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로 스크린에 현현한 니체의 ‘초인’

SF가 묻는 인간의 미래

by ToB

우리는 왜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영화에 매료되는가? 그것은 아마도 인류의 기원과 종말, 한계와 가능성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의 중심에는 19세기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있다.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니체는 절대적 진리가 사라진 시대를 살아갈 인류에게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하는 존재', 즉 '초인(Übermensch, 위버멘시)'이 될 것을 요구했다. SF 장르, 특히 우리가 걸작으로 꼽는 세 편의 영화는 니체의 이 철학적 화두에 대한 가장 탁월한 시각적 답변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 초인으로의 장대한 진화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니체의 '초인' 사상을 인류 진화의 대서사로 풀어낸다. 영화의 상징과도 같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의 동명 저서에서 가져온 것이다.


영화는 의문의 검은 석판 '모노리스'를 기점으로 세 단계의 도약을 보여준다.


첫째, 유인원이 뼈다귀를 '도구'로 깨닫고 폭력을 행사하며 '인간'이 된다. 둘째, 우주로 진출한 인간은 자신이 만든 완벽한 이성 'HAL 9000'에 의해 통제당하지만, 주인공 데이브 보우먼은 이 이성에 저항하고 그것을 극복한다. 그리고 마지막, 다시 모노리스를 만난 보우먼은 시공간을 초월한 '스타 차일드(Star Child)'로 다시 태어난다.


이는 니체가 말한 정신의 3단계 변화(순종하는 낙타 - 저항하는 사자 - 창조하는 아이)의 완벽한 은유다. '스타 차일드'는 낡은 인간의 껍질을 벗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초인'의 상징 그 자체다.


『듄』 - 초인의 의지와 정치적 고뇌

『듄』 시리즈는 '초인' 사상이 냉혹한 우주 정치의 무대 위에서 어떻게 '권력에의 의지(Will to Power)'로 발현되는지 탐구한다. 니체에게 '권력에의 의지'란 타인을 억압하는 힘이 아니라, 자신의 힘을 확장하고 스스로를 극복하려는 생의 근원적 충동이다.


주인공 폴 아트레이데스는 수천 년간의 유전자 교배로 계획된 '초인', 즉 '퀴사츠 해더락'이다. 그는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을 얻지만, 그가 보는 것은 수십억 명의 죽음을 부를 끔찍한 성전(지하드)이다.


폴의 위대함은 그가 영웅이어서가 아니라, 그 끔찍한 운명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그 운명에 맞서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마음을 죽인다"는 주문을 외며 공포를 극복한 그는, 기존의 질서(황제, 하코넨)를 파괴하고 자신만의 새로운 질서를 창조한다. 그는 기꺼이 괴물이 되어 우주에 자신의 의지를 관철한다. 이는 기존의 선악을 넘어선 '초인'의 위험하면서도 강력한 모습이다.


『컨택트』 - 초인의 태도, 운명을 사랑하라 (Amor Fati)

『듄』이 초인의 '의지'를 그렸다면, 드니 빌뇌브의 또 다른 걸작 『컨택트』는 초인이 가져야 할 궁극적인 '태도'를 그린다. 바로 니체 철학의 정수인 '영원 회귀(Eternal Recurrence)'와 '운명애(Amor Fati)'다.


니체는 "너의 삶이, 모든 고통과 기쁨을 포함해, 무한히 반복된다 해도 너는 그 삶을 긍정할 수 있는가?"라는 잔인한 질문을 던진다. 이에 대한 초인의 대답이 바로 '운명애', 즉 자신의 운명을 필연으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주인공 루이스는 외계인의 언어를 배우며 미래를 '미리 보는' 능력을 얻는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딸 '해나(Hannah)'가 불치병으로 일찍 죽게 될 비극을 알게 된다. 선형적 시간관념 속의 인간이라면 이 고통을 피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루이스는 다가올 모든 기쁨과 상실의 고통을 알면서도, 기꺼이 그 삶을 '선택'한다. 그녀는 고통스러운 운명마저 껴안으며 "예(Yes)"라고 답한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삶을 온전히 긍정하는 '초인'의 가장 숭고한 태도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초인으로의 '진화'를, 『듄』은 초인의 '의지'를, 그리고 『컨택트』는 초인의 '태도'를 보여준다. 이 세 편의 SF 걸작은 광활한 우주를 거울삼아 결국 우리 자신, 즉 '지금 여기'의 인간을 비춘다.


니체의 철학은 100년이 넘는 시간을 뛰어넘어 스크린을 통해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하지만 이 영화들은 친절한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광활한 우주의 심연 속에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되돌려 보낼 뿐이다.


"당신은 그저 '너무나 인간적인' 존재로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스스로의 운명을 창조하고 극복하는 존재가 될 것인가?"


스크린 너머, 그 대답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