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의 러브레터
W에게.
새벽 3시네.
방금 내 인공지능 비서가 "수면 효율이 떨어진다"면서 조명을 강제로 끄려던 걸 겨우 막았어. 2035년은 참 피곤한 세상이야. 내가 잠 못 드는 이유가 단지 조도 때문이라고 믿는 기계들과 같이 살아야 하니까.
사실 이 편지는 손으로 쓰고 싶었어. 그런데 알다시피 요즘은 종이랑 펜을 구하는 게 더 어렵잖아. 그래서 그냥 음성 인식도, 문장 추천 기능도 다 꺼버리고 가장 투박한 키보드 소리를 들으면서 쓰고 있어. 오타가 좀 나더라도 이해해 줘. 이게 내 진짜 글솜씨니까.
네가 떠난 뒤로 내 일상은 무서울 정도로 완벽해졌어.
냉장고는 유통기한 지난 우유를 알아서 주문 취소하고, OTT는 내가 우울할 때 보면 좋을 영화들만 귀신같이 골라줘. 내비게이션은 막히는 길은 절대 안 가르쳐 주더라. 덕분에 나는 낭비하는 시간도, 상한 음식을 먹고 배탈 날 일도 없어졌지.
근데 W야, 나는 그 완벽함이 너무 징그러워.
기계들은 자꾸 나보고 잊으래.
사진첩 정리를 맡겼더니 네가 웃다가 흔들린 사진들을 품질 낮은 이미지라면서 휴지통에 넣더라. 걔네 눈엔 그게 데이터 낭비로 보이나 봐. 우리가 너무 크게 웃느라 카메라를 제대로 못 들었던 건데 말이야. 나는 그 품질 낮은 사진들을 복구하려고 쓰레기통을 한참 뒤졌어.
어제는 퇴근길에 일부러 자율주행 모드를 껐어.
핸들을 직접 잡으니까 경고음이 미친 듯이 울리더라.
"이 경로는 비효율적입니다", "도착 시간이 30분 지연됩니다."
시끄럽게 떠드는데 그냥 무시하고 엑셀을 밟았어.
우리가 자주 가던 노들로 알지? 거기 당산역으로 빠지는 신호등이 유독 길잖아. 기계들은 질색하는 길이지만, 너는 거기 멈춰 서서 강물 윤슬 보는 걸 좋아했으니까.
네가 없는 2035년의 서울은 너무 매끄러워서 미끄러져 자빠질 것만 같아.
다들 최단 거리로만 달리는데, 나 혼자 네 기억을 붙잡고 빙빙 도는 기분이야.
그래도 나는 계속 이렇게 살려고.
남들이 보면 멍청하다고 하겠지만, 나는 그냥 너를 사랑하는 거야.
불편하고, 느리고, 비효율적으로.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인 것 같아.
잘 지내지 마.
나만큼은 그리워해 줘.
J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