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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리 Sep 30. 2022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비장애 사이

written by 혼다 히데오 

혼다 히데오: 비장애 자폐 스펙트럼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작가 스스로도 장애는 아니지만 자폐 스펙트럼에 해당하는 의학 교수다. 20여 년 간 발달 장애 관련 임상과 연구 활동에 헌신했으며, 이 책을 통해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조언을 제시한다.



 

비장애 자페 스펙트럼과 자폐 스펙트럼 장애


자폐 스펙트럼이지만 장애 범주에 속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작가의 구분은 현실적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아도 법적으로 장애 진단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작가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는데, 자폐적 특징은 강하지 않지만 사회적 요인으로 인하여 우울증이나 불안 장애와 같은 정신적 문제가 병존하는 그룹이다.


자폐 스펙트럼인들은 아무래도 소수에 해당하기 때문에 다수에 의한 차별과 따돌림, 정서적 상처를 받기 쉽다.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눈에 띄는 행동을 하는 과정에서 소수는 억압받고 이런 억압이 계속되면서 자폐 스펙트럼인들은 우울증이나 불안 장애를 겪는다. 내가 유념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았지만 장애에 해당하지 않은 내 아이가 2차적 요인에 의한 정신적 문제없이 성장하는 것. 나는 그 방법을 배우고 싶다.


정신 기능상 다양한 영역의 발달에서도 개인차는 존재합니다. 각각의 발달 유형이 있고, 그중에는 성인기에 이를 때쯤이면 평균 기준에 맞는 영역도 있는가 하면 유감이지만 평균적 수준에 이르지 못한 채로 그치는 영역도 있을지 모릅니다. (중략) 지능이나 학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치화할 수는 없지만 ‘분위기 파악을 한다’, ‘대인 관계에서 처신을 잘한다’라는 등의 능력도 상대적인 것이므로 같은 식으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략) 사람에게 다양성이 있는 한 사회적으로 불리한 소수파 사람들은 반드시 일정한 비율로 존재합니다.


작가의 조언은 20년 넘게 발달 장애 임상 경력을 가진 전문가답게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다. 가장 먼저, 자폐 스펙트럼을 평균적인 발달 단계가 아닌, 독자적인 발달 단계를 밟은 고유의 영역으로 인정해야 한다. 한두 살이 되면 말을 시작하고 네댓 살 즈음 자발적으로 인사를 할 수 있다, 와 같은 지표는 잊어버리는 게 좋다. 자폐 스펙트럼 아동을 키울 때에는 표준을 따라가기 위한 높은 눈높이보다는 가능한 낮은 눈높이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가령 다른 이에게 협조해야 하는 것과 같은 난이도가 있는 사회적 기술보다는 규칙을 준수하는 등의 명백한 기술에 집중해야 하고, 꾸준히 노력하는 자세를 강요하기보다는 중간에 좀 부족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일을 끝냈다는 결과에 의미를 둬야 한다.


작가가 강조하는 건 크게 두 가지, 자율 스킬과 소셜 스킬이다. 자율 스킬은 자기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며, 이 능력의 근본은 자존감이다. 자존감은 아이가 사춘기가 되기 전, 긍정적 에너지를 얼마나 축적했느냐가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충분히 보호받고 있다고 느끼고, 어른들과 이야기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경험을 가능한 많이 해야 한다. 어른들은 아이가 잘하는 것에 대해 최대한 지원하고 아이가 잘 못하는 것에 대해서 과한 자극을 주지 말아야 한다.


자폐 스펙트럼인들은 그 사람의 지적 수준에서 기대되는 진로를 상정하면, 유감스럽지만 적응을 못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 사람의 지적 수준보다도 한 단계 낮은 지적 수준에 맞는 진로를 상정하면 순조롭게 사회 속에 참여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었다. 자폐 스펙트럼은 조기 진단이 중요해서 아이가 어렸을 때 치료적 개입을 가능한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작가는 이런 개입이 과도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조기에 집중 치료를 하더라도 자폐라는 범주에서 벗어나기는 힘들고, 집중 치료로 인해 일부 지능이 상승한다는 결과도 타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작가가 말하는, 훈련을 시작해야하는 시기는 유아기가 아니라 사춘기 이후다. 자폐 스펙트럼 당사자 스스로 주변을 돌아보고 타인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생기는 시점부터 적극적인 훈련을 해야 한다.


목표를 설정하는 데 있어 현실을 고려한 부분도 이해하지만, 이들의 가능성을 좀 낮게 잡은 건 아닌지 아쉬움도 남는다. 아마도 표준화된 목표를 위해 어려서부터 스트레스를 받으며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 자폐 스펙트럼 아동에 대한 걱정과 우려 때문이겠지. 부모로서 필요한 건 현실적인 기준이다. 아이가 사춘기에 이르러 비로소 발휘되는, 아이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응원과 사랑이다.


본인이 아직 인사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단계에서 무리하게 인사를 시키더라도 습관이 들지 않습니다. 자폐 스펙트럼 아동들은 초등학생 정도까지는 아침 조회 등에서 정식 구령이 있을 때 인사를 할 수 있는 정도면 잘하는 것입니다. 보통 때 무심코 누군가를 만난 상황에서는 인사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 “우선 인사부터 해야지”라고 하는 것은 자폐 스펙트럼 아동들에게는 너무 요구 수준이 높습니다. 인사를 하지 않고 갑자기 어떤 이야기나 놀이를 시작해도 아무 문제없습니다.


이 대목을 읽으며 마음이 찔리기도 했는데, 내가 아이의 '사회성'에 주목한 나머지 아이만의 '특성'을 간과했던 건 아닌지 후회된다. 나는 인사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사회성이란 생각에 인사를 가르쳤지만, 사실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 아이가 크게 어긋나는 건 아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누구에게나 예의 바른 아이로 키우고 싶은 내 욕망 때문이 아닌가?


작가에 따르면 자폐 스펙트럼 유병률은 넓은 기준으로 약 10%에 해당한다고 한다. 신경발달장애 중 대표적인 과잉행동 집중력장애(ADHD)의 유병률과 비슷하다. 열명 중 한 명 꼴. 여전히 소수이긴 하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이 사람들의 특성을 인정하자. 자폐 스펙트럼은 고쳐야 할 문제가 아니라 그저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넓은 의미에서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 서로 다르지만 서로 나란한 존재다.


직장에서 새롭게 일군 가정에서 가까운 사람이 자폐 스펙트럼의 특징을 가진 것을 발견한 경우, 그 점만으로 그 사람의 특별 취급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런 사람은 소수자 일지는 몰라도 결코 희귀하거나 특별한 존재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폐 스펙트럼인들의 다수가 특별 취급 대상은 아닐뿐더러 개성적인 특성을 지닌 선량한 시민으로서 생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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