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의 불빛 아래서 처음 울었다”

“마음이 머물 곳 하나 없어 도착한 그곳에서”

by 달고나

집을 나오기 전,


두세 달 동안 오랜 상담을 거쳐 나는 청소년쉼터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 쉼터 선생님께서는 “입소 인원은 정해져 있지만, 민정이가 오면 어떻게든 받아줄게”라고 말씀해주셨다.


그 말 한마디가 나에게는 얼마나 컸는지 모른다.


나를 받아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내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안도감이 처음으로 내 마음을 조금 덜어주었다.


큰언니는 어린 나이에 두 동생을 책임지는 어려운 결정을 했지만,


그 선택만으로 세 자매의 삶이 나아질 수는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피해자였다.


어머니는 부양의 의무를 저버리고 집을 나가셨고, 아버지가 떠난 집에서 언니는 보호자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나와 둘째 언니는 정서적, 경제적으로 깊은 결핍 속에서 살아야 했다.


나는 살기 위해 쉼터로 향했지만, 그건 동시에 언니에게는 너무 큰 상처였다.


내가 언니를 떠났다는 사실이, 어쩌면 언니를 배신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쉼터에 도착한 후에도 매일 언니 생각에 울었다.


그 눈물이 몇 날 며칠을 멈추지 않자 선생님들도 힘들어하셨다.


입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했고, 우울증 약을 처방받았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사실 나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무너져가고 있었다.


집에 있던 1년 넘는 시간 동안, 학교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나는 매일같이 울었다.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집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은 숨이 막힐 만큼 절망적이었다.


큰언니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 못하고 혹처럼 짐이 된 나 자신도 모두 버거웠다.


그런 마음을 안고 들어간 쉼터였지만, 그곳에서의 삶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내 안에 억눌려 있던 억울함과 분노는 그곳의 말도 안 되는 규칙들과 부딪히며 더 커져갔다.


그로 인해 선생님은 나의 입소를 후회하셨고, 어느 날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처음엔 그냥 착한 아이인 줄 알았는데… 넌 악마야.” 그 말은 내 마음을 찢었다.


내가 말한 것들은 불합리함에 대한 정당한 반응이었다고 믿었는데,


그게 단지 ‘관리하기 힘든 아이’라는 낙인이 되어 돌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이 정말 그렇게 나쁜 아인가, 그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쉼터에서도 나는 이방인이었다.


왕따를 당했고, 내 물건과 옷, 돈은 자주 사라졌으며 괴롭힘도 잦았다.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함께 지내는 친구들은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마치 ‘이중생활’을 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낮엔 교복을 입고 교실에 앉아 있었고, 밤이 되면 전혀 다른 세상에 돌아와야 했다.

자유가 주어졌지만, 나는 그 자유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몰랐다.


공부만 하던 아이가 갑자기 모든 걸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환경에서 방황이 시작됐다.


아마 내 사춘기는 그때 처음 시작된 것 같다.


그래도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진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


지방의 4년제 보건계열 대학교, 작업치료학과, 물리치료학과 등에 합격하여 대학에 갈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간호학과만 고집했다.


그런데 내 곁엔 진심으로 조언해주거나 가능성을 지지해주는 어른이 없었다.


그때 쉼터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민정아, 너 형편에 무슨 대학이야. 지방에 있는 학교 가서 생활비랑 등록금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 차라리 간호학원 다녀서 간호조무사 자격증 따는 게 낫겠다.


선생님이 학원비 절반은 대줄게.”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대학 진학을 포기했고, 그 후 20대 내내 흔들리고, 부서지고, 길을 잃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선택은 단순히 '진로'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의 가능성이 꺾인 순간이었다.


쉼터는 내가 살기 위해 간 곳이었지만 내가 꿈꿨던 ‘쉼’은 좀처럼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나의 상처와 분노를 마주했고 그게 나를 조금씩 변화시켰다.


그건 도망이 아니었다. 버림도 아니었다.


살기 위한, 단 하나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지금의 나를 만들기 시작한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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