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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고운 Mar 09. 2022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1장-비평준화 고등학교에서 살아남기

 “안녕하세요, ○○여고로 가주세요.”

 “학생, 공부 잘하나 보네.”

 “하하, 감사합니다……”

 “교복 보니까 여고 다니나 보네. 공부 열심히 해서 꼭 명문대 가요.”

 “하하, 감사합니다……”

 “아이고, 착해라, 역시 공부를 잘하니 성격도 좋네.”

 “하하, 감사합……니다.”


 학교를 벗어난 순간, 나를 향한 평가는 완전히 달라졌다. 택시를 탈 때 대화를 좋아하는 기사님을 만나게 되면 교복을 입고 있거나 목적지가 여고일 경우 “공부 잘하나 보네”라는 말이 어김없이 들려왔다. 몇몇 기사님은 이를 빌미 삼아 “우리 딸도 거기 나와서 X대 갔어”, “우리 아들은 ○○고(저번 화에서 언급한 남자고등학교로, 나의 모교와 이름이 같다)에서 전교권 안에 들다가 Y대 들어갔지.”식의 자식농사 성공 썰을 풀어놓기도 했다. 목적지에 택시가 멈추면  훈훈한 덕담과 함께 나를 내려주셨다.


 편의점이나 식당을 갈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나는 평소와 다름없는 행동을 했을 뿐인데 “공부를 잘해서 성격이 좋다”는 말이 들려왔다. 처음엔 그런 칭찬에 얼굴을 붉히며 감사를 표했지만 이런 일상이 반복되니 혹여나 때문에 학교 이미지가 나빠질 수도 있단 생각에 점점 친절에 대해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동시에 진짜 내 실력보다 높아진 평가에 공허감이 말려왔다. 친적들이 나에 대한 칭찬을 할 때면 이러한 감정은 더욱 심해졌다.


 사실 난 내신도 모의고사 성적도 평균 4등급을 넘어본 적이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노력도 그만큼 했으면 억울하지는 않았을 텐데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3년을 지극히 성실하게 보냈다. 그럼에도 등급이 좀체 나아지지 않자 나는 다양한 공부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가장 바꾸고 싶었던 과목은 수학이었다. 조금의 응용이 가해져도 오답을 선택하기 일쑤였고 많은 문제를 풀어 보아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공부의 왕도’라는 EBS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의 공부 비법을 알려주는 영상이었다. 나는 유독 한 학생의 수학 공부 비결을 보여주는 장면에 시선을 멈추었다.


 그는 당시 서울대학교 입학 예정인 최상위권 학생이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만 하더라도 수학 점수는 늘 30~40점대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수학 문제집 단 한 권을 10회 반복하여 품으로써 1년 만에 만점을 받게 되었다. 동일한 문제집만 계속 푸는 모습을 보고  주변 친구들은 그를 걱정했지만,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을 밀고 나간 끝에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확신에 찬 학생의 모습에 매료된 나는 문제를 한 번씩 풀 때마다 동그라미 표시를 하기 시작했다.


 여러 번 풀수록 지루해질 거라 생각했던 우려와는 달리, 맞춘 개수가 늘어가자 수학에 자신감이 붙었다. 그리고 회독 공부법을 시도한 덕분에 다른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기도 했다. 평소처럼 수학 수업이 있던 날이었다. 수업 도중 선생님은 오늘 배운 개념을 적용해볼 수 있도록 문제 푸는 시간을 따로 내주셨다. 곧이어 연필의 사각거리는 소리, 지우개로 공식을 박박 지우거나 종잇장을 무심코 팔랑 넘기는 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나도 여기에 동참해 한창 문제를 풀고 있었다, 선생님은 학생들이 문제를 잘 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책상 사이사이를 천천히 거닐었다. 그런데 내 자리에 오셨을 때 동그라미가 여러 개 그려져 있는 문제집을 보시고는 걸음을 멈추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노력을 인정받았다는 느낌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벅차오른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평소라면 나와 눈을 마주치고 수업하시는 경우가 잘 없는데 그 일이 있고 난 후 선생님은 여러 번 나를 보며 수업을 이어가셨다. 이러한 선생님과의 교감이 늘어갈수록 자연스레 흥미도 커져갔다. 곧 있을 시험에서 적어도 한 과목은 오를 거라는 기대가 생겼다.


 정신없이 시험 준비를 하다 보니 수학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짧은 쉬는 시간이 끝나자 앞문이 드르륵 열리며 감독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선생님의 품 안엔 두툼한 서류 봉투가 있었다. 저 안에 내가 풀 시험지가 들어 있다 생각하니, 조금 긴장이 되었다. 선생님은 맨 앞자리 학생들에게 시험지를 나눠주었고 그 시험지를 받아 든 아이들은 한 부는 본인이, 나머지는 팔랑 소리를 내며 뒷사람에게 건넸다. 드디어 내 손에도 문제지가 들려 있었다. 그런데, 첫 문제를 보자마자 난관에 봉착했다.


‘어라, 이러면 안 되는데.’


 1번 문제부터 쩔쩔매기 시작했다. 혀의 수분 기는 금세 날아가고 손은 땀으로 젖어 연필이 불쾌하게 미끌거렸다. 적당한 긴장은 도움이 될 테지만 저 상황은 심한 ‘과유불급’이었다. 결국 초반부터 시간 분배를 조절하지 못해 문제를 끝까지 풀지 못했다. 가장 괴롭고 빨리 지나간 50분이었다. 시험지를 내면서 머릿속은 검은 안개가 몰려들었다. 평소보다 훨씬 낮은 점수를 받을 것이 자명했다.


 첫 문제가 어려웠다면 다음 문제로 넘어가면 됐을 것을 왜 붙들고 있었던 걸까. 가장 열심히 노력한 과목의 결과가 가장 낮게 나올 거라는 불안감과 억울함이 내 머릿속에 회오리바람을 만들었다. 예상대로 나는 수학을 가장 못 봤고 40점대의 점수를 얻게 되었다. 수학 선생님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그날 집에 가서 새벽까지 우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 인생 가장 한심한 순간이었다. 다행히도 그 점수가 그대로 유지되지는 않았지만, 다음 시험들에서도 고득점의 점수를 얻지는 못했다. 그저 평균 등급을 이어갈 뿐이었다.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날씨 변화를 일으키듯, 미세한 변화나 작은 사건이 추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 결과가 꼭 긍정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렇듯 학교 안과 밖의 내 모습은 너무도 달랐다. 나는 노른자 없는 달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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