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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지 Apr 10. 2023

갭 이어를 응원해

세상이 원하는 대로 말고, 내가 원하는 대로.

작년 9월 팀원 중 한 명이 해외 취업 기회가 생겨 퇴사했다. 언젠가 외국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팀원의 꿈을 응원했고, 그동안 작당모의에서 동고동락하면서 그 사람의 삶도 응원하던 터라 잘 됐다고 생각하고 보내줬다.


그런데 설날을 맞아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자기는 취업을 하지 않았고, 콜롬비아에서 7개월째 여행 중이라고. 충격적이었다. 이전에는 여행을 해보지 않았던 사람이라서 이 극단적 변화가 의외이기도 하고, 안부가 궁금하던 차에 명절을 맞아 연락을 준 것이 고맙기도 했다. 4월에 한국에 들어오면 놀러 가도 되냐는 말에 오라고 했는데, 저번 주에 비자 때문에 한국에 2주간 들어온다고 작당모의 사무실에 놀러 왔다.


오랜만에 본 그녀의 얼굴은 생기로 가득했다. 원래도 밝고 에너지 넘치는 타입이긴 했지만, 이번엔 막 돋아난 새순처럼 파릇파릇했다. 행복해 보였다. 자기의 삶에 만족도가 흘러넘쳐 보는 사람마저 기분 좋게 했다. 취업 전에 잠깐 시작한 여행이 길어져 7개월째 여행 중이고,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으로 여행을 하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지났다고. 또 그중에서도 콜롬비아가 가장 맘에 들어 콜롬비아에서 어학원을 다니며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콜롬비아에서 유명한 콜롬비아 커피와 군것질 거리를 잔뜩 사 왔다. 퇴사 직전까지 극강의 다이어트를 하고 있던 그녀의 모습과는 완전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그녀가 떠나기 전에는 갓 30대가 돼서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었고,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도 해외 취업을 반대했어서 이별 후에 출국을 했다. 그런 과정들을 응원하지만 본인도 불확실함에 대해 불안해 보이는 부분도 있었는데 7개월 만에 다시 본 그녀의 표정은 그간 걱정을 무색하게 할 만큼 생기로워졌다.


사람들의 기준에서 벗어나 자기의 기준을 찾아가고 있는 듯 보였다. 사람이 확실히 단단해져 돌아온 것 같았다. 나중의 나중을 위해 미래를 대비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절대 풍길 수 없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나타났다. 앞으로도 그녀는 그 시선에서 자유로워져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갈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녀를 지켜보면서 며칠 전에 읽은 아니 에르노 저의 '부끄러움'이라는 책에서 내용이 떠올랐다. 거기엔 나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회에선 나이에 따라 기대하는 바가 있고, 그 기대하는 바가 생각보다 정말 디테일해서 그쯤 되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게 되고 모든 것이 완성된다는 말은 세상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다 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삶이 완성된다는 말이다. 정해진 수순대로 정해진 삶을 겨우겨우 쫓아가면 내가 뭘 좋아하는지 생각할 틈도 없이, 다음 퀘스트가 기다리고 있다.


재수를 하면서 1년이 늦었다는 것에서 엄청 불안했었을 때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멀리서 바라보면 정말 인생의 작은 일부다. 물론 열심히 살았던 경험은 중요하고,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만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알게 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원래도 언어를 좋아하던 친구였으니 스페인어를 배우고, 남는 시간에 자기가 좋아하면서 보내는 시간들을 살아본 지금 이 시간이 나이가 많이 들어서도 의사결정을 할 때 중요한 경험이 될 것이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에서 느린 거북 카시오페이아를 따라가는 모모는 회색 신사에게 잡히지 않고 갈 수 있었던 것처럼 지금 당장 몇 년 빠르다고 느리다고 꼭 그런 건 아니라는 생각이 또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갭 이어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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