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가 던지는 니체의 질문

다시, 이 삶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by ToB

프리드리히 니체의 철학은 우리에게 삶을 향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니체의 질문은 운명을 사랑하고(amor fati), 존재하는 것 자체를 긍정하며, 마침내 “당신이 지금껏 살아온 삶을 무한히 반복해야 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가?”라는 영원회귀(Eternal Recurrence)의 사유에 이른다. 이 묵직하고 깊은 고민은 삶의 단 한 번뿐인 궤적, 혹은 그 반복의 의미를 탐구하는 작품들을 통해 SF와 맞닿는다. 특히 시간과 존재의 구조를 비트는 SF 장르의 상상력과 깊이 연결된다.


이번에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 그리고 그렉 이건의 단편 소설 『플랑크 다이브(The Planck Dive)』 세 작품을 통해, 각각이 어떻게 삶에 대한 의지와 존재의 반복을 다루며 우리에게 어떤 사유를 남기는지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지워도 남는 흔적, 그럼에도 다시: 『이터널 선샤인』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연인과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워주는 기술을 통해 역설적으로 사랑과 기억의 본질을 탐구한다. 철학적 관점에서 이 작품은 기억, 정체성, 그리고 반복의 이미지가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많은 연구와 논문에서 니체의 영원회귀를 은유적으로 다룬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두 주인공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과거의 상처와 이별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서로의 기억을 삭제한다. 하지만 인위적인 개입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에게 다시 이끌리고, 모든 것을 알게 된 후에도 관계를 다시 시작하기로 선택한다. 이 선택은 “같은 고통을 또다시 겪을지라도, 나는 당신과 함께하는 이 삶을 택하겠다”는 영원회귀적 결단으로 읽힌다. 이는 고통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까지 포함된 삶 전체를 긍정하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기억을 지우는 행위가 완전한 망각으로 이어지지 않고 ‘흔적’을 남긴다는 묘사는 중요한 지점이다. 이는 내 삶이 반복된다면, 나의 기억과 상처, 그리고 나 자신 또한 고스란히 반복된다는 영원회귀의 사유와 맞닿아 있다. 결국 이 영화는 삶을 외면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손을 내미는 용기야말로 삶을 긍정하는 태도임을 이야기한다.


무한한 하루, 삶을 긍정하기까지: 『사랑의 블랙홀』

영화 『사랑의 블랙홀』은 자기중심적인 기상캐스터 필 코너스가 2월 2일 하루를 무한히 반복해서 겪게 되는 타임루프 설정을 통해 니체의 질문을 유쾌하고 직관적으로 풀어낸다.


사실 영화의 시간 구조 자체가 니체의 영원회귀 개념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나 다름없다. 필은 처음에는 이 반복되는 시간을 저주하며 자살, 방탕, 무기력 등 모든 단계를 거친다. 하지만 죽음조차 이 루프를 끝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뒤, 그는 마침내 반복되는 하루를 자신과 타인을 위해 의미 있게 사용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피아노를 배우고, 사람들을 돕고,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그의 변화는, 니체의 말마따나 주어진 운명 속에서 자신의 의지를 발휘하여 스스로를 초월하는 과정이다.


이는 단순히 반복에 갇히는 수동적 상태가 아니라, 반복을 통해 삶을 긍정하는 태도를 배우는 능동적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물론, 필이 결국 루프를 벗어난다는 점에서 ‘완전히 동일한 사건의 반복’을 말하는 니체의 엄격한 영원회귀와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의 삶이 반복된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 영화만큼 즐겁고 명쾌한 답을 보여준 작품도 드물 것이다.


특히나 빌 머리의 로맨틱 코메디 연기가 발군이라, 지금 봐도 몰입도를 높인다.


한계를 넘어선 의지, 복제된 존재의 질문: 『플랑크 다이브』

하드 SF 작가 그렉 이건의 단편 『플랑크 다이브』는 앞선 두 작품과는 다른 방식으로 니체적 사유를 탐구한다. 이 소설은 블랙홀 내부의 플랑크 스케일을 탐사하기 위해 자신의 복제체를 만들어 편도 여행을 보내는 미래 사회를 그린다.


여기서 핵심은 ‘반복’보다는 ‘의지’다. 연구자들은 복제체가 돌아올 수 없음을 알면서도, 우주의 근본을 탐사하려는 지적 의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분신을 심연으로 보낸다. 이는 “나는 나의 한계와 소멸 가능성을 알고 있음에도 그 너머로 나아가겠다”는, 니체가 말한 ‘힘에의 의지(Will to Power)’의 한 변주로 읽을 수 있다. 여기서 힘이란 타인에 대한 지배가 아닌, 자기 극복과 한계를 넘어서려는 창조적 에너지다.


또한, ‘나’의 복제체를 통해 탐사를 이어간다는 설정은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복제된 나는 진정한 나인가? 나의 삶은 복제를 통해 어떻게 확장되고 반복되는가? 이처럼 『플랑크 다이브』는 시간의 순환이 아닌 존재의 복제와 확장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극복하고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가려는 궁극적인 의지를 보여준다.




세 작품은 니체의 철학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다기보다, 그의 근본적인 질문들을 SF적 상상력을 통해 다양하게 재구성하고 우리에게 되돌려준다. 기억을 통한 감정적 반복(이터널 선샤인), 시간을 통한 윤리적 반복(사랑의 블랙홀), 그리고 존재의 복제를 통한 의지적 확장(플랑크 다이브)은 모두 같은 질문을 향한다.


당신은 지금,
다시 반복해도 좋을 삶을 살고 있는가?


SF라는 거울은 가장 비현실적인 설정을 통해 가장 현실적인 우리의 삶을 비춘다. 이 작품들이 던지는 묵직한 질문 앞에서, 우리는 오늘 하루, 일상의 무게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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