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여행사이, 어딘가
한 사람 안에도 여러가지 성격이 있듯이
사랑스런 강아지 동생 하니에게도 여러가지 속성이 있다.
하니가 마냥 순하고 귀여운 줄로만 알았던 건
동물병원에 살고 있던 시절.
다가가 안아주는 내 품에 쏙 안겨, 아련한 눈길로 뽀뽀를 쪽 해줬었다.
다른 강아지에게 금방 복종하는 모습을 보고
'되게 순하고 얌전한 아이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그 뽀뽀와 눈맞춤에 반해버린 하니는
어느 덧 3살이 되어간다.
그 사이 아가는 쑥쑥 자랐다.
몸도, 털도, 생기와 활기도.
강아지보다는 고양이 같은
은근한 애교를 피우는 깜찍한 애기 같다가도
그 작은 송곳니로 날 물고
상처를 만들때면,
내 마음과 몸에도 놀라움이 번진다..
태어나서 우리집에 오기전, 동물병원에만 살았던 하니는
사회화 시기를 놓쳐,
방어와 거절의 표현을 '무는 것'으로 밖엔 표현을 못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저 안되었고... '잘해줘야지' 라는 마음이 컸다.
지금도 '이 마음'이 굳게 자리하고 있길 바라지만,
시간이 흐르고
'엄마 아빠'라는 든든한 백이 생기고. 목소리가 커지고. 하니
생기와 활기는 넘치지만
날카로운 이빨에 물린 내 무릎 아래 3센치의 상처는
고개를 돌리려 하는 것 같다.
인생이란 게 그런건가?
예상한 바 데로 가면 좋겠지만
그 것과 다른 길로 들어섰을 때, 그 길과 어울리는 현명한 산책 방법을 찾는.
작년 5월 새로운 직장에 출근하던 길 .
길가에 핀 노란 봄 꽃이 눈에 들어왔었다.
그 때. 그 고요하고 산뜻한 풍경은
'너무 애쓰지 말고, 나를 혹사시키지 말고, 소풍가듯이, 즐겁게 일해야지.'
라고 바람 결에 생각을 건네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출근 길의 작은 꽃이 눈에 들어오던 풍경은 꽤 오래전 일이 된 듯하다.
좀 더 편안한 곳일 거라 생각했던 새 직장은
그 안에서도 따뜻한 소풍이 아닌, 작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내 마음이 차갑게, 피곤하게 변해버린 걸 수도 있고.
조금 더 어른답고 현명한 대처방법을 찾아야하는 새로운 길목에 온 걸 수도 있다.
지금 이 길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현재 누리고 있는 것들의 소중함은 모르고,
부족함과 불만만 심는 어리석은 나... ... .
용기를 가지고
미움받을 용기를 가지고, 좀 더 나답게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싶다.
조금 씩 천천히.
실수해도 괜찮아.
다만 멈추지는 말아줘.
결국은 다 잘 될거라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