반지하에 살 때도 월세를 밀리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히 만족하며 살았다. 그리고 그다음 집도, 지금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더 좋은 집으로 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이미 나는 가진 것에 만족하고 웃으며 받아들이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할 마음이 맞는 사람이 있는데 무엇이 두려울까. 모든 것은 지금, 충분히 있다.
작가 이수연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다산북스)
* <슬픔은 병일지도 몰라>(반니) 저자
* 독립출판 소설 <자화상>(단편소설집 RED) 제작 및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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