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단편 - 카인의 후예

카인의 후예

by ToB

'승인' 버튼을 누른다.


화면 속의 텍스트가 물결치듯 재배열된다. 날카로운 모서리를 가진 단어들이 둥글게 마모된다. "진흙 구덩이에서 뒹구는 듯한 비참함"이라는 문장은 "다소 난처한 상황"으로 대체된다. 문장의 호흡이 짧아지고, 쉼표가 사라지고, 접속사가 늘어난다.


붉은색 경고등이 꺼지고 녹색 '적합' 판정이 뜬다.


일종의 도축이다. 나는 텍스트의 뼈와 살을 발라내고, 소비하기 좋은 부위만 남겨 진열대에 올리는 정육점 직원이다.


견갑골 안쪽이 욱신거린다.


담당 의사는 거북목 증후군의 일종이라고 했다. 자세를 교정하면 나아질 것이라고, 현대인의 80%가 겪는 흔한 통증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것은 환상통이다.


잘려 나간 날개의 절단면이 비가 오면 쑤시듯, 알고리즘의 비위를 맞출 때마다 등 뒤의 흉터가 가렵다.


사람들은 최초의 살인자 이야기는 기억하지만, 그 사건의 발단이 무엇이었는지는 잊었다.


문제는 제물이었다.


동생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바쳤다. 부드럽고, 고소하며, 삼키기 쉬운 것.


형 카인은 땅을 갈아 얻은 '곡식'을 바쳤다. 거칠고, 딱딱하며, 씹어야만 맛을 알 수 있는 것.


신은 아벨의 제물만 받았다.


이 세계가 '기름진 것'을 숭배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 모니터 옆에는 [금지어 사전]이 포스트잇으로 붙어 있다. 회사의 가이드라인이자, 현대의 신(알고리즘)이 싫어하는 곡식들의 목록이다.


죽음, 부패, 절망, 피로, 고독, 침묵, 사유.


이 단어들은 데이터 처리 효율을 떨어뜨린다. 독자의 체류 시간을 감소시키고, 광고 전환율을 낮춘다.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고민하거나 멈칫하는 순간을 '비효율'로 인식한다.


그래서 우리는 농사를 짓지 않는다.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땅을 파는 행위는 비효율적이다.


우리는 대신 합성 지방을 생산한다.


클릭 한 번이면 뇌까지 미끄러져 들어가는 매끄러운 문장들. 씹을 필요도 없이 소화되는 정보의 덩어리들. 나는 아벨의 후예가 된 척 연기하며, 매일 아침 기름진 텍스트를 제단에 올린다.


커서가 깜빡인다. 방금 나는 실수로 "그는 고독했다"라고 적었다.


시스템이 즉시 반응한다. 화면 전체가 붉게 점멸한다.


[Warning] 부정적 어휘 감지. 사용자 이탈률 예측: 42% 증가.
[Suggestion] "그는 혼자만의 여유를 즐겼다"로 수정하시겠습니까?


백스페이스를 누른다. '고독'이라는 단어가 픽셀 단위로 분해되어 사라진다.


등 뒤의 가려움이 척추를 타고 내려온다. 효자손으로 긁을 수 없는 곳이다. 피부가 아니라, 내 영혼의 기형적인 돌연변이니까.


점심시간, 휴게실의 공기는 멸균실처럼 차갑다. 사람들은 각자의 단말기를 보며 영양 젤을 섭취한다. 아무도 대화하지 않는다. 모든 소통은 서버를 경유한다.


몰래 개인 단말기를 켠다. 보안 프로토콜을 우회하여 고고학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한다.


[Search Query: User_8921]
• 검색어: "퇴화기관의 용도"
• 검색어: "초기 인류의 비효율적 예술 활동"
• 검색어: "새는 날기 위해 뼈 속을 비운다"


검색 결과가 로딩된다.


옛 문헌에 따르면, 새들의 뼈는 비어 있다고 한다. 날기 위해서는 몸을 가볍게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중력을 거스르기 위해 자신의 뼈 속을 골수 대신 공기로 채웠다.

하지만 우리는 반대로 진화했다.


우리는 날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신 안전하게 땅에 붙어 있기를 택했다. 그래서 우리는 뼈 속을 빽빽한 데이터로 채웠다.


타인의 취향, 검색 순위, 베스트셀러의 목차, 성공의 법칙.


우리는 너무 무거워졌다.


화면에 뜬 텍스트가 흐릿하다.


[Info] 해당 데이터는 '효용성 낮음'으로 분류되어 보존 기한이 만료되었습니다. 요약본을 보시겠습니까?


나는 단말기를 끈다.


요약본. 모든 것이 요약된다.


톨스토이의 고뇌도 세 줄로 요약되고, 반 고흐의 광기도 필터 보정 앱으로 요약된다. 우리는 뼈를 깎아내는 고통 대신, 뼈에 살을 찌우는 비만을 택했다.




새벽 4시.


통계적으로 서버의 트래픽이 가장 낮은 시간대. 감시의 눈동자가 잠시 흐릿해지는 시간.


작업실의 문을 잠근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도시의 네온사인이 책상 위로 붉은 띠를 그린다.


나는 책상 아래로 기어 들어가 본체 뒷면을 더듬는다. 먼지 쌓인 포트들 사이에서 랜선 케이블을 찾는다.


플라스틱 탭을 누르고, 당긴다.


딸깍.


그 작은 소리가 천둥처럼 방 안을 울린다.


모니터 오른쪽 하단에 '연결 끊김' 아이콘이 뜬다. 회색 엑스(X) 표시.


현대 사회에서 사망 선고와 다름없다. 클라우드 동기화가 중지된다. 실시간 맞춤법 검사가 멈춘다.


손가락을 키보드 위에 올린다.


손끝이 떨린다. 알코올 중독자의 금단 증상과 비슷하다. 항상 방향을 이끌어주던 자동 완성의 가이드라인이 사라지자, 하얀 화면이 거대한 설원처럼 나를 압도한다. 어디로 가야 할지, 첫 발자국을 어디에 찍어야 할지 알 수 없다.


어깨뼈 뒤쪽에서 묵직한 통증이 느껴진다.


무언가 딱딱한 것이 피부를 뚫고 나오려는 감각. 날개가 아니다. 뼈다.


날지 못해 기형적으로 뒤틀려버린, 퇴화한 뼈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다.


나는 쓴다.


아니, 토해낸다.


문법 검사기가 작동하지 않는다. 빨간 줄이 그어지지 않는다.


오타가 그대로 남는다. 주어와 서술어가 호응하지 않는다. 논리적 인과관계가 깨진 문장들이 화면을 채운다.


통계적으로 누구도 읽지 않을 문장. 데이터로서의 가치가 '0'에 수렴하는 산업 폐기물.


하지만 모니터에서 흙냄새가 난다.


거칠고, 비릿하고, 축축한 냄새.


아벨의 기름진 고기가 아니다. 이것은 내가 땀 흘려 갈아낸, 맛없고 딱딱한 곡식이다.


입안에 침이 고인다.


오랜 기간 유동식만 섭취한 환자가 거친 밥알을 씹었을 때처럼, 턱관절이 뻐근하다. 나는 문장 하나하나를 으드득 소리가 나도록 씹어 삼킨다.


소화되지 않는 감정들이 위장을 긁는다. 아프다.


그러나 이 통증만이 내가 살아있다는 유일한 증거다.


화면 위로 내 얼굴이 희미하게 비친다.


이마에 찍힌 표식은 없다. 전설 속 카인은 신에게 '누구도 그를 해치지 못하게 하는 표식'을 받았다고 했다. 그것은 보호였을까, 아니면 영원한 추방이었을까.


남들과 섞일 수 없기에, 그는 자신만의 에녹을 쌓아야 했다.


지금의 우리는 에덴으로 다시 기어 들어갔다.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안락한 낙원. 그곳에서는 아무도 상처받지 않고, 아무도 실패하지 않으며, 아무도 고독하지 않다.


그래서 아무것도 탄생하지 않는다.


나는 저장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상관없다.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댄다. 등 뒤의 가려움이 멈췄다.


대신 그 자리에 스산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다. 날개가 돋아난 것은 아니다. 그저 찢어진 상처가 벌어진 틈이다.


하지만 그 틈으로, 비로소 숨을 쉴 수 있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내가 카인의 후예임을 확인한다.


우리는 에덴으로 돌아가지 말았어야 했다.


이 비참하고, 비효율적이며, 고통스러운 황무지가 우리의 유일한 고향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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